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악스럽게 변해가는 나
이제 막 운동을 끝내고 병원 진료까지 시간이 한참 남아서 커피를 마시는 중이다. 책도 읽고 SNS에 피드도 올리면서 나름 행복한 휴식을 보내고 있는 데 핸드폰이 울렸다.
- 집사님 잃어버린 카드가 이것 맞아요?
잃어버린 줄도 모르고 있다가 어제 카드 쓸 일이 생겨서야 비로소 알게 된 바로 그 카드다. 혹시나 해서 오늘 아웃렛에 가신다는 집사님께 부탁을 드렸다. 마지막 사용한 곳이 그곳이었기에.
- 맞아요
- 신분증 가지고 오시면 된대요
- 감사합니다
안심이다. 오늘까지 못 찾으면 분실신고하고 재발급받아야겠다고 생각했는데 번거로운 일이 하나 줄었으니 다행이다. 병원 시간이 거의 다 돼서 주차장에서 차를 빼서 나왔다. 그리고 내가 도착한 곳은 아웃렛. 그때까지는 정말 아무 지각이 없었다. 도착해서야 알았다. 병원을 건너뛰었다는 걸. 하지만 돌아가기엔 이미 늦어버린 시각. 여태 병원 진료 기다려놓고 여기로 오다니. 참 나란 사람도. 병원 진료를 다음 날로 다시 잡고 일단 카드를 찾으러 갔다. 카드도 셀프 계산대에서 계산하고 물건만 챙겨 온 거였는데... 최근 이 놈의 건망증 때문에 약이 오를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헛걸음을 하거나 외출할 때 두세 번씩 집을 오가야 하는 건 귀여울 정도다. 그저껜 수영하러 갔다가 남편 수영복을 들고 왔다는 사실을 알고 샤워만 하고 나왔고, 어젠 국을 데우다가 냄비까지 까맣게 태워 냄비를 씻는 내내 기분도 깜깜했더랬다. (사실 냄비 태우는 일은 비일비재하다ㅜㅜ)
내 몸 어딘가 문제가 생긴 게 아니라면 나이 때문일 텐데 나이 듦에 대해 고민이 시작된 것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 여기서 나이 듦이란 정신적인 면보다는 육체적인 면에 더 높은 비율을 할애한다. 스마트폰의 영향인지 나의 윗세 대보다 일찍 찾아온 노안이 그 시작이었다. 안경은 칠판 글자 볼 때만 필요한 물건이었는데 이젠 한 개의 안경이 더 생겼다. 일명 다초점렌즈 안경. 말이 거창해서 그렇지 돋보기 기능이 추가된 안경이다. 칠판 글자도 보고 책도 볼 수 있게 하는 첨단 기능의 안경이랄까? 안경 하나로 삶은 더 거추장스러워졌다. 나이 듦이란 내 몸으로 할 수 있는 기능은 줄고 외부의 힘에 의존하는 경우는 늘어나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씁쓸해지기도 했고.
가까운 게 안 보여서 그런 걸까? 노안과 함께 나빠진 마음의 시력. 당장 챙기고 살펴야 할 사람이나 일들을 놓치는 현상들이 늘어나고 있다. 등잔 밑이 어두워졌다. 게다가 자꾸 보고 싶은 것만 본다. 식견이 좁아진다는 게 이런 걸 두고 하는 말인 듯. 톡이나 문자로 오는 약속 날짜들을 매번 엉뚱하게 기억한다. 건망증의 문제라고만 보기엔 기억의 경로는 정확할 때가 있다. 다만 문제는 숫자 하나, 단어 하나를 내 마음대로 본 게 문제다.
못 알아듣는 건 젊었을 때도 그랬지만 올해는 대 놓고 청력 저하 판정을 받았다. 보청기까지 마련해야 할 판이다. 그런데 또 듣고 싶은 말은 쏙쏙 들어오니 참으로 신기한 노릇. 사람은 나이가 들수록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나 보다 했는데 정말 그런가 보다. 처음엔 이해가 안 됐는데 이제는 너무 이해돼서 슬프기까지 하다. 단순히 시력과 청력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하루 동안 쓸 수 있는 에너지는 갈수록 줄어드니 내 에너지 이상의 것들은 자체 처리해버리려는 뇌의 본능이랄까? 뇌과학자가 아니기에 더 깊이 들어갈 수는 없으나 주워들은 것을 꿰어 보자면 그렇다는 것이다. 시력과 청력이 둔해지면 마음(생각)도 둔해지는 건 자연의 법칙일지도. 나이 들수록 사려 깊어지고 현명해진다는 건 다 허무맹랑한 소리였던가. 아니면 그것도 어느 나이까지만 해당되는 얘기였던 걸까?
건강검진도 2년에서 매년으로 바뀌는 나이가 되고 보니 매년 주시하는 항목들이 있는데 그중 하나가 호르몬 변화다. 건망증, 불면증, 나잇살, 체온 조절 기능 저하 등의 증상들이 하나 둘 나타나는 걸 보면 갱년기가 코앞인데, (이 글을 쓰는 당일 확인한 피검사 결과에 따르면 확실하다) 아직 초등학생인 딸을 둔 엄마가 갱년기를 맞이하는 심정이란... 공포 그 자체다. 이런 비유가 비참하지만 삶의 에너지는 스마트폰 배터리와 같다. 방전되는 시간이 점점 짧아진다는 점에서. (웬만하면 이런 비유는 피하고 싶었지만 또 이만한 비유가 없으므로, 당신의 이해를 돕기 위해서는 어쩌면 이 비유가 최선이므로)
지금의 나를 조급하고 초조하게 하는 건 육체적인 노화 현상 때문만은 아니다. 어쩌면 잉여인간이 되어간다는 두려움 때문일지도. 아직 하고 싶은 일, 해야 할 일은 많은데 그것을 감당할 힘은 점점 사라져 간다. 반나절 만에 딸리는 기력이 이제는 피로회복제나 종합영양제만으로도 해결이 안 된다. 이런 내 몸을 보면 백세시대란 말도 의심스럽다.
누구나 바라는 바겠지만 나도 우아하게 나이 들고 싶었다. 한 물 간 세대로서가 아니라 세대를 아우르는 안목으로 나의 자녀와 그의 자녀들에게 현인 같은 사람이 되고 싶었다. (하지만 이대로라면 힘이 아니라 짐이 될 것 같다.) 나이가 들어서도 배움을 게을리하지 않으며 내 가 해야 할 일은 다른 사람에게 피해 주지 않고 해내고, 가진 건 없어도 나눔에는 늘 넉넉한 사람이 되고 싶었고 또 그렇게 될 줄 알았다. 경험만이 가져다줄 수 있는 위트와 유머까지 겸비한 뻔한 어른 아닌, 뻔뻔한 어른은 더더욱 아닌 펀(fun)하고 편안한 어른이 되고 싶었다. 내가 바라는 나이 듦이란 이런 거였는데...
필명이 오후인 이유는 내가 ‘인생의 오후’ 즘을 지나고 있어서이기도 하지만 오후란 말 앞에는 어떤 수식어구가 붙어도 자연스럽기 때문이다. 다정한 오후, 반전 있는 오후, 여유 있는 오후, 따뜻한 오후, 한적한 오후, 나른한 오후. 오후 하면 연상되는 이미지 같은 어른, 그런 어른이 되고 싶었다. 내가 오후란 이름으로 글을 쓰고 있는 이유이고.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것, 뒤늦게 그림을 배우고 소질도 없는 수영과 필라테스를 눈물 머금고 하는 것도 우아하게 늙고 싶어서다. 언젠가 누군가의 손에 의지 해야 하는 때가 와도 내 손을 잡아주는 그 사람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 힘이 되는 말 한마디 건넬 수 있는 할머니가 되고 싶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