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움을 저금한다

노년을 위하여

by 오후 Lapres midi

요양원에 계신 할머니께 다녀오시는 날의 아빠의 얼굴엔 늘 그늘이 진다. 이젠 자식도 못 알아보시는 할머니에겐 한결같은 소원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바로 집에 가는 것이다. 어느 날은 요양원을 다녀오신 아빠가 깊은 한숨과 함께 속마음을 토해내신 적이 있다.

“할머니한테 다녀오는 날이면 마음이 참 속상하네”

“무슨 일 있었어?”

“다른 할머니들은 그 곳에서 친구도 사귀시고 취미생활도 하시면서 나름 즐겁게 보내려고 애쓰시는데 너희 할머니는 여전하셔. 친구도 없고 툭하면 먹을 것 때문에 싸우시기나 하고 매일 아빠만 보면 집에 언제가냐고만 물으신다. 다른 할머니들은 자식들에게 잘 지내고 있으니 걱정 말라고, 다음에 올 때는 책 좀 갖다 달라고도 하신던데... 그 분들도 요양원 생활이 뭐 그리 좋으시겠냐마는 그래도 자식들에겐 싫은 내색 안 하셔. 너희 할머니는 매번 집에 데려다 달라고만 그러시니 간병인도 힘든가 봐. 갈 때마다 그런 모습을 보고 돌아오려려면 마음이 안 좋네.”


아빠는 밤늦게 전화벨이 울리는 것도 불안해하시는 분이다. 좋은 소식일리 없다고 생각하시기에. 할머니에게 무슨 일이 생겼을까 봐 늘 불안해하시면서도 막상 할머니를 만나고 오시는 날엔 언짢은 표정이시다. 안도와 함께 찾아오는 책임감이 아빠의 어깨를 누르는 것 같다. 집에 가고 싶다는 노모를 혼자 두고 와야 하는 현실에, 하지만 당신이 할 수 있는 건 이렇게 문안드리러 가는 게 전부라는 한계에, 당신마저도 언젠가는 요양병원의 신세를 지게 될 수도 있다는 생각에 수많은 감정이 교차하시는지도. 집에만 데려달라고 하는 할머니의 모습이 결국 당신의 모습이 되는 건 아닌가 하는 두려움과 씁쓸함 또한 작용한 탓이리라. 나 또한 내 미래를 생각할 때마다 막막해진다. 내 손으로 내 부모를 간병인 손에 넘겨주고 오는 심정은 어떨까? 집에 데려가 달라는 그분들을 뒤로 하고 오는 마음은 어떨까? 그런 일이 아예 생기질 않기를 기도하고 기도할 뿐이다. (치매란 자신뿐 아니라 가족들까지 무력하게 하는 병이 아닌가 싶다.)

아빠는 불편한 몸으로도 낚시며 등산, 헬스를 계속하고 계신다. 철마다 고사리, 버섯을 따러 다니시면서 소일거리를 조금씩이라도 만들어가며 사신다. 그 모습이 보기 좋으면서도 자기 자신보다도 나중에 자식들 걱정 안 시키려고 그러신다는 걸 생각하면... 아흑!

우리 할머니도 다른 분들처럼 뜨개질도 하고 책도 보고 운동도 하시면서 친구들분들과 사이좋게 지내신다면 얼마나 좋을까에 하는 바람과, 할머니처럼 될까 봐 더 신경쓰시는 아빠에 대한 짠함은 자연스럽게 나의 노년으로 이어진다. 아무것도 안 하고 가만히 있으면 퇴화는 시간 문제라는 걸 요즘 더욱 실감하는 나이가 되고 보니 더더욱 배움의 끈을 놓치지 말자고 다짐하게 된다. 한 치 앞을 모르는 게 인생이지만 할 수 만 있다면 계속해서 책을 읽고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려고 한다. 물론 어느 것 하나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생산적인 일들은 아닐 수 있지만 매일 무언가를 배우는 삶을 산다면 정신은 계속해서 자라지 않을까. 지혜라도 한 움큼 생기지 않을까. 오늘 하루 살아 갈 소명이 있다면 마지막 생을 어디에서 보내건 공허하고 무력해진 않을 것 같다. 세상에서 제일 하기 싫은 운동을 하고 돋보기를 의지해서라도 책을 보고 기억을 기록한다. 이미 주어진 오늘에서만큼은 최선을 다하기로 한다. 그것이 삶에 대한 책임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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