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의 숙제가 더 많기에...
“엄만 좋겠다”
“왜?”
“숙제 없어서”
“난 엄마가 제일 부러워”
“왜?”
“학원에 안 다녀도 되니까”
세상에서 엄마가 제일 부러운 딸. 그런 딸에게 엄마의 토털 16년의 학교생활과 그동안의 숙제량을 읊을 수도, 라테는 말이야를 연발할 수도 없어 엄마는 아이의 말 한마디에 프로 백수가 되고 만다. 게다가 엄마는 스마트폰도 유튜브도 보고 싶을 때 맘대로 보면서 자기한테는 시간제한은 기본에 스마트폰만 들고 있어도 또 핸드폰이냐며 잔소리를 해대니 부러움과 억울함이 동시에 올라오나 보다.
“너도 빨리 커서 어른이 되면 돼지”
“근그건 좀 싫어”
“왜?”
“결혼하고 아이 키우는 것도 별로인 것 같아”
“헉”
자기 좋은 것만 하고 싶다는 얘긴데 세상이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걸 곧 알게 되리라. 스마트폰 세상에서 유튜브도 원 없이 보고 게임도 시간제한 없이 하는데 아무도 잔소리는 안 하는 세상이 아이들이 꿈꾸는 세상일까? 그렇다면 어른들이 꿈꾸는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 어른이 광범위하면 부모가 꿈꾸는 세상만이라도 상상해 본다면? 잔소리 안 해도 아이들이 알아서 일어나고 학원 가고 숙제하고 음식도 골고루 먹고 일찍 잠드는 세상? 아무리 생각해도 현실 불가능할 것 같은 이 기분은 뭘까? 솔직히 어른들도 잔소리 없이 알아서 일어나고 회사 가고 알아서 아이들 끼니 챙기고 집안일 챙기는 게 쉽지 않다. 배우자든 부모든 심지어는 아이의 잔소리가 있어야 마지못해하는 일들도 있으니 아이들만 탓할 일은 아닌 것 같다.
요즘 우리 집 아이는 학원병에 걸렸다. 학원만 가려고 하면 배가 아프거나 머리가 아프고 가슴이 답답하단다. 학원병은 친구랑 놀 때는 괜찮고 학원 끝나고 집에 오면 또 괜찮은 병, 학원 가기 20분 전부터 발병하는 병, 엄마를 미치게 하는 병이다. 약도 없는 병이다. 아파도 학교 가서 아파야 하는 시절에 학교를 다녔던 나로선 도저히 이해가 안 가는 상황이지만 아파서 아프다는 데 어찌하랴. 정신력으로 버티라고 하면 꼰대 밖에 안 되는 이 시점에 묘약은 과연 뭘까? 쿨~하게 “그럼 오늘은 쉬어!”라고도 해주고 싶지만 나쁜 습관만 들 것 같아서 딱 한 번 쿨한 뒤로는 무조건 보낸다. 이럴 때 부모는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부모들의 숙제다.
우리 딸이 세상 부럽다는 엄마의 삶은 정말 좋을까? 어른들은 뭐든 맘대로 할 수 있을까? 어른이 되어서 할 수 있는 것도 많아졌지만 그만큼 할 수 없는 것도 많아진 것 같다.
“거짓말은 나쁜 거야” 해놓고 아이 앞에서 거짓말을 할 수 없다.
“학원 자꾸 빠지면 습관 돼서 안 돼” 해놓고선 운동(수영)을 거를 수가 없다.
“숙제는 밀리지 말고 해야지” 해놓고선 집안일을 미뤄둘 수만은 없다.
“차도에선 뛰지 말고 양쪽 살피고 걸어야지” 하고선 신호등 깜빡이는 횡단보도에서 전력 질주하거나 무단횡단을 할 수 없다. 아이에게 하지 말라는 것은 어른도 하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말로만 해서도 안된다. 바른 식사 태도, 예의 바른 태도, 부지런한 모습, 공손한 말씨 등을 삶으로 자연스럽게 행동으로 보여줘야 한다. 하고 싶은 일만 하고 먹고 싶은 것만 먹는 어른이 될 수는 없다. 특히 아이를 키우는 어른들은 해야 할 일들이 몇 배는 많아지는 것 같다. 아이가 커갈수록 부모 잔소리만큼 아이의 지적도 늘어난다.
“엄마도 그러면서, 아빠도 그러잖아”
아이들도 눈이 있고 귀가 있다. 움직이는 cctv다. 그러니 일거수일투족을 조심하고 신중해야 한다. 드라마 정주행을 하고 싶어도, 게임 랭킹을 올리고 싶어도 아무 때나 할 수가 없다.
성실이 취미고 인성이 특기라면 모를까. 연약한 존재에 불과한 한 인간이 어른이 되고 부모가 되는 것은 쉽지 않다. 완벽까지는 바라지 않더라도 아이들 앞에서 만큼은 솔선수범해야 하는 상황들이 만만치 않단 말이다. 고백건대 아이에겐 ‘이래라’ 해놓고 나는 ‘저러고’ 있고, ‘저래라’ 하고선 나는 ‘이렇게’ 할 때가 있다. 그래서 가끔은(아니 종종) 화내고 잔소리하는 내가 위선적으로 느껴진다. 겉 다르고 속 다른 이, 바로 나다. 숙제는 아이들만 있는 게 아니다. 부모들도 매일매일이 숙제다. 전업주부의 사정이 이러하면 직장에 다니는 회사원, 자영업자, 서비스업을 하는 어른들은 어떨까?
어른이 되는 것도 어렵지만 어른 노릇도 만만치가 않다. 이제 곧 어른이 더 많아지는 시대가 온다. 고민이다. 어떻게 해야 어른다운 어른이 될 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 어른 노릇을 잘할 수 있을까? 몸만 어른인 어른이 많으면 안 될 텐데. 성숙한 어른으로 가는 길... 그 길이 참 녹록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