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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뭐 어때 Mar 14. 2024

4번만 한다며?

항암 횟수가 두 배로 늘었다.

"네 번만 한다면서요? 왜 바뀐 거예요?"

종양내과 진료실 안에서 바뀐 정책에 반발하는 민원인처럼 따지고 있다. 사실 따진다기보다는 질문 형식을 빌어 애원하고 있다. 감히 따지긴 뭘 따져.

'네 번만 하게 해 주세요. 제발요. 왜 다학제에 네 번 한다고 거짓말하셨어요? 왜 그때 미리 얘기 안 하신 거예요?'

이렇게 마음속에 준비하고 있는 말을 꺼내려는데 의사 선생님이 너무나 친절한 얼굴로 설명을 시작한다.

입을 꾹 닫은 채 귀를 열고 울면서 앉아있다. 여기에 와 있는 내가 한없이 처연하다.

공포는 막연함을 만나면 증폭된다. 진단 이후 아무것도 결정되지 않았을 때의 하루하루가 두려움의 연속이었는데 요 며칠은 수술도 끝내고 한 고비를 넘었다는 생각으로 암환자 치고 꽤나 안도하며 시간을 보냈다.

그게 오늘로 다 엉망진창이 되었다.


"다학제 끝나고 외과 교수님께 다시 얘기했어요. 항암을 8번 하는 것이 안전할 것 같다고. 그래서 오늘 진료 오면 다시 얘기하려고 했어요"

친절함 뒤로 배신감이 몰려왔고 창피한 줄도 모르고 꺼이꺼이 울기만 했다. 패드에 무슨 숫자까지 요목조목 써가면서 확률을 이야기하는 이 남자. 정말 밉다. 항암 4회라며 행복함까지 느꼈던 나로서는 절망 그 자체다.

처음부터 8회라 했으면 좀 나았을까. 그럼 그때 또 절망했겠지? 뭐가 딱히 나을 것은 없다. 이미 암환자다.

말릴 틈도 없이 울어대니 교수님이 한발 물어 선다.

"그렇게 무서우면 4번만 해도 돼요. 1%라도 재발 위험을 낮추려면 8회를 권장하지만 환자분이 선택하세요" "밖에서 보호자분과 의논하고 다시 들어오셔도 돼요"

진상 민원인에게 양보한 것인가? 환자의 권익을 보호하는 것인가? 나에게 선택지가 쥐어졌지만 의미는 없었다. 답은 정해져 있는 것처럼 보였다. 의학지식도 없는 우리가 감정적으로 의논하고 들어올만한 주제도 아니었다. 어쩔 줄 몰라하는 신랑 눈을 한번 쳐다보고 난 고개를 떨구고 민원을 철회한다.

"다시 또 아프기 싫어요. 그냥 8번 할게요" 울음이 클라이맥스에 다다른다.

그렇게 항암 횟수가 2배로 늘어났다. 진단받은 날 만큼이나 울었다.

항암이 8회가 되면서 캐모포트도 이식해야 했다. 횟수가 늘어나면서 슬픔도 해야 할 일도 늘어난 셈이다.

캐모포트란 정맥혈관을 통해 심장에 가까운 굵은 혈관까지 관을 삽입하는 시술로 100원짜리 동전 크기의 원통형 기구를 피부 아래 이식해 항암제가 혈관으로 직접적으로 연결되도록 하는 주사관이다.

도망치고 싶었지만 딱히 도망을 갈 곳이 없어 제자리에 멈춰 서서 시키는 대로 따라가고 있었다.

캐모포트를 심어야 다음날 첫 항암을 할 수 있었기 때문에 항암 하루 전날 입원했다. 포트 때문에 또 수술방에 들어가야 한다. 하. 무섭다. 괜히 이것저것 찾아보면서 공포심만 더 커졌다. 곳곳에 널린 수많은 정보가 독이 될 때도 있다. 가끔은 아는 게 힘이 아니라 모르는 게 약이라는 말이 더 와닿는 이유가 이래서다.

병원에서는 야생에서 살아남기 위해 청각이 발달하는 동물처럼 작은 소리에도 예민하게 반응한다. 간호사의 다가오는 발자국 소리가 크게 들리며 날더러 준비하라고 얘기한다. 뭘 준비하지? 마음을? 아무튼 다시 바퀴 달린 침대에 누워 끌려내려간다. 또다시 차가운 방으로 들어왔다. 온몸이 굳어지는 느낌이 들고 여기 왜 이러고 누워있나 처량한 내 모습에 또 눈물이 난다. 이놈의 눈물은 써도 써도 마를 생각 없이 계속 나오는 화수분 같다. 국소마취만 했기 때문에 온갖 거슬리는 동작, 소리, 심지어 살타는 냄새까지 나서 모든 감각을 자극한다. 불쾌한 자극들이 가득한 수술방이다.

초긴장 상태로 약 1시간가량 정신 말똥말똥한 채로 고문받는 모양새로 수술방에 누워 있다가 가슴에 관을 심은 여자가 되어 병실로 돌아왔다. 지혈을 위해  무거운 모래주머니를 시술부위에 올리고 몇 시간을 꼼짝 않고 버티며 누워있어야 한다. 몸은 움직이지 못하는데 그럴수록 갖가지 생각들이 미친 활어처럼  날뛰기 시작했다.  '도대체 이 지겨운 싸움은 끝이 있는 걸까?' 서글픈 질문을 하며 지쳐서 잠들었다.




첫 번째 항암주사를 맞는 날 아침이다. 드라마에서나 보던 일이었는데 내가 주인공이 되었다. 혈압재고 채혈한 후 여러 가지 컨디션을 체크하며 역시나 예외 없이 분주한 병원의 이른 아침이 시작되었다. 새벽에 일찍 눈이 떠지고 다시 잠들지 못하는 일이 잦아지고 개운하게 잠을 자고 일어난 날이 언제였던가 싶다.  눈이 떠지면 슬픔도 함께 떠져서 깨어있는 시간이 고통이다. 이런저런 생각에 빠져있는데 이것저것 약들을 내 자리로 가져온다. 구토를 예방해 주는 약부터 일단 먹으란다. 구토하면 안 되니까 아주 착실히 먹고 주사약이 들어올 시간을 기다린다. 빨간색 항암제가 나타났다. 커뮤니티에서 익히 들어 이미 알고 있었지만 직접 보니 아주 마음에 들지 않는 색깔이다. 가슴에 있는 포트에 주사를 연결한다. 엄청난 긴장을 하고 있었는데 생각보다 간단했다. 심지어 팔목 혈관에 맞지 않으니 두 손이 자유로워서 편하다는 느낌마저 들었다. 다행히 주사약이 다 들어갈 때까지 난 구토하지 않았고 생각보다 괜찮았다. 얼굴이 좀 창백해지고 내 몸에서 내가 빠져나가는 느낌, 뭐 그 정도의 느낌이 있지만 견딜만한 정도였으니 다행이다. 나중에 알았다. 항암주사는 맞을 때가 아닌 맞은 후, 그 뒤에 엄청난 고통이  따라온다는 것을. 여기까지만 하자.

그렇게 첫 항암을 시작으로 총 8번의 항암을 무사히 마쳤다. 무사히라고 간단히 한마디로 쓰자니 욱하는 무언가가 올라와서 구구절절 쓰고 싶은 생각이 잠깐 들었지만 참기로 한다.

갖가지 부작용과 힘들었던 점은 글로 다  쓸 수가 없다. 쓰고 싶지도 않다. 쓰는 나도, 읽는 당신도 고통스러울 일은 하지 않을 것이다. 항암에 관련된 이야기로 책을 한 권 쓸 만큼 할 말은 많지만 재미없어서 쓰지 않기로 한다. 난 재미있게 살고 싶은 사람이다.

4번에서 8번이 되었지만 더 늘지 않고 거기서 끝이 났으니 얼마나 감사하고 다행인 일인가.

아이러니하게도 암환자가 된 이후 '다행'이라는 단어를 예전보다 더 많이 쓰게 되었다. 8번 하는 바람에 포트도 심고 그로 인해 주사도 편하게 맞고 혈관통도 없이 마칠 수 있었다. 생각을 고쳐먹기로 했다. 상황이 달라지지 않을 때는 내가 달라지는 수밖에 없다.

8번이나 했으니 얼마나 강력한 치료효과가 내 몸에서 일어날까? 그런 제안해 준 그 친절했던 종양내과 교수님에게 감사인사를 해야 할 것 같다.


마지막 8차 항암을 하는 날 난 교수님에게 이별을 고했다.


"그동안 고생했어요"

따뜻하게 인사를 건네는 남자에게 이별을 말했다.

"저희 이제 다시는 만나지 말아요" 매정하게 얘기했다.

"네, 그래요" 꼭 그러자는 눈빛으로 그 남자가 대답했다.


냉정하게 이별을 말했지만 아무도 슬프지 않았다.

헤어지는데  어떠한 미련도 질척거림도 없는 아름다운 이별을 했다.




그리고.

고마운 그녀 이야기

첫 항암을 위해 입원한 병실에서 만난 그녀. 맞은편 침대에 자리 잡고 큰 키에 수줍은 목소리로 나를 언니라 부르던 그 여자.

항암을 먼저 하고 수술을 나중에 한다는 나보다 한 살 어린 그녀. 항암으로 이미 머리카락은 다 빠져있는 상태로 웃으며 인사하는 그녀. 병원 반찬이 맛이 없다며 자기가 싸 온 계란말이를 내 식판에 올려주던 그녀. 불안해하고 겁먹은 나에게 든든한 지원군 역할을 해주었던 그녀.

머리카락 없는 여자가 아직은 머리카락 풍성한 나를 위해 환자복에 링거병 달고 병원밖 카페까지 내려가 커피를 사다 준다. 항암주사 맞는 동안 입안에 약 맛이 돌 수 있으니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시는 것이 좋겠다며 커피를 사다 주던 그녀. 그날의 커피와 병실의 모든 풍경이 사진처럼 내 마음에 박혀있다. 같은 환자복을 입고 동지애로 시작되었지만 환자복을 벗고 일상복을 입고 더 많이 애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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