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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다움을 찾는다는 것

: 고슴도치 엑스

by 윌버와 샬롯

초등학생인 아이랑 수학 문제를 푼다. 어떤 수를 구하는 것. 구하는 어떤 수를 우리는 네모로 표시한다. 중등 과정으로 가면 이 어떤 수를 x라 지칭할 것이다. 아이는 짐짓 어디서 들었는지 자기도 미지수 x를 안다 자못 우쭐대며 얘기한다.


문제를 이해하고 구하는 것이 무엇인지 인지되면 우리는 식을 세운다. 운이 좋게 처음 세운 식이 맞을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허다하다. 연습장에 어지럽게 쓰인 여러 식을 보고 아이는 묻는다. "아까 풀던 이 식은 왜 한 거야? 필요 없게 됐잖아." 소용이 없어진 다른 식을 보고 아이는 효용에 관해 묻는다.


처음부터 정답을 우리는 알 수 없다. 이것도 해보고 저것도 해보다가 드디어 깨닫는 순간이 온다. 시행착오가 결코 의미가 없음이 아니라는 걸 요즘 아이와 수학을 풀면서 되새기게 됐다. 그 잘못된 식을 쓰지 않았다면 정답으로 가는 길 더 험난했을 수도 있다.


평생 미지수 x를 찾기 위해 살아가는 우리 삶은 그럼 어떠할까. 여기 고슴도치 엑스가 그 얘기를 하고 있다.


교양 있는 고슴도치는 매일 아침 가시부드럽게비누로 거품 목욕을 한다


본연의 가치를 깨닫는다는 건 얼마나 어려운 일일까.


안전하고 세련된 도시 '올'에서는 뾰족한 것은 나쁘고 위험한 것으로 규정한다. 동글동글 부드러운 벽으로 이루어진 도시 '올'은 완벽한 도시를 건설하고 유지하기 위해 감정과 기억을 규제하는 소설 'The Giver'를 연상케 한다. 어떻게 그런 도시가 시작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시작부터 그랬으니 그것이 당연하다고 더기버에서처럼 도시 속 고슴도치들은 그렇게 받아들이며 산다.


네 가시 정말 부드럽다. 비결이 뭐니?


날카로운 가시를 매일 아침 거품 목욕으로 부드럽게 하기 위해 고슴도치는 애를 쓴다. 누가 더 부드러운지 다른 고슴도치와 비교하며, 한 올이라도 삐죽 나온 가시가 있는 고슴도치는 열등한 존재가 되어 버린다.


결과적으로 우리는 알고 있지 않은가. 고슴도치 가시가 따가운 게 당연하다는 것을. 그렇다면 이 어처구니없는 상황은 뭐란 말인가.


당연한 것을 억지로 바꾸려는 이 세계는 과연 온당한가. 그림책 너머 저 멀리 전지적 존재가 되어 우리를 살펴보자. 어쩌면 인간으로서 지닌 자연스러움을 억지로 역행하고 있는 그 무엇이 우리에게도 지 않겠는가.


모든 학생은 등굣길 가시 검사를 받는다
뾰족한 게 얼마나 위험한지 알겠니?


뾰족해서 위험한 것은 알지만 거스를 수 없는 열망이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대다수는 그냥 모두가 그래야 한다고 하는 것에 순응하며 산다. 소수만이 의문을 품고 모색하며 시도한다. 결국 깨달음의 순간이 오며, 그 너머 한 차원 높은 단계로 도약한다. 아마도 그런 소수가 존재하기에 인류는 극변의 순간을 맞이하 건지도 모르겠다.


원래가 순응하기 싫고 나름의 일탈을 즐기던 고슴도치 엑스는 도서관 깊숙한 곳에 꽁꽁 쌓여있는 금기서를 읽게 된다. 그 속엔 고슴도치 엑스가 바라던 본연의 가치를 보게 된다.


변혁은 작은 노력으로는 되지 않나 보다. 갈고닦는 치열함과 주변의 만류에 개의치 않는다. 그 단계를 넘게 되니 고슴도치 엑스는 누구에게도 더 이상 제지를 받지 않게 되는 다른 차원의 존재가 된다. 안전한 도시 '올'을 벗어나게 되고 본연의 자유로움을 찾게 된다. 타자와 다름으로 인해 고통받던 '빨강이 어때서'의 고양이가 연상되기도 는 장면이다.



더 이상 아침마다 거품 목욕을 하지 않아도 될 고슴도치 엑스. 신선한 숲의 공기를 마시며 씩씩하게 룰루랄라 나아가는 그가 보인다.


철옹성 같은 '올'을 벗어날 고슴도치가 더 많아야 할 텐데. 많은 규제로 옴짝달싹 손발이 묶여 있는 우리 아이들을 풀어줘야 할 텐데. 그래야 단단히 얼어붙은 얼음 폭포를 깨고 시원한 물을 마실 수 있을 텐데. 아무것도 해결해주지 못하고 있는 별 수 없는 나약한 어른으로서 무척 미안하다.


그림책 이야기가 끝나고 작가 노인경의 짧은 말은 많은 생각을 남기게 한다. 우리 아이들이, 아니 더불어 우리 어른마저도 스스로에게 팬이 되는 그런 날을 꿈 꿔 본다.


아이들에게는 자기를 알아가고
찾아가고 격려할 시간이 필요합니다.
아이에게 스스로의 팬이 될
기회를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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