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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는 모습까지 아름답기를 바라는가

: 복효근

by 윌버와 샬롯

예전 어느 TV 프로그램에서 정재찬 씨가 읽어주는 시 '목련 후기'를 듣고 무릎을 탁하고 쳤더랬죠. 그다음부터는 지는 목련을 보고 타박하지 않았습니다. 이제는 겨울 길에 연탄재 볼 일은 없지만 함부로 연탄재를 차지 않을 마음가짐을 안도현 시인이 주었던 것처럼 말이죠. 진정 시인은 위대합니다.




목련 후기 / 복효근

목련꽃 지는 모습 지저분하다고 말하지 말라
순백의 눈도 녹으면 질척거리는 것을
지는 모습까지 아름답기를 바라는가
그대를 향한 사랑의 끝이
피는 꽃처럼 아름답기를 바라는가
지는 동백처럼
일순간에 저버리는 순교를 바라는가
아무래도 그렇게는 돌아서지 못하겠다
구름에 달처럼은 가지 말라 청춘이여
돌아보라 사람아
없었으면 더욱 좋았을 기억의 비늘들이
타다 남은 편지처럼 날린대서
미친 사랑의 증거가 저리 남았대서
두려운가
사랑했으므로
사랑해버렸으므로
그대를 향해 뿜었던 분수 같은 열정이
피딱지처럼 엉켜서
상처로 기억되는 그런 사랑일지라도
낫지 않고 싶어라
이대로 한 열흘 만이라도 더 앓고 싶어라



작년 가을에 이사오고서 봄을 그렇게나 기다렸습니다. 거실 베란다 바로 앞에 목련 나무가 있기 때문이었죠.


아직 추위가 가시지 않은 때부터 목련 나무를 계속 지켜봤습니다. 점점 커지는 봉오리를 한시도 놓치기 싫었습니다. 저 단단한 것에서 언제쯤 하얀 꽃망울이 터질지 그 순간을 똑똑히 목도하고 싶었거든요. 그건 아마도 책임감이었을지도 모릅니다. 내 앞에 펼쳐질 목련의 향연, 가까이서 오롯이 나만의 가질 수 있는 특권이 주어졌으니 마다할 이유가 없지요.


시작은 더디고 어려웠지만 잔치는 한순간이었습니다. 찬란했지만 너무나 그 순간이 짧아 아쉬웠습니다.


사랑을 줄듯말듯 밀당하듯 애를 태우게 하다가 너무나 금세 자기의 모든 것을 주고 맙니다. 애써 보고 싶지 않은 것까지 다 내어주며 결국에는 정나미가 뚝 떨어진 어느 처절한 사랑 이야기 같습니다. 마치 안나 카레니나처럼 온몸을 다해 사랑했기에 그 남은 흔적도 어느 것보다도 강렬합니다.


시를 읽고 감동해도, 지저분하다고는 생각은 하지 않지만 자꾸만 지는 목련을 슬프게 바라볼 수밖에 없습니다. 눈부시게 아름다웠기에 우리는 그 끝도 아름답기를 바라나 봅니다. 그러나 현실은 너무나 냉정하고 처연합니다.



상처로 기억되는 그런 사랑일지라도
낫지 않고 싶어라
이대로 한 열흘 만이라도 더 앓고 싶어라


미련한 바람이겠지만 저도 시인처럼 소망합니다. 열흘만이라도 좀 더 버티어주기를. 그러나 쩔 수 없는 일이겠지요. 그리고 영원한 것이 세상에 뭐가 있을까요. 찰나이기에 그 순간이 소중함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또한 저는 장담합니다. 꽃이 가버리고 나면 다시 연둣빛 이파리를 선물할 거라는 걸. 그걸 또 물색없이 바라보며 다시 사랑에 빠질 거라는 걸 말이죠.


집 앞 볕이 좋아 일찍 오고 일찍 가버리는 나의 2021년 봄의 목련꽃. 목련의 꽃말은 그 자태만큼이나 어울리게 '고귀함'이라고 하네요. 그 끝이 어떨지라도 목련처럼 온몸으로 다해 오늘을 사랑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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