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뭐 어때 Apr 04. 2024

두 번째 인생 첫 생일파티

보물 같은 편지 세 통

"이번 생일은 아주 특별하게 보내고 싶어"


진단 이후 난 두 번째 인생을 산다. 인생 2 회차라는 말을 여기다 쓰는 게 맞나 싶지만 아무튼 다시 산다. 그래서 나의 첫돌이라며 생일 전부터 가족들에게 대대적인 홍보를 했다. 물론 매년 생일을 챙겨주기는 했지만 수술하고 치료 중에 맞이한 첫 번째 생일은 의미가 남달랐기 때문이다. 암이라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 죽음이 가장 먼저 떠올라 두려웠다. 그런데 잘 버텨서 죽음과 가장 반대편인 생일을 맞이했으니 나 스스로 기특하달까? 그런 의미부여를 하고 싶어 대놓고 이벤트를 부탁했다. 일단 바닷가 앞에 펜션을 예약하고 모닥불도 피우고 생일파티를 하기로 했다. 항암 중이었기 때문에 멀리 갈 수도 없고 먹는 것도 조심해야 하며 모든 것에 신경 써야 하는  시기여서 대단한 무언가를 하기는 어려웠다. 집에서 가까운 곳으로 생일파티를 위한 가족여행을 떠난다. 도착한 펜션에 짐을 내려놓고 신랑과 나는 먹거리를 사기 위해 편의점으로 향하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모자를 눌러쓴 환자와 환자 보호자인 남편은  그저 서로가 안쓰럽고 애처로웠지만 서로 들키지 않으려 애썼다. 치료받느라 늘 집과 병원만 왔다 갔다 했는데 짧지만 여행이란 이름으로 바람 쐬러 나오니 설렘이 있었다. 그동안 매일 울며 지냈는데 오랜만에 느껴보는 기분 좋음이다. 편의점 쇼핑을 마치고 신랑은 양손 가득 먹을 것들이 담긴 봉투를 들고 나는 그 옆을 졸졸 따라서 펜션으로 돌아왔다. '서프라이즈! 세상에나!' 아이 둘이 열심히 불어서 벽에 생일축하파티 장식을 해놓은 것이 아닌가? 신랑은 일부러 아이들에게 장식할 시간을 벌어주기 위해 나를 데리고 편의점으로 간 것이었다. 내가 빨리 도착할까 봐, 혹시나  눈치챌까 봐 걱정했다는 말이 귀엽게 들렸다.  "HAPPY BIRTHDAY TO YOU" 황금색 글자가 반짝거리며 나를 반기고 있었고  너무 고마운 마음에 눈물이 났다. '내가 다시 생일 축하를 받는구나.' 가족들에게 고맙고 잘 버티고 있는 나에게도 고마웠다.



다음은 케이크커팅 시간이다. 식순이 있는 행사처럼 진행되었다. 가족들의 계획 속에 모든 것이 있었고 준비를 위해 난 한동안 나쁜 의도가 없는 왕따를 당하고 있었나 보다. 딸이 우리 부부 리마인드 웨딩 사진을 보내서 특별히 주문제작한 케이크란다. 고맙고 미안하고 기특하고 온갖 감정들이 뒤섞여서 복잡했지만 분명한 건 행복하다는 것이었다. 가족들의 생일축하 노래가 끝나고 다시는 아프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하며 간절함을 담아 촛불을 힘껏 불었다.


"다음 생에도 우리는 이쁜이 남편, 딸, 아들"
이보다 더 좋은 말이 있을까?

행사의 클라이맥스다. 가족들이 쓴 편지를 나에게 읽어주는 시간이다. 한 명씩 편지를 읽기 시작했고 당연히 눈물은 필수였다. 내용은 시작도 안 했는데 '바스락' 편지지 펼치는 소리에 벌써부터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린다. 마음 아픈 눈물이 아니니 울어도 괜찮다. 그 순간 나보다 행복한 사람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감동했고 가족이 있음에 한없이 감사했다. 그날의  보물 같은 편지 세 통을 나란히  화장대 거울에 붙여놨다. 힘들 때마다 몇 번을 다시 보면서 버틸 수 있는 힘이 되었고 오래 살고 싶은 이유가 되었으니 이쯤 되면 신묘한 힘을 가진 부적 같은 느낌이다.

어찌 보면 특별할 것 없는 평범한 편지일지 모르지만 그날의 나에게는 최고의 선물이었다. 살면서 이 정도의 진심과 사랑을 알아볼 수 있는 기회가 있다는 것은 행복이고 행운이다. 나의 첫돌은 그렇게 가족들과 울고 웃으며 보냈다. 인생 1회 차 때는 생일 주간이라며 몇 차례 친구들을 만나 술을 마시고 파티를 즐겼었는데 이제 내 생일에 술은 없다. 화려한 불빛도 없다. 그저 또 한 해를 잘 살아줘서 대견하다는 축하의 의미를 부여하는 소박한 파티가 될 것 같다. 그럼 어떤가? 첫돌을 시작으로 수십 년 맞이할 생일인데  이렇게 가족과 함께할 수 있으면 되었다. 더 바라면 욕심이다.



버팀목 역할을 해 주고 내 연재에 있어 빠져서는 안 될 가족들의 진심이 가득한 편지내용도 실어본다.

사랑하는 우리 이뿌니에게
이뿌니 오늘도 힘들지는 않았는지. 부디 덜 힘들고 다른 날보다 조금 더 즐겁고 행복했으면 좋겠다. 지난 20여 년의 시간 동안 언제나 나와 우리 가족들을 돌보고 살피느라 정말 수고 많았고 고마워. 요즘 우리 이뿌니가 너무 힘들어서 조금 걱정이지만 우리 힘을 합쳐서 멋지고 슬기롭게 그리고 건강하게 잘 이겨낼 수 있을 거니까 너무 걱정하지 말고 잘 지내보자. 치료 끝나면 같이 좋은데 여행도 가고 운동도 많이 하고 그동안 못 먹은 맛있는 것도 실컷 먹으면서 그전보다 훨씬 더 재미있고 행복하게  지내자. 잘해주고 있어서 정말 정말 고마워. 너무 예쁜데 더 많이 잘해주지 못해 미안하고 사랑해. 엄청 많이 사랑해. 남편이


사랑하는 우리 엄마에게
엄마! 올해 엄마의 생일을 너무너무 축하해. 작년에도 왔고 내년에도 올 생일이지만 오늘만큼은 엄마가 세상의 주인공이 된 듯 행복한 생각만 했으면 좋겠어. 사실 엄마가 나한테 처음 이야기를 해준 날에는 많이 놀라기도 했고 걱정도 많이 됐어. 엄마가 씩씩한 모습을 많이 보여주지만 속으로 정말 무서웠을 거고 힘든 순간도 많았을 걸 알아. 하지만 우리 가족들이 더 걱정할까 슬퍼할까 생각하면서 티 내지 않는 게 고맙고 미안했어. 그런데 엄마! 우리 아빠랑 나, 그리고 혁이는 엄마의 가족이잖아. 엄마가 멋있는 사람인만큼 우리도 조금은 멋있는 가족들이 되어줄 테니까 엄마가 힘들 때 조금은 기대도 된다고 말하고 싶어. 내가 지금까지 엄마 딸로 살아오면서 기뻤을 때나 힘들었을 때 언제나 제일 많이 공감해 준 엄마가 있어서 내가 더 가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게 되고 엄마아빠에게 부끄럽지 않은 딸이 될 수 있었던 것 같아. 항상 표현이 너무 서툰 딸이라서 미안하고 그럼에도 언제나 내 진심을 알아줘서 고마워. 생일 축하해. 사랑해 우리 엄마


사랑하는 엄마께
안녕하세요 저 혁이예요. 요즘 제가 기운 빠지는 장난 많이 쳐서 힘드셨죠? 앞으로는 쓸데없는 장난 줄여볼게요. 요즘 엄마 많이 힘드시니까 공부나 숙제 같은 건 제가 알아서 놓치지 않게 열심히 해볼게요. 평소에 엄마 옆에 잘 안 있어드렸던 것 같은데 죄송해요. 앞으로 시간 나면 엄마 옆으로 많이 갈게요. 엄마 이번 생일 엄청 축하드려요. 앞으로 행복하고 좋은 일만 있기를 바랄게요. 엄마 사랑해요.


우리는 시작도 끝도 사랑이다.


이전 08화 맘먹으니 못할 게 없네 2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