흘러 흘러 바다 닮기를

- 사춘기를 시작하는 너에게

by 오후 Lapres midi


이제 열두 살 된 딸의 얼굴에 여드름이 났다. 아직 초등학생인데 여드름이라니. 요즘 아이들 성장이 빠르다더니 내 딸도 예외는 아니었다. 엄마인 나는 아이의 여드름이 자꾸 거슬렸다.

“세수했어? 꼭 비누로 씻어. 여드름 관리 잘 안 하면 나중에 피부 나빠지니까 잘 씻어야 해”

하지만 아무리 얘기해도 소 귀에 경읽기다. 하루는 혹시나 하고 아이에게 물어봤다.

“혹시 넌 여드름이 나니까 좋아?”

그렇단다.

“왜 좋은데?”

어른이 돼가는 것 같단다. 뜻밖의 대답이었다. 여드름이 나에게 없애야 할 존재였다면 아이에겐 어른이 돼가는 표식이었던 것이다.

“어른이 되고 싶어?”

꼭 그런 건 아니란다. 하지만 자신의 몸에서 일어나는 변화가 신기하기도 하고 설레기도 하나보다. 2차 성징이 시작되면서 가슴의 몽우리와 여드름, 변성기 등은 우리가 어른이 되어 간다는 신호일 수 있다. 애벌레가 번데기 시기를 거쳐 나비가 되듯 아이들도 2차 성징과 사춘기를 거쳐 어른이 되는데 (사람이든 동물이든 성장기는 그리 아름답지 못한 듯) 그렇기에 이 시기를 어떻게 보내느냐는 매우 중요할 것이다.

첫 생리를 시작하면서 엄청 울었던 기억. 가슴 몽우리가 생기면서 엄청 부끄러웠던 기억, 생각해보면 나의 그 시절은 온통 부정적이었다. 변화에 예민한 내게 찾아온 이런 신호들은 엄청난 스트레스였고 두려움이었다. 중학교 1학년 때 가정 시간에 배운 월경과 임신에 관한 상식적인 지식이 전부였는데 실제로 접했을 땐 충격, 충격, 충격이었다. 아이를 못 낳아도 좋으니 월경을 안 할 수만 있다면 좋겠다는 말도 안 되는 기도까지 했다. 그 후로도 그 부정적인 생각과 감정들이 남아 있어서 생리증후군을 유난히 심하게 겪어야 했다 왜 그랬을까? 무엇이 그렇게 두려웠을까? 지금도 다 풀리지 않은 의문들이지만 누군가가 괜찮다고, 이렇게 어른이 되어가는 거라고 말해줬더라면, 어린 나를 좀 안심시켜줬더라면 어땠을까?



그런 나와는 달리 아이는 몸의 변화를 비교적 수월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나처럼 울고불고하지도 않고 오히려 즐기는 쪽이다. 자신이 이젠 어른이 되어간다는 게 마냥 신기한 듯 보였다. 그렇다. 어른이 되는 건 이렇게 물 흘러가듯 자연스러워야 하는지도 모른다. 모퉁이도 만나고 웅덩이도 만나겠지만 물이 물길을 따라 흘러가는 게 자연스럽듯 사람도 자연스럽게 성장할 수 있어야겠지. 그렇기 위해서 어른들은 그 아이들이 물길을 따라 흘러갈 수 있도록 웅덩이는 메워 주고 막힌 길은 터줘야 할 테고. 물통에 퍼서 바다로 옮겨주는 게 아니라 스스로 흘러가되 멈추지 않도록 지켜보고 도와줘야겠지. 그래야 흘러 흘러 바다에 닿을 때쯤 넓고도 깊은 몸과 마음을 가진 어른들이 될 수 있을 테니까.


한 아이가 어른이 되기 위해선 어른이 필요하고 좋은 어른이 되기 위해선 좋은 어른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한다. 그래서 지금부터라도 좋은 어른이 되려고 한다. 내 아이에게, 다음 세대들에게 물길을 내줄 수 있는 그런 어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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