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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뭐 어때 May 27. 2024

텃밭에서 힐링하는 도시여자

우울함은 밭에 묻어두자

개인적인 사정으로 우울감과 불안함을 뒤집어쓴 채 시간을 보내고 있느라 지난주 연재를 할 수가 없었다. 친구를 갑자기 먼저 보내고 여러 가지 감정과 영상들이 나에게 들러붙어 괴롭히는 날들의 연속이었다. 도저히 글을 쓸 수 없는 상태였고 '아무도 기다리지 않겠지만'이라는 휴재 알림 글에 따뜻한 말로 기다린다고 해주신 분들께 감사의 말씀을 전한다. 그렇게 힘든 와중에도 남들 앞에서는 태연했다. 어쩌면 쟤는 친구사진에 절을 하고 와서 저리 밝나 싶을 만큼 애썼다. 그러다 혼자 있는 시간이 되면 수만 가지 생각으로 짓눌렸던 온몸에서 고름이 나오는 것 같았다. 친구에 대한 안타까움과 나에 대한 불안함이 중첩되어 온갖 걱정을 끌어와서 낑낑거리고 있는 나를 더 이상 보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그동안 동지들에게 맡겨놓고 돌보지 않았던 밭에 가봐야겠다 생각했다. 꺼져가는 것들을 부여잡고 있지 말고 살아나는 것들을 보러 가야겠다. 단톡방에 물을 주러 간다는 간단한 말을 남기자 친구는 아직 힘들 테니 와서 상추나 뜯어가라고 했다. 할 수 있다고 씩씩한 척을 하고 모자를 눌러쓴 채 밭에 갔다. 밭에 도착하니 흙길에 푸릇푸릇한 것들이 여기저기 생기 넘치게 자라고 있었다. 우리 밭뿐만 아니라 다른 밭들도 구경하고 누군가 조성해 놓은 꽃밭을 한참 동안 바라보기도 했다. 여전히 그 자리에서 채소들은 묵묵히 자기들의 역할을 하면서 풍성하게 잘 자라고 있었다. 상추를 몇 번이나 뜯어먹었는데 손대지 않았던 것처럼 또 많이 자라 있었다. 과학시간에 배웠던 잘라내도 그 자리에 또 자라나는 놀라운 재생능력을 가진 플라나리아가 생각났다. 

조리개에 물을 한가득 담아 몇 번을 왔다 갔다 하면서 다섯 칸의 상자텃밭에 물을 주었다. 아줌마들 특징을 보여주는 혼잣말도 주절거렸다. "물 많이 먹고 쑥쑥 잘 자라라" 조만간 리듬 섞어서 노래를 부를지도.


처음부터 지금까지 자라난 과정을 3단 변신 사진으로 정리해 보니 그 변화가 확연히 보인다. 채소들이 역할을 다하려고 매일매일 얼마나 애를 썼을까를 생각하니 고맙고 기특하다. 


(감자꽃을 기다리며)


감자에 싹을 틔워 땅에 묻어주니 뾰족뾰족 잎이 올라오더니 제법 땅을 덮어 푸르러졌다. 감자가 열렸나 벌써부터 캐보고 싶은 욕심을 꾹 참고 기다려보기로 한다. "그때까지 건강하게 잘 자라거라"

어릴 적에 불렀던 "감자에 싹이 나서 잎이 나서 묵찌빠!" 뭐 이런 노래도 갑자기 생각났다.


(당근! 당근! 당근!)


깨알처럼 작았던 씨앗을 뿌리고 흙이불을 덮어주니 조금씩 싹이나기 시작하더니 바람이 불면 하늘거리며 흔들릴 만큼 키가 컸다. 장발 파마를 한 듯 자라난 당근잎의 풍성한 모습에 놀라 그 자리에서 한참을 쳐다보며 어루만져주었다. 트리트먼트를 막 마치고 나온 것처럼 부드러웠다. 뿌리채소인 당근의 윗부분은 직접 본 적이 없어서 더더욱 신기했다. 물을 주며 나도 모르게 '당근송'을 흥얼거렸다.

"나 좋아하니? 당근! 나 사랑하니? 당근! I LOVE YOU~ YOU LOVE ME~ 당근! 당근! 당근!"

위안이 되는 예쁜 노랫말에 힘이 났다. 


(예쁜 꽃과 귀여운 열매)


작은 모종으로 시작했던 채소들이 어느덧 어른 흉내를 내면서 아가들을 생산하고 있다.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으며 모종만으로 무슨 채소였는지 초자 몰랐던 것들이 본인의 이름을 드러내고 있다.

"난 고추야!, 난 토마토라고" 하면서 작지만 선명하게 자라느라 애쓰고 있는 모습이 경이로웠다.


나도 모종 같았던 귀여운 아가시절이 있었는데. 큰 걱정 없이 친구와 떡볶이 먹으며 깔깔대던 사춘기도 있었고. 어느덧 시간이 지나 텃밭에서 노래를 흥얼거리며 물을 주는 중년의 여인이 되었다. 아줌마라고 쓸까 살짝 고민하다가 여인으로 적는다. 나도 꽃피우고 열매 맺으며 이 나이가 되었구나 싶었다. 텃밭의 채소처럼 나도 역할을 충실히 해내려고 노력하고 있으니 그것으로 되었다.


텃밭에 우울과 불안을 묻고 돌아와 글을 쓰며 생각을 정리하며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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