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석 님은 신문 칼럼을 보다 알게 된 분이다. 이후 꾸준히 이 분의 글을 읽다 보니 팬이 되었다. 나도 이렇게 곱게 늙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한 분이기도 하다. 100세 가까운 나이임에도 소년 같은 순수한 글이 참 마음에 와 닿았다.
올해 100세가 되셨는데 나이가 두 자리 숫자에서 세 자리로 바뀌는 마음은 어떠할까. 몇 년 전 아이가 9살에서 10살이 되던 해는 엄마인 내 마음도 조금은 남달랐었다. 아이는 자기도 이제는 십 대가 되었다며 자못 진지하게 의젓해질 것임을 잠시나마 다짐하기도 했었다. 한 자리에서 두 자리로 바뀌는 나이에도 받아들이는 마음가짐이 이러한데 하물며 세 자리가 될 때의 그 감흥은 실로 어떠할지.
나이 한 살 더 먹은 것이 뭐가 대단하고 힘든 일이라며 정작 본인은 괜찮은데 주변에서 가만 두지를 않았다 한다. 여기저기 인터뷰에 TV 출연까지 하셨던 것 같다. 지인 중 한 분이 인간극장에 나오신 것을 보았는데 어쩐지 화면에서 쓸쓸함을 느꼈다는 말이 기억난다. 아무래도 혼자 사셔서 그랬던 걸까. 신문 속 글로만 김형석 님을 뵈었기 때문에 그분의 실제 일상이 궁금하기도 하다. 언제 기회가 되면 인간극장 영상을 찾아보고 싶은 생각이 든다. 글에서 느껴진 온화함, 그 연세에도 소년 같은 귀여움마저 다소 느꼈었는데 영상으로는 내게 어떻게 비칠지 모르겠다.
‘철학과 현실’ 계간지에 3년여에 걸쳐 쓴 글들이 출간될 것이다. 조선일보와 동아일보에 1년 가까이 게재되었던 칼럼과 글들을 책자로 내기를 원하는 출판사들이 기다리고 있다. 내 뜻을 도와주고 있는 후학들이 계획하는 일들도 있다. 금년 4월까지 계속할 강연회 청탁들도 들어와 있다. 그렇게 해서 100세가 아닌 ‘제2의 98세’가 채워질 것이다. 그 소원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98세였던 해에 부러울 것 없이 사셨다는 김형석 님은 이제부터 그때의 98세가 5년쯤 연장되는 마음으로 살고 싶다 말한다. 그 마음이 소망이고 욕심이라고까지 말씀하셨지만 부디 그러시길 응원한다. 칼럼 말미에 왕성한 흔적을 남기실 계획을 써놓으셨다. 그 계획을 보니 꼭 이루실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100세 되신 해에도 저리 일이 많으신 것이 부럽기도 했고 한편으로는 부끄럽기도 했다. 그분 삶의 반도 못 산 나의 유산은 무엇일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일까. 이미 정년퇴직을 한 자녀에게 밥 한 끼 사줄 수 있는 넉넉한 마음과 경제 자립이 글 중에 가장 눈에 띄는 대목이기도 했다.
Photo by Unsplash
100세 시대에 자식에게만 의지할 수 없는 노릇이니 서로 부담이 되는 상황을 맞이하지 않게 우리는 철저히 준비해야 한다. “엄마 아빠 늙으면 맛있는 거 많이 사줘야 해”하며 아이한테 농담처럼 했던 뜬금없는 희망사항을 이제는 거둬들여야겠다. 아이한테 부담이 되는 부모로 결코 남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나부터 든든해질 것이며 같이 늙어가는 자식한테 가끔은 맛있는 밥을 사줄 수 있는 유쾌하고 건강한 엄마로 존재하고 싶다.
그러기 위해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솔직히 별로 많지 않다. 다만 책과 신문을 읽고 글을 쓰며 걷는 것뿐이다.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이것이 현재로선 내 최선의 노력이다. 남길 만한 거대한 유산은 아직 없지만 이 최소한의 나다움을 찾기 위한 일상은 게을리하지 않으려 한다.
하루하루 살기도 버겁고 빡빡한 일상이지만 가끔은 나이 듦에 대해 생각해야겠다. 김형석 님과 같이 앞서 본을 보이시는 분들의 글을 읽으며 깨닫게 되고 다시 생각하게 하는 기회가 가끔씩은 생기니 그나마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