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꿈을 줍다

어른으로 가는 길에서...

by 오후 Lapres midi

봄부터 그림을 배우기 시작했다. 제일 만만해 보이는 펜 드로잉부터 해보기로 했는데(이것 또한 나의 오만이었다) 처음 흰 종이를 마주한 나는 두렵고 떨렸다. 이산 가족 상봉이라도 하듯, 맞선 자리에 나온 듯 그날의 떨림과 긴장은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정말 다시 찾을 수 있을까. 어떤 사람을 만나게 될까 하는 기분들.

미술은 어렸을 적부터 좋아했고 제법 잘한다는 칭찬을 듣곤 했다. 소질도 소질이지만 미술 시간만큼은 나의 몰입도가 가장 큰 시간이어서 나도 그 시간이 좋았다. 가정사로 속이 시끄러울 때도 그 시간만큼은 모든 걸 잊을 수 있었다. 상상하고 그리고 만드는 시간 속에서 나는 오롯이 나로 존재했다.

하지만 우리집에서 미술을 한다는 건 취미생활까지만이었다. 잘한다 잘한다 하셨던 부모님조차도 미술이 전공이 되고 직업이 되는 것은 반대하셨다. 나의 부모님도 당장의 행복보다 미래를 더 걱정하셨던 세대이신데다 공무원인 아빠는 누구보다 완고하셨다. 중학교 때도 바이올린을 들고 등교하는 나를 못마땅해하셨던 분이라 현악부를 계속하기 위해선 성적부터 올려놔야 했다. 그리고 어릴 적 장래희망이란 무지개 같고 신기루 같아서 하루에도 몇 번씩 바뀌었고 성장기의 나는 배우고 자라는 것만으로도 정신이 없었기에 미술의 꿈은 서서히 잊혀져 갔다.

그러다 고등학교 2학년, 문,이과를 결정해야 할 때 쯤 다시 기회가 찾아왔다. 미술 선생님께서 미술을 한 번 해보면 어떻겠냐고 권유하셨고 권유는 부모님 상담으로 이어졌다. 학교에 다녀오신 엄마는 아빠와 상의해보겠다고 하셨고 며칠 후 아빠의 반대의사를 전하셨다.

“아빠가 안 된대”

그 한 마디로 나의 꿈은 접혔다. 아빠를 상대로 싸울 용기가 없어서 눈물 담은 포기를 선택했다. 그리고 나는 어른이 되었다.


방송작가.

어쩌다 어른이 됐고 어쩌다 작가가 되어 20대를 보냈다. 그 시간은 꿈을 위한 시간도, 꿈을 이룬 시간도 아니었다. 말 그대로 우당탕탕. 하루하루가 전쟁 같았던 때여서 정신을 좀 차렸을 땐 이미 서른이었다.


전업주부.

프리랜서 인생을 끝내고 전업주부의 길로 들어섰고 아내, 엄마라는 타이틀이 추가되면서 지금까지 왔다. 현모양처가 장래 희망인 적은 없었던지라 이 분야는 몹시 낯설고 서툴기만 했다.무엇보다 재미가 없었다. 그래도 어른이라면 자기 삶에 책임을 져야 하는 법. 잘하든 못하든 최선을 다해야 했다. 지금까지 그래왔듯 주어진 삶에선 나름 열심히 살았다. 이젠 내 꿈보다 아이의 꿈이 더 중요했고 어른이라면 당연히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 날 쾅! 내 삶에 폭탄이 하나 떨어졌다. 지독한 독감 같은 마음의 병인 공황으로 내 존재가 흔들렸다. 무너지지 않기 위해선 뭐라도 붙들어야 했고 손에 잡히는 건 일단 잡고 봤다. 우연히 본 지역 잡지에서 우리 동네에 화실이 있다는 기사를 봤고 다음 날 등록을 했다. 평생을 고민녀로 살아왔고 나이가 들수록 심해진 결정장애는 어디로 사라졌는지 어느새 나는 스케치북을 마주하고 있었다.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내게 찾아온 마지막 기회라도 되듯 모든 힘을 그러모아.

바다를 그리고 마을을 그리고 사람들을 그리면서 나는 잃어버린 꿈들을 주워 서재의 책장을 한 칸 한 칸 채워가는 중이다. 조명도 관객도 없는 나만의 갤러리. 하지만 내게 더없이 소중한 공간이다. 아직은 모작 단계지만 나는 결국 그림 그리는 사람이 되었다. 이렇게 어른이 되는 길엔 잃어버린 것들을 다시 마주하고 찾게 되는 일들도 있나 보다. 헨젤과 그레텔이 떨어뜨린 하얀 조약돌을 따라 집으로 다시 돌아가듯 잃어버린 꿈들을 하나씩 따라가다 보면 거기엔 상심한 어린 내가 있을 거 같다. 어른이 된 나는 아직은 어린 나에게 내가 주워온 꿈 조각들을 건네주고 이젠 더 이상 상심해지 말라고, 너는 결국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 됐다고 말해줘야 겠다.


이전 02화나만 닮지 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