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를 했다. 긴 계약직 기간이 끝나고 이제 '직원'으로서 함께 가자는 상급자의 수 차례의 반려에 밤낮으로 고민을 했지만 결국에는, 직원으로서의 재계약은 없게 되었다.
퇴사한 지 일주일이 지난 지금, 덩그러니 놓인 불안감에 비하면 성실하게 살고 있지는 않다. 퇴사를 하겠다는 결심을 내린 순간부터 찾아온 불안감은 아마 다시 안정감을 찾을 때까지 내 곁을 떠나지 않을 생각인가 보다. 이번에는 떠난 기간이 꽤나 길었고, 어릴 적부터 줄곧 함께한 오랜 친구였기에 꽤나 섭섭함을 표하는 것 같다.
왜 계속하지 않은 걸까. 꼭 이유를 하나만 말할 수는 없겠다. 가장 큰 이유로는 사람이었다.
'어느 직장에 가도, 힘든 사람 있고 다 똑같다.'라는 지인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나는.'
언제까지 그 사람의 불공정한 지시를 따라야만 하는지. 내 직장생활이 단지 그 사람의 뒤치다꺼리하는 데에 이용당하는 도구 같아서. 그런 생활이 저급하고 한심하게 느껴져서. 그리고 당연한 스트레스 또한 무척이나 심했기에.
그 사람에게 받은 스트레스가 너무 심해서, 어느 휴일에는 좋아하던 글을 쓰기가 싫어졌을 때. 그때가 아마 고민이 결심으로 바뀌는 분기점이었던 것 같다.
'내 정체성이 흔들리고 성격까지 버려가면서, 다닐 이유가 있을까.'
그렇게 결심이 선 이후로 나에게는 바람이 불어왔다. 불안과 함께 손을 흔들며 말이다.
소속감을 잃어버린다는 두려움에도, 나에게는 다른 시각이 찾아왔다.
이 정도 환경이면 꾸준히 다닐 수 있겠다는 내 인식이 소박해 보였다. 괜찮은 점은 물밑으로 가라앉고 힘들고 질리는 면들만 보이게 됐다.
그리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행복하게 살고 싶었다. 비록 소시민이라고 할지라도, 소소하고 부드러운 일상을 보내고 싶었다.
나는 이제껏 성실하게 살아온 적이 없다고, 부끄러운 얼굴을 세차게 내리 꺾으며 자조할 수 있다.
놀고먹기 좋아하는 한량, 그게 나다. 글을 좋아했기에, 조상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대책 없는 풍류와 허울만 좋은 낭만을 노래했다.
음주가무만 가득했던 20대 초반, 이후로 정신없이 생존을 위해 발버둥 치다 보니 어느덧 2막의 종막이 다가왔다.
단지 취미였을 뿐, 치열하게 글을 써본 적이 있었던가. 없다. 항상 나는 뭐라도 하면서 잘 살겠지라는 오만이 가득했었다. 물론 지금 또한 마찬가지다. 하지만 이제는 찍어 누르고 싶다. 아니면 벗겨낼 수 없는 이 오만함이, 진정으로 내가 '난 놈'이라면, 이제는 꼭 노력과 함께 증명해내고 싶다.
남들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을 수는 없지만, 그들의 시선을 바꾸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성공에서 당연하게 따라오는 업적이 되었으면 좋겠다.
세상에는 나와 같은 수많은 또래들이 있고, 그들이 지금껏 투자해 온 시간과 노력의 총량은 나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거대할 것이다.
그런데도 지독하게 게으른 내가, 결국은 나의 인생이기에 성공을 당연시하게 바라는 내 마음은.
얼마나 다른 이들보다 환경적인 축복이 있기에 이런 야망이 고개를 드는 것일까.
'안되면 뭐라도 하면서 살겠지.'
안된다 해도 절대 후회가 없도록 한 번은 다 쏟아보고 싶다.
'그냥 일단 하면 되는 거 아니에요?'라고 되물을 수 있겠지만 나는 내 욕심에 비해서 실제로 행하는 행동은 빈약한 현실성을 가진 몽상가이자 철부지이기에.
진정으로 실패한다면 단지 거기까지인 꿈에 대한 이야기이기에. 실패했다고 한들 끊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비록 물줄기가 낙하한다고 한들 그 종착지가 무릉도원일지, 저승일지는 누구도 모르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