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매년 '용산가족공원'에 작은 텃밭을 분양받아 우리가 먹을 것들을 직접 키워왔었다. 처음에는 농사가 잘 되지 않았지만 그다음 해에는 정말 풍년을 이루었고, 새로운 봄이 되면 우리의 텃밭에 무엇을 키울 것인가부터 시작해서 조카랑 동생을 불러서 같이 나누어 먹을 것까지 계산해서 그 작은 땅에 이것저것 심기도 했다. 상추와 깻잎은 기본으로 풍족했고, 살면서 방울토마토도 그렇게 실컷 먹어보기는 처음이었다. 그리고 같이 농사를 짓는 사람들끼리 서로 나눠먹기도 하고, 인심 좋은 어르신 분들은 힘들게 키운 열무로 직접 김치를 담가 선물로 주시기도 했다. 정말 서울이라고 믿기지 않을 정도로 흙을 손으로 만지는 사람들의 따뜻한 인심을 어디서나 볼 수 있는 곳이 이 텃밭이었다.
봄에 모종을 할 때쯤, 이렇게 벚꽃비가 내리면 마음이 하늘하늘해진다.
가을로 넘어가는 시점에는 김장을 하기 위해 배추를 심는 분들도 계시고, 우리처럼 초짜 서울농부는 무를 키워서 김장에 넣을 무를 미리 준비하기도 했다. 알이 시장에서 파는 것처럼 굵직 않지만, 나름 알차고 땅딸만 한 무들을 깨끗하게 닦아놓으니 김장에 양념으로 넣기에는 너무 이뻐서 사진으로 남겨놀 때도 있었다. 바쁜 와중에도 틈틈이 자신의 먹거리를 직접 길러서 먹는다는 것은 생각 이상의 기쁨이었고, 계절의 흐름을 느끼기 힘들 만큼 바쁜 도시의 생활에서 이렇게 벚꽃비를 맞거나, 겨울을 맞이하는 김장거리들을 준비할 때면 텃밭의 의미는 어쩌면 계절의 감각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씨를 뿌릴 때는 몰랐는데 흰색 무보다 자색무가 더 많이 나왔다!
이렇게 텃밭의 매력에 빠져버린 우리에게 한 가지 시련이 닥쳤으니... 2년 연속 텃밭에 당첨이 되었지만 그다음부터는 안타깝게도 계속 텃밭신청에서 탈락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다른 분들 역시 이런 기쁨을 누릴 수 있어야 하는 것이 당연지사인건 알지만, 그나마 집에서 제일 가까운 곳에 텃밭이 되어야 일주일에 한 번은 가서 밭을 가꿀 수 있는데, 계속 신청에서 탈락이 되니 마음이 생각보다 쓰렸다. 흙을 손으로 만지며, 잡초를 제거하고, 내가 먹을 싱싱한 먹거리를 바로 따다가 반찬을 해 먹는 기쁨을 이미 알아버렸으니 그 즐거움을 다시 가질 수 없는 아쉬움에 우리 부부는 한 동안 힘이 나지 않았다.
그러다... 나의 남편은 더 이상 참고 기다릴 수는 없는지 드디어 나의 베란다를 공략하기 시작했고, 나의 의지와는 달리 우리 집 작은 베란다에는 앙증맞은 귀여운 텃밭이 자리를 잡게 되었다.
솔직히 처음에는 집안에 텃밭을 만드는 것이 달갑지는 않았다. 알다시피 벌레도 생길 수밖에 없고, 한 번씩 거름을 준다면 냄새도 날 것이며, 베란다 위에 빨래를 널어야 하는 나의 입장으로는 다른 방으로 가서 빨래를 널어야 하는 수고스러움이 발생하는 일이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나의 님이 너무나 만들고 싶어 하는 것을.
현재 우리 집 토마토는 베란다 천장을 뚫고 나갈 기세인데, 밖에서 키웠더라면 좀 더 좋았겠지만 이 답답한 베란다에서 이 정도 커준 것만으로도 감사한 마음이다.
올해는 이렇게 토마토와 허브 몇 가지 종류만을 심었지만, 내년에는 다시 텃밭신청에 도전해서 여름에 상추와 토마토를 실컷 먹어보고도 싶고, 가지와 오이도 심고, 중간중간 이쁜 꽃들도 심어놓고 싶다. 당연히 김장을 대비해서 이쁘고 튼실한 무도 심어놔야지 마음속으로 다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