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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내 말 듣고 있어?

: 가만히 들어주었어

by 윌버와 샬롯
엄마, 내 말 듣고 있어?
내가 방금 뭐라고 그랬어?


아이는 참도 이상하지. 들어줄 마음과 시간의 여유가 있을 때는 자기만의 동굴에 쏙 숨어 있다가 엄마가 전혀 그럴 상황이 아닐 때는 옆에 딱 달라붙어서 잘도 재잘댄다. 변덕은 참 죽 끓듯 하지. 타이밍 맞추는 능력은 없지만 제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는지 없는지는 귀신같이 알아내는 놀라운 눈치력을 아이는 갖고 있다. 적절한 때를 서로가 맞추지 못하는 것, 어쩌면 그런 이유로 엄마와 아이의 소소한 소용돌이가 심심치 않게 일어나는 건지도 모르겠다.


그건 비단 아이와의 관계뿐만이 아니리라. 우리는 살면서 의도치 않게 관계의 불협화음을 종종 겪게 된다. 그럴 마음은 절대 아니었는데 생각지도 못한 지점에서 관계가 틀어진다. 오해도 쌓인다. 무엇이 잘못된 걸까?

어느 날, 테일러는 뭔가를 만들기로 했어.


테일러는 정말 뿌듯했지.


여기 민트색 빠삐용 옷의 몽실몽실 곱슬머리 귀여운 아이 테일러가 있다. 테일러는 새롭고 특별한 뭔가를 야심차게 만들기 시작한다. '짜잔~ 어때, 나 좀 멋지지'라고 말하는 듯 아이는 완성작을 보며 으쓱해하고 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새떼가 날아와 멋졌던 블록성은 와르르 무너진다.


삶이 뭐 그렇게 만만하던가. 블록을 차곡차곡 쌓는 것처럼 인생이 순탄하기만 하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우리는 이미 수없이 경험하지 않았나. 살짝만 건들려도 블록은 너무 쉽게 무너지는 것처럼 산다는 것도 내 의지와 상관없이 때때로 크나큰 절망을 안겨줄 거라는 것을 말이다.


그렇다고 좌절 앞에 마냥 슬퍼만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고통이 어차피 인간이 감내해야 할 숙명이라면 우리는 그것을 어떻게 견디고 이겨내야 하는지를 알아야 한다.


그런데 난데없이 새들이 날아와…
모든 게 무너져버리고 말았지.


가깝게 지내는 동네 언니에게 좋지 않은 일이 생겼다. 멀쩡하던 아이가 갑자기 희귀병에 걸렸다. 당분간 병원에 입원해 있어야 할 것 같아 만나기로 했던 예전 약속을 지키지 못하겠다고 언니는 말했다. 당장은 죽을 듯이 어디가 아픈 것이 아니어서 아이도 본인도 아직 실감은 못하고 있다고 했다.


전화로 담담히 소식을 전하는 언니에게 내가 해줄 수 있는 말은 별로 없었다. 그녀에게 내가 도대체 뭐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어떤 말을 한들 그녀를 편안하게 할 수 있기나 할까. 애써 차분하게 말하고 있는 그녀에게 너무 놀라고 목은 메었지만 나도 애써 평온하게 대답했다. 내가 겨우 그녀에게 꺼낸 말은 별 일 없을 거라고, 여태 그랬던 것처럼 이번에도 잘 지나갈 거라고 말했을 뿐이다.


전화를 끊고 너무나 먹먹했다. 우리 아이와 유치원도 같이 다니고 여러 체험도 함께 하고 하릴없이 자전거 타며 동네를 돌고 아이들을 모아 야구도 하고 온라인에서 시시한 농담을 서로 하며 깔깔대며 스마트폰 게임을 하던 그 아이가 많이 아프다니. 어느 것도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아니 어쩌면 그 순간, 그 불행이 내가 아니어서 다행이라고 솔직히 난 안도했을지 모른다. 그리고 옆에 있는 내 아이를 더 애달프고 귀하게 바라봤다. 뭐 하러 공부를 그렇게까지 시켰는지 모르겠다던 언니의 쓸쓸한 말에 난 속으로 '그래, 건강이 최고지. 다른 건 중요하지 않지.' 하며 내 아이들의 '아무 일 없음'에 가슴을 쓸어내렸다.


고통은 동행을 모른다.


엄기호의 <고통은 나눌 수 있는가>에서는 어느 누구도 당사자의 아픔을 대신해 줄 수 없다고 말한다. 상대의 불행에 아파하다가도 다른 한편에서는 본인의 평화에 감사함을 느꼈던 내 이기심처럼 난 언니의 고통을 완벽하게 가늠할 수도 대신해 줄 수도 없는 것이 현실이다.


그렇다 해서 남의 고통을 모른 척하라고 책은 말하지 않는다.


고통의 곁의 곁이 되어줄 때, 생명은 이어질 수 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곁의 의미를 다듬고
곁이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이야기 하는 것


언니에게 해줄 위로의 말은 여전히 찾진 못했지만 난 책에서 읽은 것처럼 아픈 아이 '곁'을 지키는 언니의 작은 곁이라도 되기로 했다.


당이 떨어졌다 싶을 때 병원 지하에 있는 카페에서 달달하게 아이와 사 먹으라고 음료 쿠폰을 넌지시 보냈다. 언니는 아이가 좋아하는 브랜드라며 좋아했다. 어느 날이 한가하냐고, 애들이 학교 가서 어차피 혼자 밥 먹어야 하니까 잠깐 병원 근처에서 점심이라도 같이 먹자고 언니에게 얘기했다. 어느 날 오후, 병원 근처 냉면 전문점에서 언니는 회냉면을, 난 물냉면을 먹었다. 만두까지 곁들여서 우리는 시시콜콜한 얘기를 나누며 배불리 점심을 먹었다. 오랜만에 맛있는 점심을 먹었다고 언니는 말했다. 카페에서 커피도 마시자 기대하지 않던 잠깐의 티타임도 냈다. 이제는 아이가 멸균된 음식만 먹어야 한대서 간편히 일회용으로 먹을 수 있는 통조림형 과일 제품을 입맛대로 골라 먹으라고 종류별로 사서 언니 손에 무심히 건넸다. 그다음 날 언니는 곳간이 풍성해졌다며 입원실 냉장고 인증샷을 보냈다. 덕분에 아이가 행복해한다고 덧붙였다.


난 뭐를 더 할 수 있을까? 언니 곁이 되겠다고는 했지만 아직은 적은 돈을 써서 간식을 사주거나 밥 한 끼 정도나 사는 것밖에 난 생각이 나지 않는다. 이런 일련의 내 행동에 대해 언니의 진짜 속마음은 또 어떨지 솔직히 좀 걱정되기도 했다. 내 맘 편하자고 그런 건 아닌지, 언니는 테일러처럼 조용히 있고 싶은데 닭이나 곰이나 코끼리처럼 도움도 안 되는 괜한 오지랖을 난 부린 건 아닌지.


하지만 테일러는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어, 그 누구와도.

그래서 결국, 모두 가버렸지.

테일러는 혼자 남았어.


테일러의 속상함을 알아채고 여러 동물이 자기만의 방식대로 조언을 해줬지만 아이는 원하지 않았다. 그래도 테일러는 운이 좋은 편이다. 자기가 원하는 방식과 적당한 때는 아니었지만 테일러를 외면하는 동물은 하나도 없지 않던가. 상심해 있는 테일러를 알아채는 친구가 테일러에게는 얼마나 많았던가. 때론 무심함보다 수선스런 관심이 나을 때도 있지 않을까. 그중에서 본인 얘기를 옆에서 묵묵히 들어줄 수 있는 토끼도 다행히 만나지 않던가.


둘은 말없이 앉아 있었어.

이윽고 테일러가 말했어.
"나랑 같이 있어줄래?"


테일러에게는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했다. 한 순간에 사라진 것에 대해 마음을 추스를 시간이 필요했을 것이다. 시간이 지난 후 아이는 그제야 조잘조잘 한풀이를 하듯 토끼에게 쏟아낸다. 조그만 빠삐용 아이의 변화무쌍한 표정 변화가 우습기도 귀엽기도 했다. 작은 사건에서마저 아이는 슬픔 분노 후회 희망 등 다채로운 인간의 감정 모두를 표출할 수 있다. 어른이든 아이든 폭풍이 지난 후 침묵의 시간이 필요한 것이다.


오늘 아침에는 언니에게서 카톡 메시지가 왔다.


자기 나한테 고마움 쿠폰 엄청 쌓았어.
필요할 때 꼭 써.


다행이다. 잠시라도 그녀에게 쉼을 주고 싶었던 내 마음이 조금은 전달된 것 같아서.


울적한 테일러 옆에 토끼처럼 체온을 느끼며 오래도록 차분하게 있어줄 수는 없는 형편이지만 잠시 따뜻한 밥 한 끼 즐겁게 같이 먹으며 아프거나 아프지 않거나 그저 서로의 일상을 얘기하고 들어주는 것을 난 지금 할 수 있을 뿐이다. 그게 언니에게 해줄 수 있는 내 방식의 체온 느끼기다. 그리고 언니가 다시 아이 곁으로 돌아갔을 때 아이에게 더 많이 웃어주기를 바랄 뿐이다.


우리 아이가 내게 다가와 얘기를 들어 달라 할 때는 대부분 내가 지쳐있을 때다. 해도 해도 티도 나지 않는 집안일과 거창하지는 않아도 종일 해대는 삼 시 세끼의 굴레, 그 모든 것의 명분은 아이를 위해서 한다는 거였지만 정작 아이가 필요했을 때 난 옆에 있어줬을까. 누가 숙제를 내준 것도 아니면서 자기만의 틀에 매몰되어 지금의 때를 놓치고 있는 건 아닌지 생각해본다.


그러나 더 이상 자책은 않겠다. 김경림의 <나는 뻔뻔한 엄마가 되기로 했다>에서는 60점짜리 엄마여도 괜찮다고, 아이 옆에 엄마라는 이름으로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쓰여 있다.


나, 다시 만들어볼까?

다시 해 볼래, 지금 당장!


아무리 60점짜리 엄마여도 괜찮다 해도 아이가 회복될 수 있게 이처럼 도와줄 수 있는 토끼 같은 엄마가 여전히 되고 싶기는 하다. 옆에서 가만히 들어주어 테일러처럼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아이로 키우고 싶은 마음을 지울 수 없다. '기다리고, 기다리고, 따라가며, 반응하기'라는 옮긴이의 말은 참으로 바른 일이지만 또 어려운 일이기도 하다. 그런 줄 알면서 나는 닿을 수 없는 백 점짜리 엄마를 또 탐하며 며칠간은 아이 말에 귀를 쫑긋 기울이려 할 것이다. 난 토끼띠니까 아무래도 다분히 그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실없는 기대를 하면서 말이다.


엄마완벽하지 않아도 된다. 실수하고 계속 넘어지지만 다시 그 자리에서 시작하면 된다고 했다. 그러니 테일러처럼 나도 외쳐본다.


그래, 나도 다시 해 볼래.
정말 멋지겠지?


이미지 출처 : 알라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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