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는 익숙하다, 그리고 잠깐의 움찔거림까지. 내뱉는 한숨에는 많은 부스러기들이 쌓여 있다. 매질도, 매일 하는 운동처럼 일정 고통에는 몹시 익숙해진 것 같다. 단지 잠깐의 자존감 하락일 뿐. 그래, 그런 거라고 악착같이 믿어야겠지.
'혹시나.'가 아닌 '될 거 같은데. 뭔가 당연하게도.'라는 느낌이 드는 건 지독한 오만일까.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허술함을 흘리고자 한 것은 절대 아니었다. 그래, 느낌이 드니까 더 신중해졌었고. 날카롭게 다듬자고 했다. 어딘가의 불균형도, 그조차도 내가 의도한 것이기에 틀린 것이 아닌 다른 것이라고.
아니면 그 오만덩어리가, 정보가 부족한 것이었을까. 아니면 내 것에 대한 울타리가 너무나도 휘어진 것일까. 그 휘어짐이 스스로에게 창으로 돌아와 더욱 깊게 찔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곧 처참히 쓰러질 것도 모르는 채.
혹은 내 시야가 문제인 걸까. 내가 좋아하는 것과, 지독하게도 하고 싶은 일에는 꽤 정교한 판단과 통찰이 가능하다고 굳게 믿어왔는데. 단지, 우물 안의 개구리도 되지 못하는. 그냥 그런 존재로 전락해서 삶을 이어가야 하는 걸까.
어느 동경은 그런 말을 하더라. '실패는 작은 성공이라고 생각해요. 그것들이 모여서, 하나의 성공이 되는 법이니까요.'
진리에 가까운 말이겠지. 실패를 겪지 않고 성공하는 이는, 정말 재능의 영역이니까. 그래, 근데 그 고배를 마시는 데에 있어서 그 쓰라림을 겪는데도. 왜 내 가치판단의 기준은 바뀌지 않는 걸까. 단지 이 눈은 바꿀 수가 없는 고질적이고 고유한 것일까.
아니면 정말로 '애매한 재능'이라서. 근데 이 늪에 너무나도 큰 흥미와 호기심이 빠져 허우적대고 있어서. 그만 적당한 선에서 끊어버리고, 다른 현실적이고 지독히도 흥미가 돋지 않는 안정에 기울이라는 세상의 부추김일까.
그래, 오랜 기간 사유의 토악질에 가까운 글을 썼었고. 그게 창구이자 감정의 분출이고, 짧은 평정을 위한 가장 입맛에 흡족한 소거였으니까. 퇴색적이고 패배적이었어서, 토악질이라고 적었는데. 오히려 지금의 독기에서는 진정한 아름다움을 원하는구나. 현실의 모든 것에서.
쓰라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