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가 되는 게 제 꿈 입니다만
‘꿈’이라는 단어는 꿈꾸는 이들의 열정이 떠올라서인지 언제나 가슴 뛰게 다가온다. 꿈은 실현하고 싶은 희망이나 이상을 그리며 스스로를 다독이는 대표적인 내적 동기 수단이기도 하다. 그런데 몇 년간 꿈으로 인해 오히려 우울함을 느끼는 이들을 여럿 봐오면서, 꿈의 순기능만 조명해왔던 나의 편협함을 깨닫게 되었다. 마냥 핑크빛인 줄만 알았던 꿈에도 폐해가 존재했다. 좌절감, 현실불만, 타인에 대한 질투, 미움 등이 그것이다. 꿈과 현실의 좁혀지지 않는 큰 차이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건 꿈의 잘못이 아니라, 현재의 자신을 보듬어 주지 않고 자기도 모르게 다른 사람이 되려 했기 때문인 것 같다. 자신의 노력은 없이 타인에 기대서만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을 꿈으로 여기거나, 사회적 분위기에 휩쓸려 성공한 미래를 하나의 청사진처럼 그려놓고 모자란 부분을 채우려 하기에 부정적인 감정이 생긴 게 아닐까. 소파에 드러누운 채로 먹기만 하면서 날렵한 근육의 탄탄한 몸매를 꿈꾸는 것이나, 계속 낭비하고 저축하지 않으면서 부자가 되고 싶어 하는 것과 같은 예들은 꿈이 아니라 허영이자 허상이다.
진정한 꿈은 현재 내 삶의 연장선에 존재한다. 꿈은 가시화시킬 수 있는 계획 즉, 달성 가능한 목표들을 통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꿈과 목표를 같은 개념으로 바라볼 수도 있지만 좀 다르지 않나 생각해본다. 목표는 의도하지 않아도 타의적으로라도 맡겨진 역할 상 꼭 생기기 마련이다. 하지만 꿈은 나만의 주체적인 생각에서 피어나기에 아름답고 어렵다.
꿈이나 목표가 있어야만 살아갈 수 있는 성취에 목매는 삶은 끝이 없다. 승무원이 되고, 초등학교 교사가 되고도 만족을 못하고 계속 내달려야 할 것 같은 조급함이 들던 그 시절엔 그다음 단계의 더 큰 욕심만 생겨났다. 잘게 쪼개어진 사소한 목표들을 단계별로 성취해내는 것만이 꿈을 이루는 길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내가 가지지 않은 것만 보여 어느 순간 내가 더 작게 느껴졌다. 꿈이라고 그럴듯하게 포장되었을 뿐, 더 갖고 싶고 더 인정받고 싶어 내게 없는 것을 채우고자 했던 욕심쟁이였다. 내게 없는 것은 그걸 가진 타인과 공동체를 이루며 채우는 것이지, 내가 모든 것을 다 가질 필요는 없다는 걸 요즘에야 배워간다.
몇 년 전 꿈에 관한 책을 쓴 적이 있는 저자로서 할 말은 아니지만, 그래서 사실 꿈 좀 없어도 괜찮은 것 같다. 꿈 없고 꿈 좀 안 이루면 어떤가. 지금 당장 꿈이 무엇인지 이야기할 수 없는 이가 있다면, 괜찮다고 얘기해주고 싶다.
꿈은 꼭 이루고 가져야만 행복한 게 아니다. 억지로 꿈을 만들다 보면 욕망에 기인한 꿈을 꾸게끔 부추기는 꼴이기에, 그보다 매일을 나답게 살아가는 삶의 자세를 연습하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한 것 같다. 작은 것과 적은 것에 만족하지 못한 채 현실 도피로 미래를 꿈꾸는 태도는 삶의 곳곳에 숨어있는 아름다움과 고마움을 느낄 수 없게 만든다. 꿈을 꾸기에 더 불행한 아이러니한 삶이 양산되는 것이다.
볼테르의 소설 <캉디드 혹은 낙관주의>에서 주인공 캉디드는 “내가 하는 일은 중요성을 따지면 너무나 보잘것없지만, 내가 이 일을 하는 것 자체는 무한히 중요하다.”라고 했다. 지금 있는 자리에서 지금 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게 먼저다.
현재의 상황을 이용해서 자신만의 방식으로 최대한 옳은 일을 하며 사는 것은 어떤 건지 생각해보자. 너무 거창하다면 그냥 나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를 떠올려봐도 좋다. 그러다 보면 그다지 쓸모 있어 보이진 않는 어떤 그림들이 그려질지도 모른다. 경험상 단기간 내의 목표는 구체적으로, 장기간이 걸리는 꿈은 보다 추상적으로 그리는 게 좋았다.
난 ‘눈이 초롱초롱한 호기심 많은 귀여운 할머니’가 되고 싶다. 이게 요즘 내 꿈이다. 여기에는 그럴듯한 타이틀도 없고 따라오는 수치화된 목표도 없지만 상상하면 참 행복하다. 미래가 기대된다. 물론 할머니가 되는 건 시간이 해결해 줄거라 조급함도 없다. :) 그래도 그 앞의 수식어 때문인지 나름 마음속의 이미지를 떠올릴 때면 현재 나는 걸맞게 살고 있는지 꽤 자극이 된다.
지금 이 순간을 헛되이 보내지 않는다면 언젠가 결국 더 멋진 버전의 꿈을 현실로 살아낼 거라 믿는다. 꿈은 성취에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꿈을 꾸며 자신을 성숙하게 만드는데 그 존재 의의가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