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샤론의 꽃 Sep 14. 2024

마지막 인사


겨울이 되면 추위에 약한 나는 유난히 힘들게 보낸다. 밖에 나가면 손과 발이 꽁꽁 얼어 늘 바지 호주머니에 손을 숨기고 다닌다. 스산하고 추운 날씨에 걸맞게 내가 돌보던 환자 한명이 병원에서 유명을 달리 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병원에서 일하다 보면 가끔 가슴 아픈 사연을 듣고 마음이 울적 할 때가 있다. 돌보던 환자가 하늘나라에 갔을 때 두 가지 반응이 나타난다.

아무런 차도 없이 끊어지지 않은 생명을 고통스럽게 유지하는 환자가 세상을 떠나면 영면의 안식을 찾아 차라리 잘 됐다는 생각과, 그래도 아직은 젊은데 세상 등지는 일은 가혹한 운명이라고 생각하는 마음이 든다. J씨는 후자에 속한 환자였다.

어느 날 아침 출근해보니 낮선 환자 한분이 침대에 앉아있었다. 입원환자들이 나이 많은 분 들이다보니 노인인줄알고

 “할아버지 안녕하세요? 많이 불편하세요?”

묻자 전날 근무한 요양보호사가 조용히 옆에 와서 “50대 중반인데 당뇨합병증으로 실명했고 많이 힘들어해요”

나이에 비해 훨씬 늙어 보이는 그는 누가 봐도 70대로 보일만큼 느껴졌다. 병명은 말기 신장염으로 혈액투석을 하고 간염까지 있는 환자였다. 특이한 것은 잠을 누워서 자지 못하고 밤낮없이 앉아만 있었다. 허리를 굽히고 구부정한 상태로 병실 침대 식탁을 펴놓고 고개를 식탁위에 얹고 앉아있는 모습은 벌을 서고 있는 아이들만큼이나 힘들어 보였다. 힘들게 앉아서 잠든 모습이 안타까워서 가만히 자리에 눕히기라도 하면 오뚜기 처럼 벌떡 일어나버린다. 벽 옆 침대를 사용했는데 몸의 균형을 잡지 못하고 벽에 이마를 부딪치면 어린애처럼 엉엉 울기도 했다.

가족이나 보호자 없이 복지시설에 맡겨진 상태에서 신장염이 발병하자 노인요양병원으로 이송되어왔다. 성격은 상당히 공격적인 듯하다. 환의라도 갈아입히려고 하면 권투선수 자세를 취하고 분노를 불처럼 내뿜는 얼굴로 공격 자세를 취하면서

“그래 한번 해보자”

두 주먹을 불끈 쥐고 주먹을 휘두르는 듯한 태도를 취했다. 심한 당뇨로 발은 부스럼이 나서 잘 아물지 않았고 가끔씩 혼자 중얼거리며 울분을 터트릴 것 같이 보였다.

눈이 보이지 않아서 혼자 식사를 하지 못해 먹여주는데, 그런대로 남기지 않고 잘 먹었다.

밤낮없이 앉아만 있으니 허리는 새우등처럼 굽었고 연신 “아이고 허리아파”를 하면서도 눕혀놓으면 여전히 공 튀어 오르듯 얼어나 앉아버렸다. 일주일에 혈액투석을 세 번 받는 만성 신장염 환자다. 혈액투석 받은 날은 파김치가 되어 힘들어했다.

주변사람들 얘기로는 70년대 서울 J대학을 나왔고 ROTC 학사장교출신 이었다.

성장과정도 비교적 여유 있는 가정에서 유복한 유년을 보낸 듯 했다.

그런 그가 어떤 연유에서 인지는 모르지만 심한 경제적 손실의 충격으로 몸에 당뇨가 오면서 합병증으로 실명에 혈액투석까지 받는 신부전증으로 몸은 망가지고 가정도 와해되었

다.

가끔씩 가족사항에 대해 물어도 가족관계에 대해서는 개인의 사생활 문제이라며 함구했다.

못마땅하면 불같이 화를 내다가도 “내가 또 화를 냈네요. 죄송합니다.” 라고 금방 사과를 했다. 가끔 희미한 의식 속에서, 해외에 나가야 되는데 여권이 어디 있는지 모르겠다며 혼자 엉뚱한 소리를 할 때가 있다.

기분이 좋을 때면 70년대 가수 이영숙이 불러 유행했던 대중가요 “가을이 오기전에” 라는 노래를 구성지게 한 곡조씩 뽑아냈다. 가끔씩 휠체어를 타고 병원 앞 정원에 가면 신선한 공기를 느끼는지 몹시 좋아했다. 그는 팔뚝에 심은 혈관이 막혀서 투석이 어려워 다시 혈관 재생시술을 받으러 종합병원으로 간다고 했다. 그의 팔은 굵은 전선을 감아놓은 듯 울퉁불퉁 거렸다.

한번은 휠체어에 태워서 밖에 나가려는데 어디 가냐고 묻기에 옆 병실로 옮길 거라고 대답 했더니 병원이 떠나가게 소리소리 지르며 우는 바람에 간호사 들이 무슨 일 났냐며 쫒아오는 일도 있었다. 자리이동을 환자들이 가장 싫어한다. 자기 자리에 자존심이 걸려있는 듯, 자리를 옮기려하면 자기 주권을 상실한 것처럼 자리이동을 하지 않으려한다. 그래서 웬만하면 자리를 바꾸지 않는다.

이제 그에게 소지품을 챙겨주면서 퇴원해서 혈관 시술 잘하고 다시 오라고 했더니

“그동안 고마웠습니다. 내가 병 나아서 퇴원 하면 요양보호사님 오리고기 사서 대접 하겠습니다”

J의 굽은 등과 듬성듬성 빠진 머리의 뒷모습이 쓸쓸해 보였다. 그는 자기의 운명을 직감한 듯 나에게 마지막 인사를 하는 것 같았다. 자기의 병이 나을 수 없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예전처럼 안가겠다고 울지도 않았고, 담담하게 현실을 받아들이는 듯 했다.

내가 비번인 날 그의 친구들이 다녀갔다는 말을 들었다. 친구들도 J의 사업이 파산한 후에 소식이 끊겼고 그가 있는 곳을 이제야 알았다며 마음 아파했다는 말을 들었다. 절친한 친구와 돈거래가 있었고 그  친구의 배신으로 가정경제는 파탄 나고 부인과 이혼한 뒤로 소식을 몰랐는데 J의 여동생과 연락이 닿아찾아 왔다며 J가 쓸 수 있는 생필품과 티슈 등을 사주고 갔다고 했다.

오이나 토마토를 주면 아주 맛있게 먹던 사람,  그런 J의 소식을 들은 것은 동료 요양보호

사가 J가 입원한 병원에 지인의 문병 갔다가  우연이 그의 영정 사진이 걸린것을 보고 알았다고 전했다.

소식 없던 이혼한 부인과 두 아들이 빈소를 지키고 있는 모습이 너무 초라해서 조의금만 내고 나왔는데 친구들이 아직 연락을 못 받았는지 가족들만 앉아있는 모습이 쓸쓸해 보여서 마음 아팠다고 했다. 휠체어에 실려 가는 그의 쓸쓸한 뒷모습과 고마웠다는 마지막 인사가 귓전에서 울려온다.

작가의 이전글 빈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