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꾸로 흐르는 시계

- 애어른에서 성인아이로

by 오후 Lapres midi
애어른
1. 하는 짓이나 생각이 어른 같은 아이
2. 하는 짓이나 생각이 어린아이 같은 어른.

어렸을 때부터 애어른 같다는 말을 줄곧 들었다. (애늙은이가 아닌 게 다행인가?) 생각해보면 환경적인 이유로 일찍 철이 들 수밖에 없었던 것 같다. 아수라 백작을 연상케 하는 아빠의 캐릭터로 삼한사온을 반복하던 우리 집, 오직 자식밖에 모르는 헌신의 아이콘인 우리 엄마, 그런 집에서 하필이면 첫째로 태어난 죄로 삼시세끼 눈칫밥을 먹으며 자란 덕분에 삶의 이치를 좀 빨리 깨달았달까?

“너 낳을 때 진짜 힘들었어. 의사가 딸이라고 한 순간 얼마나 울었는지 몰라”

“둘째 낳고 젖을 먹여야는데 젖은 부족한 데 넌 분유를 안 먹겠다고 울고 불고”

이런 얘기들을 들을 때마다 난 어렸을 때부터 엄마를 힘들게 한 존재, 종손 집안에서 아들이 아닌 죄, 게다가 동생의 밥줄까지 빼앗은 욕심쟁이였구나 싶었다. 지금은 한낱 추억쯤으로 여기며 웃고 넘어갔을지도 모르겠으나 이런 얘기를 들었던 때가 아직 자아가 다 자라기도 전이었다는 게 문제였다. 어른들은 무심코 던지신 말들일지도 모르겠지만 어린 나에겐 생채기를 남기고 말았다. 이런 배경을 갖고 태어난 나는 일찍이 철이 들었고 애어른 같다, 어른스럽다는 말이 마냥 칭찬인 줄 알았다. 그래서 더 어른같이 굴었다. 겉으론 기특해하지만 속으로는 짠해서 던진 말들이었을 텐데 말이다. (알고 보면 진짜 눈치 없었던 듯)

어른스럽다는 칭찬? 에 막중한 책임감까지 더해졌지만 아이의 능력은 그 부담을 다 감당할 수 없었다. 아무리 어른스러워도 아이는 아이 아닌가. 아무리 애를 써도 내가 넘을 수 있는 허들엔 한계가 있었다. 나는 넘어질 때마다 죄책감에 시달렸다. 부모님을 실망시켰다는 사실이 부끄럽기까지 했다.


시간이 지나고 진짜 어른이 됐다. (여기서 어른이란 물리적인 나이에 근거한 어른이다). 그리고 서른 무렵 나는 또다시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된다. 내가 성인아이란다. 성인은 성인인데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어린 시절의 문제를 안고 있는 성인이라나? 아 뭐래. 어렸을 땐 애어른 같다더니 이제는 애 같다고?


*성인아이
어떤 부분에 있어서 어른과 같이 생각하거나 행동하는 아이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어린 시절의 문제를 안고 있는 성인
<자료에 따르면 애어른과 성인아이가 결국은 같은 말일 수도 있겠다>

벤자민의 시계만 거꾸로 흐른 게 아니었나 보다. 나의 시계도 거꾸로 흐르고 있었던 건가? 혼란스러웠다. 애어른은 애가 어른처럼 굴어서 애어른이면 성인아이는 도대체 뭐란 말인지. 억울한 감정이 올라왔다. 나름 애써온 삶이 무너지는 기분이랄까. 그나마 다행인 건 때마침 치유 프로그램에 참여할 기회가 생겨서 어느 정도는 회복할 수 있었고, 지금은 그 아이가 사춘기쯤 됐을까? 몸의 나이는 갱년긴데 내면은 사춘기라니. 이런 나를 아내로, 엄마로 둔 가족들은 또 무슨 죄란 말인가.

얼마 전, 엄마한테 대놓고 물어봤다.

“민이가 태어났을 때 엄마가 그랬잖아. 젖은 모자라는데 내가 분유는 안 먹겠다고 울고불고했었다며. 그럼 민이는 분유만 먹고 자랐어?”

“아니. 모유도 먹었지.”

“나 때문에 못 먹었다면서?”

“너는 한두 번 그러다 바로 분유 먹었어. 어쩔 수 없잖아”

‘뭐라고?’

나는 이제까지 나 때문에 동생이 젖을 못 먹은 줄 알았다. 모유는 내가 끝까지 사수한 줄 알았다. 그런데 한두 번 그러다 포기했다고? 왜 그걸 이제 말해? 마치 난 양심도 배려심도 없는 욕심쟁이에 고집쟁이인 누나로 살게 해 놓고. (그래서 말은 함부로 하면 안 되는 거다. 농담일지라도.)

“그럼 나 낳을 땐 왜 힘들었던 거야? 내가 너무 컸나? 아님 한겨울이어서?”

“그것보단 네가 처음이서 그랬지. 첫째는 원래 힘들대. 둘째보다 셋째가 더 수월하고.”

“딸이라고 했을 땐 울었다면서”

“그랬지. 너도 나처럼 이런 힘든 일을 겪어야겠구나 싶더라고”

‘뭐야? 그럼 나한테 문제가 있었던 게 아니잖아?’

딸이라는 얘기에 울었대서 아들이 아닌 것에 대한 실망감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고? 순간 하늘이 무너지는 듯했다. 그 당시 젊은 엄마는 자신의 말 한마디에 딸이 이 지경까지 될 줄은 몰랐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너무 어렸기에 모든 것을 심각하게만 받아들였을 뿐이었고. 누구의 잘못이라고 꼭 집어 말할 수 없는 지금 난 또 왜 이렇게 억울한 건지.

차라리 생떼라도 부리며 내 욕구를 좀 더 표출했더라면. 싫은 건 싫다고 좀 더 당당하게 표현했더라면. 돌이켜보면 누군가가 나에게 그렇게 하라고 강요한 적은 없었다. 다만 애처럼 굴 때마다 돌아오는 거절감에 나 스스로에게 이러면 안 되는구나 스스로를 다그쳤을 뿐.

그래도 지금 이런 얘기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할 수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아무것도 모르고 지금까지도 성인아이로 살고 있었다면 더 끔찍했을 테니까. 내 안의 아이에게 그동안 힘들었겠다고 토닥토닥해줄 수 있었던 것만으로도, 이제는 좀 자유로워져도 된다고 응원해줄 수 있는 것만으로도 내 안의 아이는 조금씩 자라났고 지금은 그때의 모든 일들을 추억하며 글을 쓰고 있다. 이 또한 얼마나 감사한지.

비단 나만 이런 건 아닐 것이다. 이 세상엔 지금도 수많은 애어른들이 있고 성인아이들이 있을 것이다. 과거에도 현재에도 미래에도. 애는 애답게 살아야 어른다운 어른이 될 수 있는데 애가 애답게 살지 못하니 어른 또한 어른답지 못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 안타까워 난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나와 같은 누군가를 잡아 줄 수 있는 손이 되고 싶어서. 결코 당신의 잘못이 아니라고 말해주고 싶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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