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르고 또 오릅니다
<읽기 전에>
이 글은 결혼을 등산에 빗대어 쓴 글일 뿐 전문적인 상식과는 무관하오니 등산 애호가 및 전문가 시라면 읽지 않으셔도 좋습니다.^^
사람들은 저마다의 가야 할 길이 있다. 어떤 길은 넓고 어떤 길은 좁다. 어떤 길은 험하고 어떤 길은 평탄하다. 때론 길을 잃고 헤매기도 하고 때론 지름길을 발견하기도 한다. 때론 멀리 돌아갈 수도 있고 때론 다시 되돌아가야 할 수도 있다. 때론 누군가와 함께 가기도 하고 때론 홀로 가기도 한다. 하지만 이 길 위에서의 법칙은 단 하나다. 계속 가야 한다는 것이다. 돌아가더라도 가야 한다. 잠깐 쉬더라도 가야 한다. 끝은 저마다 다를 것이다. 하지만 그 과정에선 모두가 나름의 성장과 변화를 경험하게 된다.
어른이 되는 길도 마찬가지 아닐까. 어른으로 가는 수많은 길 중 '결혼'이라는 길이 있는데 그 길은 혼자 갈 수 없다는 특징이 있다. 때론 둘이, 때론 셋이, 때론 다수가 걷게 된다. 외롭지 않아서 좋긴 하지만 녹록지 않은 산길이다. 그래서 처음부터 신중한 숨 고르기와 보폭 선택이 중요하다. 초반에 너무 힘을 줘서도 안되고 너무 빼서도 안된다. 내겐 그랬다. 서른둘, 결혼이라는 이정표를 만났고 가족들에게 등 떠밀리듯 접어든 길. 꽃길만 걸으리라곤 바라지도 않았지만 그렇다고 처음부터 이렇게 가파를 거라곤 상상도 못 했다. 게다가 야생적이기까지 했다. 길들여진 것이라곤 거의 없었다. 아주 딱딱한 새 신발을 신은 기분이랄까? 기분은 좋으나 어딘가 모르게 많이 불편한.
간혹 바람이 불어와 땀을 식혀주기도 하고, 간혹 내리막 길도 있어서 콧노래가 나오기도 하지만 결혼이란 등산 코스엔 그런 길이 자주 있진 않았다. 산에서의 비바람은 가혹하고 더위는 미치게 헸다. 게다가 산속의 날씨는 변화무쌍하기까지 하다. 그러다 마주친 파란 하늘, 새소리, 계곡 물소리에 힐링이 되는 길, 나무 사이로 쏟아지는 빛줄기에 마치 꿈속을 걷듯 걷게 되는 길, 한차례 소나기가 지나가면 무지개도 볼 수 있는 길. 그런 날들이 있어서 다시 힘을 낼 수 있는 길이 결혼의 길이도 하다.
하지만 너무 춥거나 너무 더운 날이 계속되면 지치는 시점이 온다. 인내에도 한계가 오기 때문에 싸울 수밖에 없는데 싸우기라도 하는 날이면 더 이상 잡아주고 밀어주는 건 없다. 너무 빨리 간다고, 또는 너무 늦게 온다고 짜증만 낼뿐이다. 좁은 길을 만나면 한 줄로 서서 가야 하는데 누구는 먼저 간다고, 누구는 나중에 간다고 싸운다. 그러다 답답하면 소리를 지른다. 하지만 내지르는 소리는 결국 메아리쳐 내게 돌아온다. 어떤 날은 중간에서 하산하는 사람들을 만나기도 한다. 어떤 부부는 냉랭한 기운을 뿜으며, 어떤 부부는 하산하는 와중에도 다툰다. 아이들은 뒤쳐져 넘어지고 다치고 운다. 과히 보기 좋은 광경은 아니다. 그래도 다다른 곳이 막다른 절벽일 수도 있으니 나름 최선의 선택을 했으리라 생각한다. 한 번 들어서면 멈추고 싶어도 하산하고 싶어도 쉽지 않은 길, 그 길 중 하나가 결혼이라는 길이다. (그러니 신중하시길...)
나도 몇 번 하산할 뻔한 일들이 있었다. 하지만 어떤 지점에선 돌아가려니 여기까지 온 것이 아까워서 포기했고, 어떤 지점에선 내려가는 길이 없어서 포기했고, 어떤 지점에선 사람들이 떠밀려 오는 바람에 포기했다. 그래도 이 길은 정말 아니다 싶어서 돌아 가보려고도 했다. 정 안되면 뛰어내리는 최악의 방법을 고민하기도 했다.(여기선 정말 조심해야 한다. 누군가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할 때다.) 더 이상 오르는 게 무슨 의미일까 싶고, 어디가 정상인지 까마득해 한없이 무기력해지기도 했다. 결혼이라는 등산에서 만나게 되는 난코스 중 하나는 흔들 다리였다.(이 다리는 모든 인생길에 다 있어서 어느 길로 가든 언젠가는 만나게 돼 있다) 결혼에서 흔들 다리는 아마 시댁(처가)의 문제가 있거나 심각한 건강 문제 아니면 아이에게 무슨 일이 생겼을 때가 아닐까 싶은데 이 순간은 정말이지 아찔하다. 도저히 발이 떨어지지 않는데 앞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성큼성큼 건너가는 남편의 뒤통수가 원망스러울 때도 있었다. 두 눈을 질끈 감고 원망과 두려움으로 건넌다. 머리끝부터 발 끝까지 긴장한 탓에 곁에서 누군가 조금이라도 심하게 움직인다 싶으면 날이 서고 제정신이 아니게 된다.(고소공포증이 있는 사람에겐 죽음의 공포와 비슷하지 않을까?)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것은 암벽 타는 코스와도 유사 하다. 어느 때보다 신중해야 하고 어느 때보다 많은 에너지를 쏟아야 한다. 그렇게 해도 떨어지는 일이 태반이다. 떨어지고 다시 오르기를 얼마나 해야 하는 걸까? 몸이 부서져라 끙끙 대며 올라야 하는 길. 눈물과 땀으로 범벅되고, 긁히고 멍들기를 반복하는 최대 난코스. 다시 생각해도 아찔하다.
그렇게 16년을 걸어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쉽게 익숙해지지도 않으며 속도가 붙지도 않는다. 낯설고 험한 길이 끝없이 나타난다. 어디가 끝일까? 끝은 있을까? 끝내지 않는 한 끝나지 않을 것 같은 그 길, 사고라도 나서 구조대를 부르지 않는 한 한 번에 내려갈 방법이 없는데 그렇다고 사고 나기를 바랄 수도 없는 그 길이 내겐 결혼이라는 길이었고 이 길은 나를 조금씩 조금씩 바꿔나갔다. 내가 비로소 어른이 되는 길이었다.
이 길에서 나는 올라갈 때가 있는가 하면 내려갈 때도 있다는 걸 배웠고, 서로의 보폭에 맞춰야만 가장 안전하고 순탄하게 오를 수 있다는 걸 배웠다. 너무 배가 불러서도 너무 배가 고파서도 힘들다는 걸 알았고 모든 길엔 그 길에 맞는 속도가 있다는 것도 알게 됐다. 인내, 책임, 배려, 관용을 체득했고. 모험, 도전, 실수, 실패의 맛을 봤다. 잊을 수 없는 환희도 그 길 위에 있었고 잊을 수 없는 상처도 그 길 위에 있었다. 한 걸음 한 걸음이 번민이 되는 길이기도 했으며, 소망이 되는 길이기도 했다. 그리고 오늘도 그 길을 걷는 중이다. 지금은 걸을만한 경사에 산바람도 간혹 불어 땀을 식히는 중이라 잠깐 짬을 내어 이런 글도 남겨본다. 고비마다 만나게 되는 돌탑에 돌 하나 얹는 가만한 몸짓으로. (단, 돌탑을 지나칠 때는 조심해야 한다. 누군가의 간절함을 함부로 무너뜨릴 수 없으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