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를 속인 여자들
언제부터인가 엄마 나이를 잊어버렸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엄마 나이는 서른여덟에서 멈췄다. 그 후 엄마 나이를 세려면 현재에서 생년을 뺀 후 1을 더해야 하는 수고로움을 거쳐야만 한다. 올해의 엄마 나이는 22-51+1 세이신데도 우리 집에선 아직도 서른여덟으로 통한다. 사연인즉 이렇다. 서른여덟이 되시던 해에 엄마는 우리 삼 남매에게 선포 비슷한 걸 하셨다.
올해부터 엄마 나이는 서른여덟이다. 알겠지?”
“왜?”
“앞으로 엄마는 나이를 안 먹을 거니까 엄마 나이는 쭉 서른여덟이야.”
“그런 게 어딨어?”
그렇게 엄마 나이에 관한 해프닝은 실없는 웃음과 함께 넘어갔다. 그런데 우리 뇌는 참 잘 속는다.(아니면 내가 잘 속거나) 엄마 나이를 생각할 때마다 서른여덟이 먼저 생각났고 나중에는 진짜로 그 나이에서 멈춰버렸다. 어떻게 그럴 수 있냐고? 그럴 수도 있더라. 몇 년 후 엄마에게 물었다.
“근데 엄마, 왜 서른여덟이야? 서른도 아니고 서른다섯이나 서른아홉도 아니고. 뭔가 애매하잖아”
“글쎄 사느라 바빠서 나이 같은 건 잊고 살다 보니 어느새 서른여덟이더라고. 이제 좀 살만해졌다 싶은데 곧 마흔이 된다는 게 서글프기도 하고.”
스물넷에 첫 아이를 낳고 2년 터울로 둘을 더 낳은 엄마의 서른여덟은 그런 나이였다. 내 나이 14살이고 막내가 10살이었으니 한숨 돌려도 되는 때.
그 후 엄마는 서른여덟으로 사셨다. 사실 사람은 몸이 늙지 마음은 잘 늙지 않는다. 아마 엄마 마음의 나이는 언제까지나 그 나이일 것이다. 처음엔 나도 그런 게 어딨냐고 웃으며 넘겼지만 내가 서른여덟이 되고 나서야 알았다. 마음의 나이는 서른여덟도 많다는 것을.
내 나이 서른여덟 때 나는 딸을 낳았다. 그것도 첫 딸을. 엄마는 한숨 돌릴 만한 때쯤 나는 숨 막히는 시간이 시작된 것이다. 노산이라 산후 회복이 더뎌 몸은 쉰도 더 된 것 같았지만 마음은 나이를 의식하지 못했다. 몇 년동안을 달고 살았던 말이 ‘왜 피곤하지? 왜 힘들지?’였다. 아이도 외동인 데다 비교적 순한 편이었고 살뜰한 남편 덕에 독박 육아도 안 했는데 아이가 36개월 때쯤엔 거의 그로기 상태가 됐다. 영양실조에 만성피로. 어디 가서 힘들다고 말하는 게 민망할 정도로 한 게 없는 것 같은데 난 정말 죽을 것 같았다. 그런데 그 이유를 한참 더 지나고서야 알았다. 마음의 속도가 몸의 속도를 못 따라가서 생긴 현상이었다는 걸. 몸은 계속 힘들다를 외치는데 마음은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이 정도로 힘든 건 내 마음에서 용납이 안됐다고나 할까? 이유 없이 피곤하고 짜증에 무기력까지 더해지던 어느 날. 내 나이를 세어 보니 마흔둘. 그때서야 몸 나이를 인지한 내 마음은 충격을 받았다. ‘내 나이가 벌써 마흔둘이라고? 왜? 왜 벌써 마흔둘인데?’ 내 마음이지만 좀 웃긴다. 자기가 28 청춘인 줄 안 건가? 그때서야 엄마의 서른여덟이 이해됐다. 나도 부랴부랴 ‘지금부터 내 나이는 서른둘’이라고 선포 비슷한 걸 했다. 동갑인 남편이 자신도 그럼 서른둘이냐며 어이없어했고 아직 어린 딸 나이는 무조건 많으면 좋은 줄 알아 그러면 안 된다고 했다. ‘내가 서른둘이라는데 왜들 그래?’ 했지만 거울 앞에 서니 양심이 고개를 들었다. ‘아무리 그래도 서른둘은 좀 심했지? 그래 마흔 둘로 하자. 지금부터 내 나이는 마흔둘, 딱 마흔둘만큼만 살자’
그 후 언제부터였을까? 내 나이도 헷갈리기 시작했다. 현재 기준 실제 나이는 우리 엄마 마음의 나이에서 10살이나 많은데도 내 나이는 아직도 내 맘대로 마흔둘이다.
사회생활을 하려면 나이에 민감해지기도 하겠지만 사실 전업주부에게 나이는 그다지 큰 의미가 없다. 애 나이 기준으로 엄마 나이를 가늠하기 때문에 노산이어도 청바지에 후드티 입고 야구캡을 쓰고 나가면 젊은 엄마로 봐주기도 한다.(나만의 착각이었을지도 모르지만) 대놓고 나이를 물어보는 일도 거의 없다. 그래서 한동안 정말 30대인 것처럼 살았다. 엄마가 아이 신세를 좀 졌다고나 할까? 문제는 아이가 학교에 들어가고 나서였다. 엄마들 반모임에서 나이를 공개해야 한다나? 호칭 때문이라는데 그런 게 어딨어? 나이 공개하면 거의 왕언니뻘인데 이건 좀 아니다 싶어서 반모임 불참. 하지만 나이란 게 숨긴다고 숨겨지는 건 아니라서 나의 정체는 드러났고 엄마들은 내 나이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현타도 이런 현타가 없다. 나이보다 동안이라는 말은 예의상이란 걸 알기에 패스!
다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고 하지만 숫자에 불과한 나이에 가장 먼저 무너지는 건 자신이다. 어른이 되는 것과 나이를 먹는 건 또 다른 의미니까. 만년 청춘으로 살고 싶어서라기보다 아직은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마음 때문일 것이다. 늘 나이 앞에서 안타깝고 아쉬운 건. 철없던 시절로 돌아가는 것도 바라지 않는다. 딱 마흔두 살 만큼의 어른으로 살고 싶다. 마음도 딱 거기까지만 늙고 싶다. 적당히 알고 적당히 모르는 나이, 마흔두 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