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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뭐 어때 Mar 07. 2024

처음 뵙겠습니다 - 암이 찾아왔다

설마 했던 일이 벌어졌다.

"끝나고 뭐 먹을까?"

"삼계탕? 내시경 했으니 부드럽고 든든한 보양식으로. 어때?"

한 끼만 굶어도 큰일 나는 식궁합 잘 맞는 부부의 검진 전날 밤의 대화다.

매년 이맘때쯤 해를 넘기기 전 겨울 문턱 즈음이 되면 우리 부부는 함께 건강검진을 받는다.

전날 금식이 시작되면 약 올리기라도 하듯 배가 더 고파왔고 끝나고 뭐 맛있는 걸 먹을까를  이야기하며 허기를 달랬다. 공복에 하는 검사를 공복이 없어 못한다는 어느 개그우먼의 이야기가 꼭 웃기기만 하지는 않은 이유는 아마도 공감이었을 것이다.


배고플 땐 자는 게 상책이다. 그런데 잠이 잘 안 온다. 사실 나름의 이유가 있긴 하다.

몇 주 전부터 왼쪽 가슴 아래 무언가 동그란 딱딱한 것이 걸리적거리기 시작했다.

'무섭다가! 대수롭지 않다가! 걱정되다가! 설마!'를 반복하며 검진일을 기다리며 지내왔다.


자는 둥 마는 둥 오만 이천 가지쯤 생각을 하며 뒤척였다. 겨우 나를 진정시킨 단어가'설마!'였다.  '그래. 설마 무슨 일이야 있겠어?'

입동이라는 절기가 무색하게 어제까지 따뜻했는데 새벽부터 비가 내리더니 갑자기 추워진 아침이었다.

'왜 비까지 오고 난리야.'

매년 해왔던 정기검진인데 유난히 마음이 별로다. 삼계탕 말고 다른 거 먹을까? 엉뚱한 생각을 끌어와본다.

나이에 숫자가 늘어날수록 병원에 갈 때의 공포와 불안감 지수도 늘어난다. 특히나 이렇게 뭔가 찜찜할 땐 더 그렇다.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다는 노래가사는 바뀔 수 있을까?

병원도착. '바퀴 잘 굴러가고? 부품 망가진 거 없고? 오일들 교체해야 하나?' 검진센터는  무생물에서 생물로 주인공만 바뀐  카센터 같다. 휴먼센터인가? 아무튼 거의 건강검진 공장에 가까운 수준이다. 자동차는 40년 넘게 탔으면 폐차를 해도 몇 번을 했을 시간인데 그래도 인간으로 태어나 오래 버티고 잘 굴러간다 싶다.

번호표를 뽑고 죄수복 같은 검사복을 입고 공장 공산품들이 레일 타고 돌듯이 정해진 곳으로

들락날락한다.


오늘 주인공은 예상대로 유방이다. 임신소양증으로 모유수유도 못해 그다지 엄마로서의 역할을 해내지 못했던 가슴에 탈이 났다


'여기. 혹이 잡혀요'

'여기요?'

한 번에 찾아낸다. 무섭게!


'가족력 있으세요?'

'아니요!' 가족력 없으면 괜찮은 거죠?라는 질문을 숨기고 자신 있게 대답했다.


고개를 빼꼼히 돌려 잘은 모르지만 뚫어져라 흑백 모니터를 쳐다보았다.

'클릭, 클릭, 쭉! 길게 선을 만들어 길이를 잰다. 클릭할 때마다 들리는 '딸깍'소리가 총 쏘는 소리처럼 무섭고 크게 들렸다. 게다가 무언가를 잰다는 건 썩 기분 좋지 않은 액션이다.

휴지를 건네며 심각하게 이야기를 한다. 초음파를 위해 한가득 짜놓은 찐득한 액체를 바보처럼 문질러 닦으며 집중해 본다. 

'유방촬영에서 저번에 안 보이던 미세 석회화가 진행되었고 초음파상 혹 모양이 많이 안 좋아요.

전반적인 정황상 빠른 시일 내로 대학병원 가서 조직검사를 하셔야 할 것 같아요'

  장황하게 설명했지만 한마디로 말해 '이것은 암입니다'이미 들리고 있었다.


뚜둥!!! 이럴 때 효과음 적당한 게 생각나지 않는다.'띠로리~'이게 으려나.


눈물이 순식간에 왈칵 쏟아졌다. 찐득한 겔을 닦으라고 쥐어준 휴지는 이미 눈물과 뒤엉켜 엉망이 되었고 난 펑펑 울어댔다. 내 또래 여자 의사는 나를 안쓰럽고 애처롭게 바라보며 눈으로 위로하는 듯 보였다.

바닥에 털썩 주저앉고 싶을 만큼 몸이 흐물거렸지만 그럴 수 없다. 내가 나가야 다음 환자 검진을 할 수 있다. 여긴 불량품이 수없이 발견되는 공장이라는 사실과 내 절망이 모두의 슬픔이 아니라는 객관화를 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흔들리는 정신과 몸을 간신히 부여잡고 초음파실을 나왔다. 무슨 사연 있는 여자처럼(막 사연이 생긴 여자이긴 하다.) 벌건 눈을 하고 소파에 앉아 다음 방에서 부를 때까지 넋 놓고 앉아 있었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최고성능의 노이즈 캔슬링이 구현된 시간이다.


'꿈이었으면 좋겠다. 너 악몽 전문이잖아. 꿈이지? 깰 거지?' 자각몽을 꾸고 있기를 바랐다.

한참을 몇 번이고 되물었는데 현실이었다. 볼을 꼬집어볼까도 생각하다가 더 처참해져 갔다. 


여러 검사실을 정해진 순서대로 돌아다니며 검진을 하다가 검사를 마치고 나온 신랑과 마주쳤다.

'울면 안 된다. 여기서 감성팔이 이상한 여자 되면 안 된다.''다 끝나고 한 번에 얘기하자. 지금은 아니다.' 온 힘을 다해 눈물을 막고 다음 검진 기다리며 대기 중인 평범한 검진자 코스프레를 아주  잘했다. 눈을 쳐다보면 분명 용암 폭발하듯 터져버릴 것이 뻔하기에 시선처리를 엉뚱하게 했다. 똑똑하다.


내시경이 남아있었지만 그냥 가고 싶었다. '내시경 다음에 할게요'하고 갈까 잠깐 생각했다가 그런다 한들 뭐가 달라지나 생각하다 보니 잠들고 있었다.

일분도 안 돼서 깬 것 같았다. 갑자기 눈물이 눈치 없이 또 쏟아졌다.

'무슨 일이신가요? 괜찮으세요?'

간호사가 놀라서 묻는다. 간호사 시점에서는 수면마취  깨자마자 대성통곡을 하는 이상한 여자가 나타난 것이다. 아마 수면 내시경 후 나타나는 갖가지 비이성적인 행동 중 하나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지금 이성이 있는 게 신기한 지경이긴 하다. 비이성 맞긴 하는데 수면 내시경 탓이 아닐 뿐이다.


생각을 정리해야 한다. 무엇부터 결정하고 어떻게 할지 생각해야 한다. 

믿고 싶지 않고 믿어지지 않지만 현실이기에 오늘을! 내일을! 그리고 지금을 살아야 한다.

울지 않으려고 했다. '울어서 해결될 일이면 사람을 사서 울어라' 아빠는 울지 말라는 말을 이렇게 했다.

아빠얼굴이, 그리고 아빠 말이 떠올랐. 어쩌면 갑자기 아빠와 동지애 같은 게 생겼을지도 모른다.


삼계탕은 진즉에 날아갔다. 음식을 넘기는 목구멍이 닫혀버렸다. 검진 끝나고 신랑에게 여차저차 난 이제 암환자가 될 것 같다고 고백했다. 


가슴이 아프다는 가슴 아픈 고백이다.


다 같이 아프고 슬프게 해서는 안될 일이다. 덤덤하게 말해보려고 했는데  뜻대로 안 된다. 역시나.

신랑 한마디에. 눈빛에. 기댄 어깨에. 눈물을 더는 참을 수가 없었다.

같이 아파하고 있었다. 아직 모르니 미리 걱정하지 말라 하면서 어쩌면 나보다 더 걱정하는 것 같았다.

신랑은  많이 울었다. 나를 안고 커다란 어깨를 들썩이며  같이 울었다. 처음 본 것 같다. 그렇게 우는 모습은.

내편이 있다는 생각에 고마워서 울고, 또 고생시킬 것 같아 미안해서 울고, 내 상태와 앞으로의 치료과정이 무서워서 울었다. 울어야 할 이유가 수만 가지였다. 울어서 해결 안 되는 일인 줄 알면서 할 수 있는 게 고작 그것뿐이었다. 


난 친구들보다 뭐든 한발 이상씩은 빨랐던 것 같다. 결혼도 출산도. 좋은 것이나 나쁜 것이나 늘 먼저 했다. 역시 이런 것도 앞서가는구나 싶어졌다. 제정신 아니니 별의 별생각이 다 쳐들어온다.

어른이 되고 나이를 먹어간다는 것은 무언가 가능성을 발견하고 좋아진다는 말보다는 나빠지고 있음을 느끼고 들을 일이 많아진다. 내가 조금 먼저 들었으니 또 먼저 버티면 된다.

먼저 경험한다는 것은 많이 알게 되는 일이고 훗날 도움이 필요한 같은 처지의 누군가에게 들려줄 이야기가 생기는 일이다. 시간차가 조금 있을 뿐이다. 내가 조금 빨랐을 뿐이다.


나에게도 콘텐츠가 생겼다. 밋밋한 글에 절박함을 얹을 수 있게 되었다. 이걸 위로라고 하고 있다니.


암이라는 놈이 '처음 뵙겠습니다 '하고 찾아온 것 같지만 엄밀히 말하면 처음 본 녀석은 아니다. 그렇게 정중하지도 않았다. 그간 내 주변에 자주 출몰했는데 '설마'하면서 외면했다. 설마가 내 일이 되었고 불청객으로 나의 안방에 앉아서 집안을 어지르고 있다. 비록  엉망진창이 되었지만 지금부터 시작이다. 불청객이 진상부리면 대책 없으니 그 손님 잘 모셔서 화나지 않게 내보내드리는 연구를 시작해 보자.

연구진은 의료진과 나, 그리고 가족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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