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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훈 작가 Jul 24. 2023

저릿한 고개의 꽃봉오리

생각 노트 #27

 어떤 모양의 필름이든 하나의 단편이 되고 기차가 되어 결국 놀이동산이 되곤 한다. 혹은 과거로 치부하는 강물에 던져진 흑백의 전복 사고가 되기도 한다. 또는 그 장면을 바라보는 빛나는 색감의 극장 관객으로 대입될 수도 있다.




 끄적이거나 호흡하기 이전엔 나 자신이 있다. 그리고 모든 것엔 시간이 담보로 잡혀있다. 


 자신만의 알찬 것들로 꽉꽉 채우자 하는 노력이 있다. 본능 혹은 변명으로 불리는 게으름과 수없이 타협한 조약들이 있다. 시간은 그것의 중재자이자 결과이자 위협이자, 모든 것이다.


 하지만 시간조차 절대적이지 않다. 모든 존재에 부유하며 군림하는 것처럼 보여도 특정 순간에는 한없이 관대해지고 물러지며 패배적이다.


 바로 시간에 사랑이 담겼을 때이다. 어떤 형태의 사랑이든 간에 시간은 사랑을 이길 수 없다. 자신을 사랑해 가꾸고 관리하는 시간부터 서로를 사랑하는 드라마, 그리고 전인류적인 영화 같은 사랑까지 말이다.

 



 어느덧 새싹이었던 게 꽃망울을 맺었다. 지금, 특정하는 너는 곧 과거이자 기억이며 평가 대상이다. 결국 가루조차 날아가고 망각할 수밖에 없겠지만 그때만의 충분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그러니 고개를 들자. 지금의 사랑의 가치가 적고 양이 부족하게 보이도록, 최소 다음 씬의 망울이 바라봤을 때에 말이다. 그 고개는 다음 장면을 바라만 봐야 한다. 떨구어선 절대 안 된다. 육안으로 확인할 수 없더라도, 설령 움직이지 않았어도 윗계단을 탐스럽게 욕심내야만 한다.




 이룰 수 없는 현실이라도 항상 마음속에 간직하고자 한다. 부러움이든 동경이든, 혹은 질투이든 간에 일정한 동기부여를 건네기에 지울 수 없다.


 최소한의 바람이자 설정한 나의 방향이다.




 이렇게 설정했으니, 혹은 준비가 되었으니 이제는 남을 사랑해 보자. 봉오리가 바라보는 곳에는 하얀 계단만, 더 나아진 내 모습만 있는 것은 아니다.


 내가 좋아하고 사랑하는 이들 또한 시선에 머물러있다. 맺힌 이들을 급하게 사로잡으려다가 전부 추락하지 않기를. 그러니 내가 할 수 있는 만큼의 사랑을 전부 받으려 하지 말 것.


 그리고 그러한 감정에 목덜미를 내어주지 말 것. 비록 사랑하는 이가 아니더라도, 불길한 내 감정이 만들어낸 이유 없는 혐오를 버리고. 서로의 시간과 마음에 상처를 내지 않기를.




 오늘도 꽃봉오리는 생각이 많다. 달달한, 혹은 씁쓸한. 


 오늘은 왠지. 어떤 맛의 시즈닝이든 덤덤하고 당돌하게 삼키는 파리지옥을 그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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