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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 위의 앨리스 Aug 09. 2024

슬기로운 식집사 생활

아낌없이 주는 식물

 몇달 전부터 리틀 포레스트를 꿈꾸며 베란다 공간을 식물들로 채워가고 있다. 처음엔 내 키보다도 훨씬 큰 남천, 유칼립투스 등 부피감 있는 식물들을 들였었다. 꽃화분, 난을 거쳐 지금은 식용이 가능한 허브와 채소 미니텃밭을 만들고 있다. 직장인이라면 화분 몇개 죽이지 않고 키우는 것도 힘이 들었을 텐데 다행히도 하루종일 집에 있을 수 있는, 시간부자인 백수 신분이어서 아주 재밌고 부지런하게 식물들을 키워나가고 있다.


 아침이면 일찍 눈이 떠진다. 아이들이 밤새 어떻게 변했나가 궁금해서다. 일어나자마자 고사리과 아이들 4명에게 분무를 해 주고,  두달 전 쯤 산 절지 식물 엔카이셔스의 잎사귀도 정리하며 분무를 해 준다. 나머지 식물들도 상태를 살펴가며 물을 주거나 천연 살충 스프레이 드을 준다. 그걸 다 하고나면 한 시간이 후딱 지나있다. 고작 화분 몇 개 키우는 베란다 식집사 나부랭이도 이렇게 힘든데 농부님들은 얼마나 고될까. 재미는 있지만 에너지도 체력도 저효율인 나에겐 딱 이정도의 식물이 맞는 듯 하다. 


 사람마다 취향이 있고 또 성향에 따라 선호하는 식물이 다를텐데 나의 최애를 꼽는다면 고사리 화분이다. 물을 좋아하고 반양지, 반음지에서도 잘 자라는 이 아이들은 하루 한번 분무질만 해줘도 윤기나게 자란다.

그리고 나는 성장하거나 잎이 커지는 모습을 느낄 수 있도록 변화하는 아이들이 좋은데 번식력이 좋다. 그러면서도 벌레가 잘 들지 않는다. 식물을 키우면서 아무리 잘 자라고 예뻐도 벌레가 들면 키워지기 싫어질 때도 있는데 예는 청결(?)하다. 그리고 뭐니뭐니해도 예쁘다. 그래서 이 아이는 나의 책상 앞에 가져다두었다. 


 반면, 아무리 새 화분을 들여도 매번 실패하는 아이들이 있다. 내게는 세 종류가 있는데 첫번째는 마오리 소포라이다. 뉴질랜드에서 왔다는 이 아이의 매력은 가늘가늘한 가지와 강아지 발톱만큼 작은 잎사귀들이다. 식물에 관심없는 사람들도 이 아이는 카페에서 종종 봤을 정도로 흔한데 난 벌써 두 번이나 죽였다. 신경을 안 썼냐 하면 아니다. 매일 관찰하고, 너무 과습하면 안 된다고 해서 흙을 확인해가며 물도 조심조심 주고, 바람도 쐬어주며 애지중지 키웠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시들해져갔다. 두번째 아이는 블루베리 화분이다. 이 아이도 두번을 죽였고 이번에 새로 들여왔건만 잎사귀가 누래지더니 맛이 간 듯 하다. 카페도 찾아보고 이것저것 다 해봤는데 안 된다. 세번째는 허브 딜 화분이다. 이 아이는 처음 들였을땐 몇 번 잘라서 연어와 먹을 정도로 효자 아이였는데 어느날부터 시들해지더니 죽었다. 이번에 새 화분을 들였는데 그 아이는 일주일만에 하늘나라로 갈 듯 하다. 이 세 화분은 아무래도 나와 안 맞는듯 하니 다시 들이지 말아야겠다. 


 며칠 전엔 깻잎과 상추, 부추 등을 먹으려고 씨앗을 사서 젖은 키친타월에 올려두고 발아하도록 뒀는데 하루 두번씩 이 녀석들이 발아하고 잎을 틔우는 모습을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어떤 씨앗은 하루만에 발아되기도 하고 어떤 씨앗은 닷새가 되도록 소식이 없다가 갑자기 쑥 존재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그렇게 촉촉하게 있던 아이들을 축축하고 작은 포트에 핀셋으로 심어주면 쑥쑥 자라난다. 물과 빛만 있으면 그렇게 잘 자라는 이 존재들을 보고 있으면 그냥 위로가 된다. 다들 그 맛에 식물을 키우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예전엔 바쁘거나 마음의 여유가 없어서 수형을 잡아준다던가 가지치기를 하는 일 등은 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엔 전지가위 등을 사서 좀더 예쁘게 자라도록 몇몇 화분은 가지치기를 해주었다. 처음엔 볼품이 없는가 싶어 후회를 했는데, 며칠이 지나고 나서 보니 잘라낸 그 가지 끝 언저리에 너무 싱싱한 새 가지와 잎사귀들을 피워내는게 아닌가. 상처가 나면 그 부분이 흉터가 되었다 아물고 끝 이게 아니고 식물들은 그 상처를 뚫고 새로운 모습을 드러낸다. 너무 막 잘라내면 식물도 당연히 죽는다. 하지만 적당한 상처는 이 아이들을 더 풍성하고 더 잘 성장하게 한다. 


 사람의 삶도 비슷한 게 아닐까. 적당한 상처는 사람을 성장하게 한다. 하지만 생장점도 무시하고, 소독되지 않은 오염된 가위로 잘라내면 식물이 죽는 것처럼 사람도 그러하다. 딱 상처에 잠식되지 않을 만큼만. 그만큼만 아프며 살 수는 없을까. 그게 맘대로 된다면 모두에게 인생이 쉬웠겠지. 어제 침대로 가기 전 불을 끄려 거실을 휙 둘러보다 문득 내가 지금 외로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을 만나기 싫어하면서도 생명의 존재와 교감이라도 하고 싶어, 이렇게 애써 식물을 들였나 하고. 그렇대도 괜찮다. 식물은 사기를 치지도, 상처를 주지도, 병을 주지도 않는다. 그저 '나만' 잘하면 된다. 오래오래 같이 잘 살 수 있으면 좋겠다. 서로에게 성장을 줄 수 있는 상처만큼만 주고 받으면서. 그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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