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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뭐 어때 Jun 10. 2024

텃밭에서 배움

작은 밭 큰 생각

채소는 언제나 마트에 가서 돈만 내면 내 것이 되는 것들이었다. 요즘은 마트까지 찾아갈 필요도 없이 집에서 손가락만 까닥이면 문 앞까지 로켓의 속도로 배달이 되는 세상이다. 단가가 맞지 않아 밭을 갈아엎는다는 농부의 시름 섞인 인터뷰나 태풍 같은 자연재해로 애쓰고 키운 작물들을 모두 포기해야 하는 안타까운 뉴스를 보고도 사실 크게 와닿지는 않았다. '판매가격이 올라가겠구나'정도의 수요공급 측면이 먼저 떠오르는 이기적인 소비자에 불과했다. 그러나 직접 애쓰며 키워보니 내 것이라는 애착과 더불어 고작 다섯 칸짜리 텃밭이지만  많은 걸 배우고 있다. 불과 몇 개월 소꿉놀이하듯 한 텃밭농사에서 거창한 무언가를 알았다는 것이 오버스럽지만 텃밭을 하면서 문득문득 사람과의 관계와 우리들 사는 모습에도 적용시킬 것이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기를 놓치지 않고 지속적인 관심을 가지고 보살펴줘야 한다는 것. 때로는 아무리 신경을 써줘도 다 자라지 못하고 썩어서 떨어지는 열매가 나오고 벌레가 이파리를 갉아먹어서 없애기도 한다는 것. 마음 같지 않는 것들이 분명히 존재한다는 것. 하나의 작물을 만들어내려면 비옥한 토양, 햇빛과 바람 그리고 적정한 물 등 여러 가지 조건이 잘 맞아야 한다는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사유가 아주 가끔은 깊어지기도 한다. 내가 원래 그렇다. 작은 것에 의미 부여하면서 생각 많이 하는 타입이다. 좋은 점나쁜 점있는 오래된 습관이다.


나는 텃밭을 하면서 어떤 생각들을 했던가?


첫째. 모든 일에는 때가 있다는 것이다. 심고 싶다고 아무 때나 원하는 아무거나 심을 수 없다. 각 작물마다 맞는 온도와 시기가 있다. 사는 일도 그러하다. 억지로 아무 때나 열매를 맺을 수는 없다. 때로는 시기를 기다려야 하는 일도 있다. 좋은 열매를 맺기 위하여 잠시 인내해 보자.


둘째. 간격을 유지해야 한다. 많은 작물을 수확하겠다고 간격 없이 심게 되면 크게 자라나지 못한다. 양분이 부족해서 열매를 맺지 못하고 죽어버릴지도 모른다. 햇볕이 들어오고 바람이 지나가는 길이 필요한 것이다. 인간관계에서도 딱 바람이 지나갈 수 있는 정도의 거리감이 있는 관계가 편안하다.


셋째. 필요 없는 것들은 솎아줘야 한다. 당근밭에서 배운 것이다. 통통한 당근을 얻기 위해서는 땅 아래 자라날 수 있도록 공간을 만들어주기 위해 주변 것들을 솎아줘야 한다. 개체수를 많이 얻겠다고 그냥 두면 모두가 자라나지 못하고 상품성이 떨어진다. 이것도 사회생활이랑 비슷하다. 양보다는 질이 높은 관계가 중요하다. 필요 없는 관계들을 정리하고 솎아내서 남은 관계가 튼튼해지기를 바란다.


넷째. 다른 집 텃밭과 비교하지 않는다. 가끔 주변의 텃밭을 바라보면서 '와~진짜 예쁘게 잘 키웠네.' 싶을 때가 있다. 그러면서 '우리 건 왜 작지?'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한다. 그 밭은 그 밭이고 우리 밭은 우리 밭이다. 나름대로의 예쁨이 있으니 비교해서 우리 밭 채소들 기죽이지 않아야 한다. 조금 더 확장하면 비단 텃밭뿐 아니라 다른 그 무엇과도 비교하지 않는 삶이 행복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가진 것이 최고!'이고 '내 선택이 최선!'이다. 자만은 아니고 다른 더 좋은 것이 있나 기웃대는 내 욕심을 누르는 말이다.


다섯째. 끊임없이 관심을 가지고 적절한 조치를 해주어야 한다. 이렇게 손이 많이 가는 일인 줄 몰랐다. 씨 뿌리고 물 주고 때 되면 수확하는 줄만 알았다. 잡초를 뽑아주고 벌레도 잡아주고 자라나면 지지대를 세워서 묶어줘야 하는 것들도 있다. 곁순이 자라면 잘라내서 열매 맺기 좋은 상태로 만들어줘야 한다. 관심 주고 사랑을 준 만큼 자라난다. 하물며 채소들도 이러한데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얼마나 관심을 기울여야 시들지 않고 푸르겠는가.



흙바닥이었던 작은 우리 밭은 제법 여러 가지 열매들도 열리고 지지대를 타고 넝쿨들도 올라가서 볼거리가 많은 밭이 되었다. 해보지 못했던 경험을 하면서 아파트 고층 빌딩에 둘러싸인 텃밭 정자에 앉아 커피 한잔을 마시며 감사하는 마음을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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