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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뭐 어때 Mar 18. 2024

두상이 예쁘다는 거짓말

쉐이빙하는 날

암 진단을 받고 항암을 해야 한다는 소리를 들었을 때 죽음의 공포만큼이나 두려웠던 것 중에 하나가 머리카락이 빠진다는 것이었다. 어찌 보면 철없는 공포였을지 모르나 그때는 그랬다. 드라마나 영화 속에서 암환자의 상징으로 봐왔던 민머리와 비니, 두건, 모자. 그 장면들이 강렬하게 기억에 새겨져 있었고 남들의 불쌍한 시선을 받는 징표처럼 여겨지는 것도 끔찍했다.

근 20년을 긴 머리로 지내왔던 내가 머리카락이 사라진다니. 상상만으로도 온몸에 소름이 돋는다. 상상은 곧 현실이 되었다.

수술하기 전 긴 머리를 짧은 단발로 1차 커트를 했다. 수술하고 머리 감기 불편할 테니 일단 단계적으로 머리카락과 이별해 보자 하는 마음에서였다. 항암이 시작되면 그때 가서 완전한 쉐이빙을 해야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상실감에 대한 준비를 하기 위해선 나름의 단계가 필요했다.


긴 머리를 짧은 단발로 커트하는 건 내가 늘 가던 미용실에서 하기로 했다. 

"무슨 있으세요? 머리는 절대 안 자르신다고 하셨잖아요? 그런데 짧은 머리도 어울릴 것 같아요"

커트를 주문하는 나에게 이말 저말 하면서 늘 그렇듯 애쓰는 스몰토크를 시작한다. 

"그냥 변화를 좀 주고 싶어서요"

삭발하는 것도 아닌데 그냥 더 말하면 슬퍼질 것 같아서 사실과 전혀 맞지 않는 대답을 하고 계속 핸드폰만 쳐다보았다. 더 이상 나에게 말 시키지 말아 달라는 것처럼 다른 일에 집중하는 시늉을 했다. 

커트를 마치고 스타일링을 하면서 디자이너가 준비했던 말을 꺼낸다. 적립금이 거의 다 되어가는데 이달 안에 결제하시면 추가금 적립에 다음번에 헤어 클리닉을 서비스로 해주는 이벤트가 있다는 달콤한 제안을 한다.

'다음번? 헤어클리닉?  다음번에 헤어가 없는데?' '이제 저는 한동안 안 와요. 아니 못 와요. 머리카락이 다 빠질 거거든요.' 속으로만 아린 대답을 했다. 뭐 굳이 유쾌하지 않은 이야기를 늘어놓고 싶지 않았다. 

"네. 생각해 보고 말씀드릴게요." 거짓말을 하고 미용실을 나왔다. 아주 작은 일상의 언어가 모두 가시로 박히는 나날들이다.

미용실 헤어크리닉 서비스가 이렇게 아픈 말이 되다니.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오면서 비치는 모습이 어색해 연신 짧은 머리카락을 쓸어 넘긴다. 이것도 어색한데 민머리로 살아야 하다니 큰일이다.

"예쁘네, 잘 어울린다" 가족들은 진실여부 크게 상관없는, 위로의 진심만은 확실한 말들을 하고 있다.




언제 쉐이빙을 해야 할까? 여기저기 찾아보니 항암을 하고 바로 빠지지는 않는다고 해서 일단 1차 항암을 받은 후에 하기로 했다. 하루라도 내 머리카락을 지키고 싶었다.

1차 항암을 하고 열흘이 되어도 빠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이러다 나는 안 빠지는 거 아냐' '혹시 나 특별한 예외케이스 아닐까' 잠시 희망을 품어봤지만 예외는 없단다. 그렇다면 빠지기 전에 내가 먼저 밀어야겠다고 결심했다. 그 긴 머리카락이 빠지는 걸 마주할 자신이 없었다. 


항암 하시는 분들! 가발 구매하시면 무료로 쉐이빙 해드립니다.

항암용품을 파는 곳에 붙어있는 문구를 보았다. 무료 때문은 아니었다. 

'저 항암 할 거니까 머리 밀어주세요'라고 말할 수 있는 장소를 찾는 것도 고통이다. 그러나 그곳은 굳이 길게 설명하지 않아도 되었고 그들에게 아주 낯선 풍경도 아닐 테니 나를 특별하게 보지도 않을 것이다. 나름 최적의 장소라 생각되어 예약을 했다.


예약 당일 아침 신랑과 말없이 집을 나선다.  나는 나대로, 신랑은 신랑대로 각자의 긴장감이 서로에게 전달되고 있다는 것만 느낄 뿐 딱히 뭐라 할 수 있는 말이 없다.

가게로 올라가는 계단 앞에 선다. 발을 하나, 둘 옮길 때마다 '울지 말자!' 한번, 두 번 계속 다짐한다. 

문을 열자 반기며 밝은 모습으로 인사를 한다. 예약한 손님의 방문이니 반가움이 당연한 것이데 '왜 웃지, 난 슬픈데.'싶은 생각이 잠깐 스쳐간다. 오래 생각할 시간을 주지는 않는다.

"의자에 앉으세요" 

"아~네" 엉거주춤 의자에 앉았다가 엉덩이를 의자 끝쪽으로 바짝 붙여놓고 거울을 바라본다. 신랑과 눈을 마주칠까 걱정했는데 거울 속 신랑은 이미 조금 뒤로 가서 등을 살짝 돌린다.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나는 눈을 감는다. 이발기 소리가 귓가에 굉음처럼 들릴 때마다 마음속에서도 큰 소음을 내며 무언가 지나간다. 어깨 위에 둘러놓은 천 위로 무언가 '툭' 떨어진다. 머리카락들이 어깨와 무릎 위 하얀 포 위에 떨어지는 게 느껴진다. '언제 눈을 뜰까?' 무섭고 어색했다. 눈을 뜨는 것에도 용기가 필요한 순간이었다.

속으로 숫자를 센다. '하나, 둘, 셋. 지금이다.' 큰 거울 앞에 빡빡머리 여자가 앉아있고 그 뒤로 나를 바라보며 서있는 신랑이 보인다. 너무 당황해서일까, 마음의 준비를 많이 해서일까, 모두가 어색해지는 상황이 싫어서였을까 난 울지 않았다. 평소 눈물양으로 보면 들어가는 순간부터 눈물을 흘리며 등장했어야 하는 사람인데 아주 잘 참았다. 

"두상이 참 예쁘세요"

이발기를 내려놓으며 쉐이빙을 해준 항암용품샵 주인이 얘기한다. '거짓말! 예쁘긴 뭐가 예뻐. 그 말 이외에 할 말이 없는 거겠지.' 속으로 하는 말을 들은 것인지 신랑이 위로를 담은 칭찬을 보탠다.

"진짜 예쁘네"

그 상황에 어떤 말을 하겠는가. '역시 머리빨이었군' 할 수도 없고 비상상황 대처 매뉴얼 최상단에 있는 가장 적합한 말을 했을 것이다. 어색한 가발에 모자까지 푹 눌러쓰고 그 계단을 다시 내려왔다.

지명 수배자가 변장술 하는 것처럼 계단 올라갈 때와 내려갈 때 다른 사람이 되어서 나타난 것이다.

마지막 계단을 다 내려왔을 즈음 신랑은 약간은 어색한 목소리로 "자. 이거. 사고 싶은 거 있으면 사" 두툼한 봉투를 하나 건네준다. 쉐이빙하면 주려고 준비했단다. 역시 우울할 땐 금융치료가 최고인 것인가? 이번 경우에는 치료는커녕 더 슬퍼졌지만 고맙다고 인사하고 신난다고 너스레까지 떨어봤다. 어색한 공기가 싫었다.

나 때문에 가족이 다 같이 슬퍼지면 안 될 일이다. 용기를 내서 끝까지 버티고 웃어야 할 이유가 거기에 있다.





1mm 정도만 남기고 모두 밀었고 항암 차수가 거듭될수록 그 뾰족한 머리카락들이 부러진 샤프심처럼 빠져나와 침대, 세면대에 가득했다. 머리를 감을 때마다 후드득 쏟아서 검은 비가 내린다. 머리를 감다가 샤워기를 틀어놓고 주저앉아 엉엉 운 날이 수도 없다. 한동안은 거울을 쳐다보는 것조차 버거웠고 어떤 날은 썼던 가발을 집어던지며 욕을 했던 적도 있다. 

머리카락이 없다는 건 단순히 물리적으로 무언가 탈락된다는 의미 이상의 엄청난 상실감을 동반하는 복잡한 정신적 혼돈을 가져온다. 겪어보지 않고서는 절대 알 수 없는 우울감을 준다.

'어차피 머리카락 다시 나올 거잖아' 이런 말 하지 마시라. 내가 지금 그걸 모르는 게 아니지 않은가? 그런 말은 적대감만 커지게 할 뿐이다. 글로 쓰다가 또 욱한다. 이놈의 성질머리.  

외모에 큰 변화가 생기니 아무도 만나고 싶지 않고 만날 수도 없었다. 그렇게 난 머리카락이 없어지고 점점 숨어 지내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었다. 

아프기 전 친구들이 왜 머리를 계속 기르냐고 물어보면 '나 머리카락에서 힘이 나와, 나 여자 삼손인가 봐'라고 농담조로 얘기했었는데 그게 진짜였나 보다. 머리카락 자르니 힘이 없어졌다. 


'항암만 안 했어도 지인들에게 암밍아웃 하지 않을 수 있었을 텐데. 그렇다면 신랑 이외에 내가 암에 걸렸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없었을 텐데. 치료가 훨씬 덜 힘들었을 텐데. 머리카락도 안 빠졌을 텐데. 바람 불면 모자 날아갈 까 걱정하지 않았을 텐데. 아이들 학교모임에도 빠지지 않고 갈 수 있었을 텐데.' 등등 가정을 하면서 아쉬워하기도 했었다. 누군가의 측은지심의 대상이 된다는 것도 나를 초라하게 만들었다.

이렇게 이미 벌어진 일에 아무 의미 없는 생각들로 한탄하며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꼭 필요한 절차로 진행된 치료라 믿으니 이제는 후회도 미련도 없다. 오히려 싸웠다 싶다. 암을 죽이는 과정은 내가 죽을 만큼 힘든 과정이었다. 그러나 결국 암은 죽고 나는 살았다. 그렇게 확신한다. 


그리고 거짓말일지라도, 두상이 예쁜 나는 이제 제법 머리카락이 자라나고 있다. 희망의 시그널이 매일매일 자라나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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