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아이가 저녁에 치킨을 먹자고 한다. 아빠는 시원한 맥주 한잔을 같이 하면 좋겠다는 생각에 "치킨 좋지!!"라고 대답하며 집 앞 맥주집에 가서 사 온다. 그리고 식탁에 펼쳤더니 딸아이 왈 "어, 뭐야, 후라이드네, 난 양념인데". 아빠는 "그럼 진작에 양념이 먹고 싶다고 이야기하지", 그러자 딸아이는 "당연히 양념이지". 아빠는 딸아이가 지난번에 아주 좋아했던 후라이드를 상상하고 당연히 같은 것이라 생각한 것이다. 우리는 자주 '말'로 인해 생기는 이러한 경험을 한다.
언어라는 것에 대해서 궁금해하다 보면 이러한 질문을 가진다. 말을 하는 지금 이 순간 내 머릿속에선 도대체 어떤 과정을 거쳐서 말로 나오는 거지? 언어학자들의 말을 빌려보자면, 인간은 말을 하려는 찰나 머릿속에 하려는 말에 연관된 이미지를 그린다. 그리고 그 이미지에 맞게 그 순간 표현할 수 있는 적절한 언어로 표현한다. 그 순간에 느끼는 감정도 그 말속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슬프다던가 화가 난다던가 하는 감정들이 고스란히 말에 담겨있다. 글을 쓰는 것처럼 지웠다가 다시 쓰는 과정을 거칠 순 없다. 그래서 시간이 지나서야 "아! 그때 그렇게 이야기하는 게 좀 더 낳았을 텐데"라는 후회를 하게 된다. 즉, 아주 순식간에 일어나는 일이라 인지한다는 건 불가능하다. 또한, 아무런 이미지가 없이 대화를 한다는 것도 불가능하다. 그때 그렸던 이미지와 시간이 지나 지금 그리는 이미지가 달라 후회를 하는 것처럼. 미국 엘에이에 위치한 USC(University of Southern California) 대학에서 심리학, 철학, 신경과학 교수에 재직 중이고, 동시에 TED에서도 강연을 한 안토니오 다마시오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Images are the content of our thoughts, regardless of where they are generated." 이미지라는 것이 바로 다양한 모습을 가지고 있는 우리가 하는 생각이라는 것의 본질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그림을 그리면서 주변의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는 걸까? 이 사실을 실생활에 접목해 보면 이러한 문제에 봉착하게 된다. 위의 대화를 예를 들어보자. 딸아이는 치킨이라는 말을 하기 바로 전에 양념치킨을 맛있게 먹는 그림을 그렸을 것이다. 그리고 아빠는 후라이드 치킨과 시원한 맥주를 마시는 그림을 그리며 사 오겠다고 대답을 했을 것이다. 두 사람이 다른 그림을 그렸다는 것은 "치킨"이라는 단어 만으로는 구별할 수가 없다. 만약 아빠든 딸아이든 단 한마디만 더 추가했더라면 아마도 이러한 오해는 없었을 것이다. 딸아이의 "아빠, 양념치킨인 거 알고 있지?" 혹은 아빠의 "후라이드 치킨 말하는 거지?". 마치 글을 쓸 때 다시 한번 자신의 글을 확인하는 것처럼 말이다. 즉, 아빠와 딸아이가 자신이 그린 그림을 좀 더 자세히 설명을 해 줬더라면, 그랬다면 두 사람이 최소한 같은 종류의 치킨을 이야기한다는 것은 성사되었을 것이다. 더 깊이 들어가 같은 맛을 그렸다고 까지는 상상하기 어렵다. 물론 좀 더 깊은 대화를 나누다 보면 두 사람이 다 만족할 치킨을 선택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러한 대화 방법을 연습하다 보면 서로의 감정을 다치게 한다거나 상대나 자신에게 비판의 말을 하는 경우가 훨씬 줄어들 것이다.
부모와 아이의 대화, 부부사이의 대화, 친정이나 시댁과의 대화, 친구와의 대화. 한 가지 명심할 사실이 있다. 각자가 그리는 그림은 개개인의 역할이다. 그 역할은 그들이 자라온 환경에 전적으로 영향을 받는다. 즉 나와 다른 환경에서 자라온 사람이 나와 똑같은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미 세상의 많은 모습을 보아버린 부모와 이제 새로운 그림을 그리려는 아이의 대화, 서로 다른 부모아래에서 많은 세월을 보내며 그들의 대화방식에 익숙한 다음 결혼을 한 이후 나눠야 하는 부부의 대화, 부부사이에도 어려운 대화에 더 나아가서 배우자의 부모와 나눠야 하는 대화, 등등. 많이 노력한다면 비슷하게 그림을 그릴 순 있다. 하지만 어딘가는 조금 틀릴 수밖에 없다. 대화도 마찬가지이다. "어"와 "아"를 말하더라도 그 뒤에 숨겨져 있는 의미, 즉 그림은 다를 수밖에 없다. 이러한 사실을 인정한다면 "넌 어떻게 말이 전혀 안 통하는 거야" 라며 화가 날 이유가 전혀 없다. 왜냐면 "네가 그린 그림과 내가 그린 그림은 다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