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왜 우리 이름은 세 글자일까?
[20가지 기묘한 고급 상식 열전]
우리나라 사람들의 보편된 이름은 한 글자의 성과 두 글자의 명으로 이뤄진다. 과거에는 이름이라 하면 성명의 명으로 간주하기도 했지만, 이제는 성명을 이름으로 통용한다.
일제시대 한국과 중국을 멸시하며 2등 및 3등 시민으로 폄하했던 일본이 우리를 두고서 지나인(중국인)들보다 못한 족속이라 주장한 데는 우리 이름에도 있었다.
수천 년 중국에 종속됐던 조선인들은 이름도 외자의 성을 중국 성씨에서 따라 3자짜리 이름을 썼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하면 삼국시대에 유명한 위인들의 이름이 네 자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어? 이게 뭐지?
백제의 장군 흑치상지, 왕자 부여융, 왕자 조미걸취가 있고 고구려에는 을지문덕, 연개소문 등이 있다. 성이 두 글자이고 이름이 두 글자거나 한 글자이다. 즉 지금 일본의 이름 구조와 같다. 어찌된 것일까?
몽고, 돌궐, 부여, 흉노 등의 북방민족들은 모두 성이 두 글자였다
한족만이 스스로 성을 권위의 상징으로 여기며 한 글자로 지었다
북방민족은 성은 선조의 뿌리를 이어가는 본이 아니라, 씨족 부락을 구분하는 명칭이다. 오늘날 일본의 성씨와 유래가 같다.
따라서 북방민족 부여씨의 후예였던 고구려와 백제계는 넉자 짜리 이름이 흔했고 성씨도 부여계와 돌궐계가 흔했다. 하지만 부여계가 아닌 흉노계였던 신라계는 이들과 달랐다.
흉노계는 한나라 때 서역으로 밀려나 훈족의 원류가 되었다는 이야기를 알 것이다. 즉 서역으로 이동하지 못한 동흉노는 한족에 동화되어 한족화 되었다.
신라계는 서역 이동 대신 잔류를 택한 한족에 동화된 흉노계였다.
그래서 신라계는 한족식 개명과 명칭을 따랐다.
그래서 고구려와 백제는 넉자 이름을 따르고 신라는 한족화 된 석자 이름을 따랐다. 여러분들 모두가 알다시피 이후의 역사는 신라계가 통일한 신라계 문화이다.
따라서 고려시대 이후부터는 철저히 한족식 개명이 정착됐다.
만일 신라가 삼국통일의 주체가 아니었다면, 우리는 두 글자짜리 성을 가졌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