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에 이름을 남긴 사람들의 자서전을 읽으면 새삼 떠오르는 이야기가 있다. 그것은 바로 조삼모사다.
아침에 바나나 3개를 주고 저녁에 4개를 준다고 했더니 원숭이들이 화나서 날뛰었고, 아침에 4개 저녁에 3개를 준다고 했더니 기뻐 날뛰었다는 이야기.
어차피 바나나는 7개다. 대통령에게나 위인에게나 황제에게나 당신에게나 바나나는 7개다.
10만원권 지폐 인물 후보로 거론되기도 했던 한국에서 가장 존경 받는 인물 중 한 명은, 자식들에게 남기는 글에 자기처럼 살지 말라고 몇 번을 거듭 당부했다.
칭기즈 칸은 자식들에게 절대 해서는 안 되는 일을 얘기할 때, 하나같이 자기가 했거나 겪은 일들을 이야기했다.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권력자와 위인의 인생이 그렇게 완벽하고 보통 사람은 상상할 수 없는 행운과 기쁨을 누리며 살았다면 아마 반대로 말했을지도 모른다. '나처럼만 살아라.' '내가 했던 일만 해라.' 고 말이다.
그렇다고 역사에 이름을 남긴 사람들이 유달리 불행했다는 것은 아니다. 말했듯이 누구에게나 바나나는 7개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무엇을 얻으려면 그만한 대가가 있어야 한다는 옛 성현들의 말을 생각해 보았을 때, 짐작할 수 있는 것은 있다. 그것은 거대한 권력과 명성에는 그만큼 큰 대가가 따른 다는 것이다.
원숭이의 비유를 이어가자면, 바나나는 어느 원숭이나 7개 밖에 먹을 수 없지만, 채찍질은 끝없이 당할 수 있다. 하루에 3끼를 잘 먹으면 기쁘겠지만 하루에 7끼 10끼를 먹는다고 더 행복해지지는 않는다. 3끼를 먹든 7끼를 먹든 그것은 어느새 당연해진다. 그러나 오늘 굶고 내일도 굶고 일 년 내내 제대로 못 먹는다고 배고픔이 당연해지지는 않는다.
역사에 기록될만한 업적이라는 것은 끊임없는 채찍질의 결과인 경우가 많다. 말하자면, 칭기즈 칸에게나 당신에게나 주어진 바나나는 7개지만, 칭기즈 칸은 당신보다 더 모진 채찍질을 당했을 것이다.
때로는 존경과 명성이라는 것은 그 채찍질에 대한 보상 같다는 생각이 든다. 또 배부른 돼지보다는 배고픈 소크라테스가 되는게 낫다는 말이 있는데, 사람을 돼지에서 소크라테스로 변모시키는 가장 큰 촉발제도 채찍질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바나나를 떠나서 위인들의 인생에는 아우라가 있다. 행복과 불행을 떠나 인생을 꽉 차게 잘 산 것 같은 느낌을 준다. 비록 위인들의 인생이 온갖 고생과 어려움으로 가득하더라도 잘 살았다고 할 만한 인생이라는 느낌이 든다.
왜 그런 느낌이 들까? 우선 한 사람의 고생이 그 사람의 인생에서 보답받지 못하는 것처럼 보여도 다른 사람을 통해 보답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가족이나 자손이 될 수도 있고, 같은 나라 사람들이 될 수도 있으며, 이후 수 천 년 동안 살아갈 수 많은 사람들이 될 수도 있다.
말하자면, 한 사람의 인생이 얼마나 행복했냐 불행했냐를 떠나서 그 사람이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다했는가, 좀 더 시적으로 표현하자면 자신의 소명에 전생애를 투신했는가에 따라 그 사람의 인생이 다르게 보이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왜 위인들이 '나처럼 살지 말라'고 그렇게 얘기했는지도 이해가 간다. 왜냐하면 각자에게 주어진 소명은 다르기 때문이다. 부처를 따라한다고 부처가 될 수도 없고, 칭기즈 칸을 따라한다고 칭기즈 칸이 될 수도 없다. 누군가를 억지로 따라해서는 어딘가 어색한 인생을 살게 될 뿐이다.
행복과 불행의 측면에서 보면 역사는 누구에게나 공평하다. 그것은 한계효용이라는 경제적 원리가 보여주고, 도파민과 세로토닌의 작용의 원리가 누구에게나 같다는 뇌과학적 사실이 보여준다.
누군가가 단지 유명하고 존경받는 다는 이유로, 혹은 돈이 많거나 권력이 크다는 이유로 더 행복할 것이라는 생각은 망상이다. 만약 누군가가 칭기즈 칸이나 빌 게이츠보다 불행하다면 그 가장 큰 원인 중 하나는 바로 이 망상일 것이다.
그러나 자신의 삶의 목적을 알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삶, 혹은 삶의 목적을 의식적으로 생각하지 않더라도 자연스럽게 현재에 충실하게 사는 삶은 대부분의 위인들이 공통되게 살았던 삶이고 그것은 행복과 불행의 대차대조표 너머의 가치가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한 삶을 사는 사람들은 망설임, 두려움, 수치심, 죄책감, 걱정, 후회, 희망, 낡은 관습 같은 것에 매여있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해야 할 일을 하고 겪어야 할 일을 겪을 수 있다. 가장 자신답게 살 수 있다.
위인들에게서 배워야 할 것은 '어떻게 하면 저렇게 큰 돈과 권력을 가질까.' '어떻게 하면 저렇게 유명해지고 존경 받을까.' 뿐만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저렇게 어려움을 극복하고 자기 자신다운 삶을 살 수 있을까'에 더 가깝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