붕어빵이 되어가는 너에게
아이가 막 태어났을 때 신생아실에 누워있는 아이를 보며 남편과 나는 아이가 누굴 더 닮았는지 따졌더랬다. 한 부분이라도 자신을 더 닮길 원하는 마음이 컸던 것 같다. 반반 닮았겠지만 그래도 눈은 나 닮았다는 둥 코는 너 닮았다는 둥 이마는 어머님인데 하면서 하루가 다르게 변해가는 아이를 두고 엄마 아빠는 말이 많았다. 사실 막 태어난 아이는 천사였다. 때 묻지 않은, 흠집 하나 없이 순수하고 맑기만 아이. 방긋 한 번에 모든 시름을 사라지게 하는 그녀는 우리 집에 찾아온 천사였다. 하얀 도화지 같은 아이. 여기에 어떤 그림들이 그려질지 어떤 삶들이 올려질지 아이를 바라보는 엄마 아빠의 마음은 설레임 반 두려움 반이었다.
아이가 자라면서 닮은꼴 찾기는 생김새에서 행동으로 옮겨졌다. 아이가 그림을 잘 그리면 엄말 닮았다 하고 한글을 유독 빨리 깨친 걸 보면서는 아빠 닮았다고 그러고(하지만 문제는 서로가 인정하지 않는다는 거), 잔머리 굴리는 건 아빠 닮았고 까칠한 건 엄마 닮았고... 그래도 그때까진 자신을 닮았다고만 하면 은근 입꼬리가 올라갔다. 좋은 거든 나쁜 거든 일단 자기를 닮은 것만으로도 뭔가 뿌듯한 기분? 어떻게 안 좋은 점을 닮은 건데도 기분이 좋을 수가 있겠냐고 하겠지만 그땐 다 그렇다. 부모들이라면 누구나.
하지만 어느 순간 반전의 때가 찾아온다. 닮은꼴을 가지고 서로를 공격하는 때가. 누굴 닮아서 우기기 대장이고, 누굴 닮아서 무례하며, 누굴 닮아서 변덕스럽고, 누굴 닮아서 이기적인 거냐며 엄마 아빠의 목소리 톤이 높아진다는 건 아이에 대한 비난이기도 하지만 상대에 대한 공격이기도 했다. 아이의 자아가 형성되면서 아이는 점점 더 구체적으로 우릴 닮아갔다.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낸 제 부모를 닮는 게 당연지사겠지만 가르쳐준 적도 시킨 적도 없는 것까지 닮다니. 이것이 바로 유전자의 힘인가? 말투, 행동, 습관, 성격에 기질까지 엄마 아빠의 반반 믹스가 되어가고 있다. 한 때는 나를 닮았다는 말이 그렇게도 듣기 좋았었는데 이제는 꼭 그렇지만도 않다. 물론 부정적인 면만 부각돼서 그런 것도 있지만 나를 닮은 모습을 볼 때마다 내 안에 짙은 구름이 드리워지는 기분이다. 제발 나만 닮지 않기를 했던 부분까지 닮은 걸 보면 두렵기까지 하다. 나처럼 될까 봐, 나처럼 살까 봐.
언젠가 주일설교에서 목사님이 자녀에게 나를 본받으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부모가 있느냐고 물으신 적이 있었다. 다들 쓴웃음으로 반응했던 기억이 나는데 나는 쓴웃음만으로 끝날 수 없었다. 그날은 하루 종일 심각했다. 본받기는커녕 나를 닮을까 봐 불안한 데 과연 나만 그런 걸까? 부모들도 연약한 인간인지라 아이들 앞에서 실수하고 실패하는 모습을 수도 없이 보여줄 수밖에 없다. 함께 있는 시간이 많은 만큼 내 안에 숨기고 싶고, 숨겨왔던 것까지 다 들킬 수밖에 없다. 부모의 모든 것을 보고 들으며 그대로 흡수하는 아이들이라 조심한다고 하지만 애당초 좋은 모습만 보여주기란 쉽지 않다. 워낙에 타고난 성품과 인격이 뛰어난다면 모를까. 애어른으로 자라서 성인아이가 된 엄마 입장에서 양육은 결코 만만치 않았다. 일관성 없는 게 일관성인 엄마와 이제 막 사춘기에 접어든 딸이 하루를 같이 보낸다는 건 지뢰밭을 걷는 것과도 같다. 여기저기서 터질 때마다 바닥을 드러내는 서로의 민낯을 볼 때면 끔찍할 정도다. 거울을 보는 기분이랄까? 요즘은 잠자는 아이를 바라보며 주문 같은 기도를 한다.
‘제말 나만 닮지 마. 넌 나처럼 살지마’
아직은 내 아이에게조차도 당당한 어른일 수만은 없는 까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