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속 중산층을 보며
흔히 부유한 사람들은 게을러지거나 사치스러워지기 쉽다고 하고 가난한 사람들은 부도덕해지거나 노예근성을 가지기 쉽다고 한다.
그렇다면 그 가운데 중산층이 빠지는 함정은 뭘까?
사실 요즘 중산층을 떠올려보면 게으름과 나약함, 부도덕과 노예근성 모두에서 자유롭지 못한 듯하다. 현대 사회에서 물질적으로 위기감을 느낄일은 없으니 얼마든지 게으르고 나약해질 수 있고, 동시에 상승욕구와 경쟁심의 부추김과 대도시의 일회성 인간관계 그리고 전통적 도덕과 신앙의 붕괴로 부도덕의 유혹을 받기 쉽고, 이런 나약함과 부도덕이 만든 토양에서 엄격한 수직 관료제와 권위주의적 조선 문화의 잔재까지 더해지면 노예근성이 자라기 쉽다.
그러나 그러한 일반적인 함정 말고, 내가 역사 속 인물들을 찾아 보며 느낀 것은 주로 중산층이 빠지는 함정이 있다.
지금은 중산층을 경제적 기준으로 규정하지만, 사회에 따라 엄격한 신분 제도에 따라 중간계급이 규정되기도 했고, 종사하는 일에 따라 규정되기도 했으며, 때로는 조상에 따라, 능력이나 성과에 따라 규정되기도 했다.
이러한 애매함 속에서 내가 생각하는 중산층을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추상적 결핍이 있는 계급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먹고 사는 문제가 시급한 것은 아니지만 무언가 얻지 못해 불만스럽고 열등감이 드는 것이 있는 사람들인 것이다.
그것은 더 큰 경제적 부일수도 있고, 명예일 수도 있고, 사회적 신분일 수도 있고, 지성과 교양일 수도 있고, 정통성일 수도 있고, 능력일 수도 있다.
이러한 중산층의 함정에 빠진 사람의 예시를 하나 들어보자.
19세기 메이지 유신 직전을 살던 콘도 초지로라는 일본인이 있었다. 그는 만두장수라는 별명으로 불렸는데, 실제로 그의 아버지가 만두장수였고 그 역시 만두를 팔았었기 때문이다.
1860년대 당시 일본은 서양 함선들로부터 위협적인 개항 요구를 받던 혼란기로, 기존의 신분제가 힘을 잃고 상인 계급이라도 정치 활동에 참여할 길이 열렸었다.
초지로는 상인적 감각이 뛰어나고 서양에 대한 지식이 풍부해 무사 계급들과 함께 개혁 단체를 운영하고 있었는데, 그러다가 어느 날 갑작스럽게 공공자금을 횡령했다는 혐의로 할복을 명받게 된다.
그가 공공자금을 횡령했다는 명백한 증거는 없었고 정치적 음모나 상인 계급의 출세에 대한 반발의 영향으로 생긴 일이라는 시각도 있다.
할복이라는 것은 그 직관적 잔인성에 비해 생각보다 복잡한 행위였다. 할복은 우선 무사 계급 사이에만 이뤄지는 명예로운 일이었다. 할복을 해서 죽은 사람은 명예롭게 죽은 것으로 간주됐다. 그리고 할복은 무작정 배를 가르는 것이 아니라 나름의 방법론이 있어서, 일부 사무라이들은 할복이 결정된 전날 밤 할복하는 방법을 속성으로 배우기도 했다. 왠만큼 깊고 정확하게 가르지 않는 이상 자신의 배를 가른다고 바로 숨이 끊어지지는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할복 현장에는 항상 배를 가른 후에 목을 베어 숨을 끊어주는 가이사쿠라는 사람이 같이 있었고, 할복 하는 사람의 고통이 길어지지 않도록 그가 직접 자기 배를 가른 후에는 가이사쿠가 목을 베었다.
시바 료타로가 <료마가 간다>에서 소설적으로 묘사한 이야기에 따르면, 같이 일하던 무사 계급들은 콘도 초지로에게 할복을 명한 뒤에 가이사쿠 해줄 사람도 남겨두지 않고 모두 자리를 떠났는데, 당연히 콘도 초지로는 할복 하지 않고 도망가버릴 수도 있었다. 그는 그 당시에는 매우 흔치 않은 일이지만 유럽으로 유학갈 계획을 가지고 있었고 마음만 먹는다면 그는 당초 계획대로 영국행 배를 타고 영국에 가서 대학 새내기가 되어 횡령 문제의 책임에서는 손을 뗄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의 발목을 잡는 것이 있었다. 만약 그가 거기에서 몰래 빠져나와 자취를 감춰버린다면 그의 이전 동료들은 '역시 상인계급 출신은 명예도 없어.' 같은 말을 할 것이고 자신은 수치심에 남은 평생을 시달릴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명예욕과 수치심. 그 두 가지에 발목이 잡혀 그는 자신의 잘못도 아닌 것 때문에, 가이사쿠 해주는 사람도 없는 푸대접 속에서 고통스럽게 배를 갈라 죽었다.
나는 이것이 중산층이 빠지는 함정이라고 생각한다. 애초에 무사계급과 어울리고 사회지도층의 문화를 접하며 생긴 명예와 수치에 대한 개념과 거기에서 오는 열등감이 없는 평범한 상인이었으면 할복 따위 하지 않고 영국행 배를 탔을 것이다. 만약 높은 계급의 무사였다면 애초에 할복을 요구받을 상황에 처하지도 않았을 가능성도 높다, 만약 처하더라도 당당하게 결백을 주장할 수 있게 해주는 문화나 절차에 대한 이해도나 자신감이 있었을 것이고, 최악의 경우 적어도 가이사쿠 해줄 사람은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중산층, 상류 사회를 동경하지만 그것에 대한 실질적 이해는 부족하고 쌓인 열등감 때문에 감정적인 판단을 내려버리며, 결국 그 때문에 자신의 꿈과 욕망, 생명까지 잃고 가족과 주변 사람들에게도 연좌제같은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일본 뿐 아니라 전세계 어느 시대 어디를 보아도, 한국과 유럽도 마찬가지다. 정통성 있는 상류층은 귀족적 도덕을 표방할 땐 표방하다가도 자유자재로 내려놓고 섹스파티, 반민족행위, 칼 같은 자본주의적 결단 등 흔히 말하는 미덕과 거리가 먼 행동을 할 수 있다.
그러나 중산층은 도덕과 미덕에 사로잡혀서 애국심, 동정심, 성적 순결, 청빈, 자기희생 등의 가치를 표방하고 만약 이러한 가치를 지키지 못할 경우 수치심과 죄책감을 가진다.
오해하면 안 되는 것이, 나는 애국심과 동정심, 순결, 청빈, 자기희생 기타 등등의 미덕들이 나쁘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이 자연스럽게 발현된다면 존경할만한 자질이다. 하지만 그것이 강요되어서 고통스러운 일이 되는 것은 나쁘다.
미덕에 대한 교육을 받고 수치심과 죄책감, 옳고 그름을 규정하는 문화에 익숙해져 있는 중산층. 그러면서도 미덕이 가변적임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당연시하고 심지어 신성시하는 중산층. 희생적이지 않게 미덕을 베풀만한 정신적 여유가 없는 중산층. 미덕 위에 자신의 영혼이 있다는 생각을 이해하려 하지도 않고 그런 삶을 살 기개를 가지지도 못한 중산층.
금 모으기 운동을 하고, 일본의 독도 발언에 분개하고, 성적인 이야기를 금기시하고, 노동으로 번 돈만이 옳은 돈이라 믿고, 윗사람의 부당함을 무조건 참고, 학벌이 좋은 사람에게 열등감을 느끼고, 직업에 따라 사람을 무시하기도 하는 중산층.
온갖 수치심과 죄책감, 한계에 대한 망상과 헛된 명예욕을 가진 중산층...
나 역시 전형적인 중산층의 생각을 가지고 살아왔다. 중산층들에 둘러쌓여 살아왔다. 역사 속 중산층들을 살펴봤다. 그리고 숙고를 거쳐 말한다. 중산층이여 깨어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