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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뭐 어때 Mar 11. 2024

암벤져스를 만나다

다 부숴버리겠어

자! 가만있어보자~ 뭐부터 해야 하지?

그래. 일단 건강검진센터에서 시킨 대로 대학병원에 가서 조직검사를 받아야 한다. 그렇다면 어느 대학병원으로 갈 것인가? 아무것도 모를 땐 메이저 또는 메이커다. 서울에 유명하다는 큰 병원 여러 곳에 상담 전화를 걸었다. 대부분 몇 개월은 기다려야 진료가 가능하다는 답변만 할 뿐이다. '수술도 아니고 진료가 몇 개월 후면 수술은 언제 하지?' 이건 암이 문제가 아니라 기다리다 불안함에 말라죽을 상황이었다. 일단 대기만 걸어놓고 집에서 가까운 대학병원에 전화를 걸었다. 병원에 갈 일이 많으니 가까운 게 좋다는 지인의 의견도 반영되었지만 빠른 진료를 위해서는 고민과 갈등은 사치였다. 가장 빨리 나를 봐줄 곳이 필요했다. 다음날 바로 진료를 볼 수 있는 자리가 하나 나왔다는 간호사의 말에 복권당첨이라도 된 것처럼 기뻐하며 예약을 부탁했다. 


 건강검진 후 첫 진료


오전 내내 비가 왔다. 오후에 잡힌 진료시간을 기다리며 이렇게 저렇게 누웠다 일어났다 앉았다를 반복해 봤지만 어떠한 자세도 편하지가 않다.

그래. 머리를 감자. 고작 병원 나들이지만 치마도 입고 초라하지 않게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미 초라해져 버린 마음을 어떻게든 감추고 싶었다.

유방외과 간판이 크게 보이는 병원에 수많은 사람들이 앉아있다. 나만이 아니어서 위안을 삼아야 하는 것인지 나마저여서 우울독에 빠져야 하는 것인지 모를 수많은 감정들이 뒤엉켜 어느 쪽을 봐도 풀릴 시작점을 찾을 수 없는 실타래 같았다. 진료실 앞 소파는 푹신했지만 아늑함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검진센터에서 가져온 암호 가득한 기록지들을 보고 조직검사를 바로 하자고 하셨다. 간호사는 조직검사실 자리가 없어 이 주 뒤나 가능하다고 했고 의사는 '그럼 너무 늦잖아. 내가 오늘 한다 그래' 오~ 카리스마! 아마도 암임이 확실한데 시간을 늦추는 건 안된다고 판단했나 보다. 당일 조직검사를 할 수 있었던 건 너무나 감사한 첫 번째 행운이었다. 두 개의 종양이 있었는데 하나는 악성 종양이었고 하나는 다행히 양성 혹이었다. 위아래로 있었기 때문에 두 개 다 나쁜 녀석이었으면 전부절제를 해야 할 상황이었지만 부분절제로 가능해졌으니 이것이 두 번째 행운이다. 조직검사 결과 오진이었다고 말해주길 바라는 헛된 꿈도 잠깐 꾸어봤지만 빨리 현실에 적응해야 살 길이 열린다. 일단 가장 빠른 날로 수술을 잡았다.


수술 당일


수술이 적합한 인간인지 이것저것 검사를 한 뒤 합격 통지받고 수술 전 날 입원했다. 창가 쪽으로 전망 좋은 병실을 배정받았다. 낮은 산이 보이는 일명 마운틴뷰다.

새벽 내내 자는 둥 마는 둥 수십 번을 뒤척뒤척하며 또 백만 가지 생각들을 했다. 수술방에 들어가는 모든 이가 한다는 그 생각을 나도 했다. 쓰기 싫은 말이라 그냥 상상에 맡긴다.

발자국소리만 들려도 내게 오나 싶어서 긴장한 채로 수술 전 새벽을 보냈다. 수술 바늘은 어제 오후부터 꽂아놓고 대기했다. 그 바늘은 크기도 하다. 아프다. 이런 젠장. 

수시로 와서 안 할 수 없는 사인을 받아간다. 동의서라 쓰고 의무서라 읽는다.

병원은 인내심을 늘려야 버틸 수 있는 무한 대기의 연속이다. 언제 부를지 모른다. 우리 병실의 환자 모두가 커튼을 꽁꽁 닫고 생활한다. 나처럼 그들만의 동굴 속에서 생활하고 있는 듯하다. 그저 우리 병실로 들어오는 간호사의 걸음소리에 '난가? 에잇, 아니네'를 반복하면서 이름이 불려지기를 기다리는 것뿐이 할 게 없다.

계속되는 긴장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시간이 길어지는 것이 싫어서 아침 일찍 수술하기를 바랐으나 오후쯤 들어갈 거라 했다. 우리 교수님 수술 순서는 나이순이라는 말을 누군가 해주었다. 어르신들이 오래 기다리기 더 힘드니 먼저 해드린다는 효에 근간을 둔 수술시간 배정법이다. 어쩔 도리없이 병실에서 가장 어린 난 꼴찌로 수술방에 들어간다.


'곧 내려가요. 준비하세요'

드디어 내 차례다. 콩닥콩닥 거리던 심장이 두근을 넘어 심한 펌프질을 해대더니 곧 심장이 터질 것 같다.

불안한 건 뭔지 표현하기 힘든 심정으로 바퀴 달린 침대 위에 누워서 기사님이 끌어주는 대로 수술실로 끌려내려 간다. 어젯밤부터 한 생각인데 방에서부터 마취시켜서 끌고 가면 안 되나? 맨 정신에 끌려가며 누워서 바라보는 복도의 천정 불빛은 고통스럽다. 눈에 힘을 잔뜩 주어 감아본다.

꼭 잡았던 신랑 손을 놓고 무척이나 반짝이는 서늘한 방으로 들어왔다. 누워서 보는 수술방은 크리스털처럼 깨끗하고 밝아서 겨울왕국이 떠올랐다. 그만큼 춥기도 했다. 수술도구를 세팅하느라 부딪히는 쇳소리와 의료진들의 분주함이 느껴지는 발검음 소리가 확성기를 타고 나온 것처럼 쩌렁쩌렁하게 울려 나를 불안하게 하고 있었다.

'걱정 말아요' 교수님이 나타나 나에게 수술 전 인사를 건넸다.

'잘 부탁드려요' 난 이 상황에 가장 걸맞은 인사를 하고 또 울어버렸다. 다행히 오래도록 울 시간은 허락되지 않았다. 마취제가 내 몸을 돌고 심호흡 몇 번 하니 겨울왕국은 닫혔고 눈을 떴을 때는 꽤 많은 시간이 지나간 뒤였다.

예감이 좋지 않았다. 계획대로 진행되면 한 시간 반정도 걸린다는 수술이었다. 열두 시 반쯤 병실에서 내려왔는데 회복실에서 시계를 바라보니 거의 여섯 시가 다 되어가고 있었다. 계획이 틀어진 게 분명했다.

걱정근심의 숫자만큼 여기저기 주렁주렁 무언가를 매달고 멍한 상태로 병실로 올라왔다.

피검사한다고 발등에서 피를 뽑고 간호사는 무언가를 설명하고 병실이 분주하다.

교수님이 오셔서 계획보다 오래 걸린 힘든 수술이었음을 설명했고 항암은 피할 수 없다 했다. '혹시나' 기대를 했었는데 '역시나'로 끝났다.

경계선 잔존암 때문에 네 번이나 추가 조직검사를 하고 결과를 기다리느라 많은 시간이  걸렸다고 했다. 울지 말라고 태연하게 말하는 교수님이 야속했지만 그렇다고 환자랑 같이 울 수도 없는 노릇이라는 것도 안다.

예상보다 한참이나 길어진 수술시간에 신랑의 심장도 녹아내리고 있었나 보다. 엄마도 친구도 모두가 나를 걱정하고 있었지만 난  깔끔한 결과를 가지고 나오지 못했다.

암이 뭐 대단히 좋을 일은 없겠지만 초기에 항암 없이 가는 사람들도 있다던데 내 얘기는 아니었다. 그런 헛된 희망은 품지 말았어야 했다.

기다림의 고통을 보여주듯 신랑의 얼굴도 몹시 지쳐있었다. 그래도 나를 쓰다듬으며 애썼다고, 이만한 것도 다행이라며 나를 위로했다.

그래. 이만한 것도 다행이다. 깨어나서 병실 제자리로 올라오지 않았는가? 얼마나 다행인가? 감사하자고 억지를 써본다. 이제 내 몸에 암은 잘려나갔다.


다학제  : 다학제란 서로 다른 여러 분야의 학문이 모여 어떤 대상을 연구할 때 자신의 전문 분야를 내세워 타 분야와 타협하는 접근법이다.


내 수술 결과를 토대로 어떻게 치료를 진행할 것인지 여러 과의 교수님들이 모여 나에게 브리핑하는 날이다. 유방외과, 종양내과, 방사선과 교수님이 참여하고 나와 신랑이 함께한다.

쉽게 얘기해서 몸속 암을 부숴버리기 위한 어벤저스 팀이 꾸려지는 그런 날이다. 나는 그들을 암벤져스라 부르기로 했다. 토르의 망치 같은 걸 휘둘러서 다 부숴버릴 거라 믿는다.


다학제실 앞에는 우울한 표정의 사람들이 판결문 기다리는 죄인처럼 앉아서 이름 불리길 기다린다.

'이쁜이님 들어오세요'

처음 느껴보는 공간의 힘에 그저  압도당해서 적으려던 것도 제대로 적지 못하고 교수님들 이야기에 신경이 곤두서 있었다. 공상과학 영화에 나올 것 같은 엄청 큰 화면을 띄워놓고 향후 계획에 대해 설명한다. 쭉 둘러앉아있는 교수님들은 이제부터 나를 구해줄 어벤저스다. 각 과별로 어떻게 치료할 것인지 그들의 무기를 소개한다. 화면은 큰데 눈은 흐릿해져서 보이지 않고 친절하게 설명해 주는데도 저리고 아프다. '내가 왜 여기에 있지?' 이 생각은 나를 슬픔과 절망의 구덩이로 밀어 넣는다.

'내가 왜?, 대체 왜? '이런 생각은 이제 버려야 할 때다. 어차피 벌어진 일이다.

다시 설명에 집중한다.

항암 4회 + 방사선 30회 + 호르몬차단제 5~10년 복용.

항암 4회라는 말에 그저 감사하고 행복했다. 아이러니한 일이다.  항암을 한다는데도  감사하다고까지 느꼈으니 신기한 일이다. 기준점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행복은 달라진다. 안 할 걸 하는 게 아니라 8번 할 것을 4번 하는 것이다 생각하니 마음이 조금은 가벼워졌다. 이래서 어떠한 경우에도 사람은 살아갈 힘을 얻나 보다. (그런데 변수가 생겼다. 다음화에 계속)

나의 어벤저스가 꼭 싸워 승리할 거라 해주니 곧 이기고 평범함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 같아졌다.


다학제를 마치고 쇼핑도 했다. 쇼핑품목은 항암에 필요한 준비물 같은 것들이다. 잇몸이 약해지니 순한 치약, 칫솔, 두피세정제, 손발톱이 깨질 수 있으니 손톱강화제등 크게 신나는 쇼핑은 아니었다. 눈썹이 빠질 것이니 문신을 하라는 선배들의 이야기를 듣고 그것도 예약했다. 눈썹 숱이 많아서 한 번도 해보지 않았던 문신을 미용이 아닌 의료목적으로 하다니. 세상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를 일이다.

머리카락 쉐이빙 계획도 세우고 요양병원 가서 상담도 하고 기력보충한다며 장어구이도 맛있게 먹었다. 몸도 마음도 바쁜 하루를 보내고 있다.

다학제에서 혹여나 아무것도 못할 만큼 우울한 소식을 듣게 되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그 걱정 비웃듯이 모두 계획대로 해내었다. 그래도 씩씩한 내가 기특하다.

이렇게 하나씩 해결하면 된다. 반드시 승리로 끝날 게임을 시작하며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이제 시작이니 얼마나  많은 일들이 나를 괴롭힐까 불안하고 걱정되기도 한다.


걱정해서 걱정이 없다면 걱정이 없겠네.


티베 속담을 기억하자. 걱정은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다.




p.s 첫 연재를 올리자마자 신랑과 딸에게 전화가 왔다. 신랑은 연재를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일종의 언론탄압?을 했다. 글을 읽는 동안 고통스럽다고 했다. 딸은 이야기가 슬프다고 했다.

'그때의 느낌에 지금의 유머를 섞었는데 재미없어?' 했더니 그 유머가 더 슬프다고 했다.

첫 화 쓰고 멈춰야 하나 갈등했다. 뭐 대단한 일 한다고 가족을 고통스럽고 슬프게 할 일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 번은 쓰고 털어야 내가 미련이 남지 않을 것 같아 가족에게 양해를 구하고 이어가 본다. 다른 글에서도 썼듯이 굿을 하는 심정으로 글을 쓴다. 글을  쓰면 마음속의 액운이 부서지는 느낌이 들어서 좋다. 그리고 또 하나. 그땐 슬펐지만 지금은 슬프지 않다. 솔직히 가끔 슬프긴 한데 그때에 비하면 지금은 천국이다. 변수 없는 삶을 살고 싶지만 상수만 있었다면 감사를 몰랐을 것이다. 변수와 상수가 적절히 공존해서 내 삶이 견고하고 예뻐진 것이라 믿는다. 지금 이 글을 쓸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 그러니 아무도 슬퍼마시길.



이미지출처 : 네이버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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