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앞의 뮤즈

- 카페에서 글을 쓰는 할머니가 될거야

by 오후 Lapres midi

집에선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서 오늘은 커피값을 좀 쓰기로 했다. 한적한 카페에서 노트북을 켜고 글을 쓴다는 게 아직은 어색하고 쑥스러운 일이긴 하지만 집에 있다가는 단 한 줄도 쓸 수 없을 것 같아 모자 하나 눌러쓰고 방탈출! 카페 구석에 자리를 잡고 커피를 주문했다. 노트북을 열고 읽어야 할 책을 옆에 두고 각을 잡고 앉았다. 엣 헴! 그리고 가장 먼저 한 일은?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빠질 수 없는 그 일. 스마트폰 확인. 카톡과 SNS을 가볍게 확인하고 커피를 한 모금 마신 후 빈문서 창에 멍 때리고 있는데 노트북 너머로 눈에 띄는 한 사람. 앗! 오늘의 나의 뮤즈가 나타났다. 갑자기 내가 여기 온 건 운명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머리가 희끗하신 여성분이 노트북을 펴고 뭔가에 굉장히 집중하고 계신다. 그리고 마침내 옆엔 <카페에서 공부하는 할머니>란 책이 놓여있고. (이건 정말 우연이다. 그러니 운명일 수밖에^^) 내 앞에 정말로 카페에서 공부하는 할머니가 계신 것이다. 초상권만 아니면 사진이라도 찍어 올리고 싶은 심정이다. 힐끔힐끔 노트북 너머로 할머니를 관찰한다. 핑크 마스크가 어울리는 저 초로의 여인. 지금 무슨 일을 하고 있는 걸까? 혹시 강의를 준비하는 교수님일까? 아니면 문학을 사랑하는 작가나 번역가? 아니면 출판사 편집장일지도 모른다. 투고 원고들을 검토하거나 혹은 출판할 책들을 작업하는 걸지도. 그것도 아니면 나처럼 브런치 공모전을 준비하는 예비 작가님? 그 무엇이 됐든 결론은 너무 근사하다는 거다. 지금 내 앞에서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모니터에 열중하는 저분의 모습은 감동적이기까지 하다. 이런 걸 섹시하다고 하는 거겠지? 내가 꿈꾸던 미래의 모습이 바로 내 눈앞에 있다. 생이 다하는 날까지 나의 할 일이 있고 그것을 위해 열정을 쏟는 것. 사실 그것이 내가 꿈꾸는 어른의 모습이다. 그 일이 무엇이든 상관없다. 내가 좋아하고 나를 성장시킬 수 있는 일이라면, 누군가에게 작은 도움을 줄 수 있는 일이라면 다 좋을 것 같다. 폼생폼사로서가 아니고 카페에서 공부하는(또는 일하는) 할머니쯤 되면 삶의 내공도 보통은 아니지 않을까? 나에게까지 느껴지는 저분의 아우라에 나도 벌써 문서의 반을 채웠다. 왠지 커피라도 한 잔 사드려야 할 것 같다. 초면임에도 이렇게 긍정적인 영향력을 끼쳐주시다니.(감사합니다 무슨 일을 하시는지는 몰라도 꼭 성공하시길 기도합니다)


지금 내가 읽고 있는 <카페에서 공부하는 할머니>의 저자 심혜경 작가님은 ‘매일매일 공부하는 할머니가 되기를 꿈꾸는 공부 생활자’라고 자신을 소개한다. 공부를 취미처럼 하는, 목표나 결과보다 과정을 즐긴다고. 자기소개부터가 간질간질하다. 우리 할머니 하고 싶을 만큼. 27년 동안 도서관 사서로 일하셨고 국어국문학을 전공하셨는데 번역도 하신단다. 도서관과 책에서 얻은 독서 지식으로 인생의 경험을 확장해나가고 계신다니 이 또한 얼마나 매력적인가. 이제부터 이분은 나의 롤모델 되시겠다. 혹시 내 앞에 계신 저분이 이 분이 아닐까 하는 엉뚱한 생각도 해본다. 아니 이게 운명이라면 그런 일도 일어나지 않으리란 법이 없다. 잠깐 자리를 비우셨는데 너무 궁금하다. 노트북 앞으로 슬쩍 지나가 볼까 하지만 사람들 눈도 신경 쓰이니 참기로 한다. 읽던 책을 마저 읽고 쓰던 글이나 마저 써야지 싶다. 100번 망설이다 나온 오늘의 나의 선택을 칭찬하면서.

요즘 좋은 어른에 대한 글을 쓰고 싶어서 시작한 내 글은 매번 반성문 같아지고 있다. 내가 과연 어른 맞을까 싶고 세상에 완벽한 어른은 없을지도 모른다는 회의까지 들었다. 그런데 어쩌면 내가 어른에 대해 지나치게 높은 잣대를 대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른도 사람인데 뭔가 다방면에서 완벽해야 하고 타인에 대해선 무조건 본이 되어야 한다는 강박을 나 스스로가 만들어 놓은 건지도. 쑥을 다듬던 동네 할머니들의 모습도 충분히 아름다웠고 지금 내 앞에서 작업을 하시는 할머니도 충분히 멋있는데 내가 그동안 너무 이상적인 어른상만 찾은 건 아닌지.

하지만 세상엔 어른이 어른답지 못한 경우도 허다해서 언제부턴가 망상에 가까운 희망사항이 생겼을지도. 고령화가 당연시된 미래에 좀 더 어른스러운 어른들이 많아진다면, 세상은 어른들의 지혜로도 충분히 살만한 가치가 있지 않을까. 지혜로운 어른. 내가 되고 싶은 어른은 사실 지혜로 충만한 어른이다. 내 아이가, 내 아이의 아이가 삶의 고비에서 망설이고 있을 때 경제적으로나 현실적인 답은 제시해주지 못하더라도 슬며시 얹어 줄 수 있는 지혜 한 움큼 가진 어른이면 참 좋겠다. 그래서 나도 오늘은 카페에서 글을 쓴다. 공부하는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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