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뭐 어때 Jun 17. 2024

텃밭에서 이걸 캐다니

좋은 일이 생길 징조다

심봤다!!! 길한 게 나왔다.



영화 파묘에서 '험한 게 나왔다.'라는 말이 마케팅의 주요 대사였다면 난 '길한 게 나왔다.'로 내 글의 주요 문장을 써본다. 우연히 시작된 나의 텃밭은 늘 길한 것들이 가득한 곳이다. 맨땅에서 초록잎이 나오더니 무언가 매달리고 꽃도 핀다. 생명이 탄생하는 곳이니 길한 곳임에 틀림없다. 기분이 흐린 날 텃밭에 가면 묵묵히 제 몫을 다하는 녀석들을 보고 기분이 맑아지고 내가 주는 것에 비해 많은 것을 내어주는 텃밭에서 매번 감동받는다. 이번에는 초록 줄기를 쑥 들어 올리니 이런 신기한 모양을 한 녀석들이 나왔다. 인삼? 산삼? 산은 아니니까 씨앗이 날아와서 발아된 장뇌삼 비슷한 것일까?

잔뿌리가 섬세하게 뻗어있고 사이사이 얕은 주름도 잡혀있는 것이 심상치 않다. 가지각색 발레리나의 동작을 하며 춤을 추고 있다. 그럼 이게 뭘까? 흑백사진에 색을 입혀보자.



짜잔!!! 당근이다. 그것도 상품가치 하나도 없는 못생긴 당근이다. 당근을 솎아주려고 뽑았는데 땅속 환경이 그들의 의지만큼 뻗을 수 없는 상태였나 보다. 잔뿌리를 사방으로 뻗어보려고 애쓰고 다리를 벌려 공간확보를 하려고 한 흔적도 보인다. 그럼에도 나에게 걸러지는 신세가 되었다. 다른 당근을 위한 희생을 한 못난이들을 보는데 웃음이 났다. 산삼은 이렇게 생기면 귀하다 칭찬받고 당근은 이렇게 생기면 버려진다. 생각하기 나름이다. 난 이 당근이 어느 통통한 당근보다 예뻤다. 산삼 같은 기능적 효능을 가지지는 못했지만 기분전환에 있어서는 커다란 능력을 발휘했으니 다른 방식으로의 효과는 훌륭하다.


사진과 제목으로 어그로를 끄는 기자나 유투버들을 보고 질타했었는데 오늘은 나도 한번 해봤다. 금전적인 이득을 취하려는 목적으로 한 것은 아니었으니 귀여움의 형태로 봐주면 좋겠다. 그래도 다음화까지 끌지 않고 바로 당근임을 밝혔으니 죄질이 크게 나쁘지는 않다. 사실 안 밝혔어도 속는 사람은 없었을 테지만.

당근을 솎아내려고 뽑아보니 딱 인삼모양이다. 색깔만 주황빛일 뿐. 잎을 떼내고 뽀득뽀득 씻어서 줄 세워놓고 사진을 찍으니 영락없는 삼 모양이다.  '흑백으로 필터를 씌워볼까? 오호~ 그럴싸한데~' 그저 귀엽고 신기한 마음에 산삼을 닮아있다 우겨서라도 못난이 당근의 지위를 좀 더 격상시켜 주고 싶었나 보다.  나 혼자 신기하고 신난 이야기에 혹시 한 사람이라도 피식 웃기를 바라며 쓴다.

"그래! 너! 지금 웃는 너 때문에 쓰는 거야!!!"  어이없어 웃는 것도 포함이다.

아마 진짜 산삼을 캤다면 지금 연재를 할 것이 아니라 뉴스에 제보를 했을 것이다.

'텃밭에서 수억 원짜리 산삼발견! 판매 수익금 전액 기부키로' 뭐 이런 헤드라인을 뽑지 않았을까 하는 뚱딴지같은 상상을 또 잠시 해본다.


낚시성 제목을 보고  읽어주신 분들에게 작은 선물을 하나 드려야겠다. 누군가는 보았을 수도 있는, 그러나 나는 처음 보고 반해버린 가지꽃을 선물해야겠다. 우리 밭에 가지꽃이 피었다. 처음 본 가지꽃은 보랏빛을 잔뜩 머금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고개를 숙이고 있다. 카메라를 바닥으로 내려 꽃을 향해 셔터를 눌렀다. '가지~'하며 크게 웃는다. 이 꽃이 지면 그 자리에 꽃의 색을 물려받은 길쭉한 가지가 열리겠지? 웃고 있는 가지 사진과 함께 아무에게나 주지 않는 길한 것들이 가득한 우리 밭의 기운까지 전해본다.


이전 09화 텃밭에서 배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