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는 찾아볼 수 있지만 서양 문화권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두 가지가 있다. 그것은 바로 존댓말과 반말, 그리고 어리광과 삐짐이다.
이 같은 차이점의 원인은 인간관계를 나누는 선의 차이점에 있다. 공적인 인간 관계, 원칙에 따라 일을 처리해야 하는 인간 관계에서는 서로 존댓말을 하고 반대로 사적인 인간 관계, 인간적으로 서로를 대하는 관계에서는 반말을 쓰는 것이다.
한국인에게는 공적인 인간관계와 사적인 인간관계가 명확히 구분된다고 할 수 있다. 반면 서양에서는 그 구별이 없다. 서양인의 인간 관계는 한국인의 시선으로 봤을 때는 공적인 인간관계 밖에 없다. 서양에서 어리광을 부리고, 정에 따라 행동하는 관계는 어린 아이에게나 있는 것이지 성인의 인간관계는 오로지 공적인 인간관계로만 이루어져 있다. 그만큼 서양의 공적인 인간관계가 좀 더 세련되고 폭넓은 느낌을 주기는 한다.
한국인은 공적인 업무에서도 사적인 관계가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인맥으로 이루어지는 일들이 많고, 사회 생활을 잘한다는 것은 단지 업무를 잘하고 원칙을 잘 지킨다는 뜻이 아니라 상사에게 예쁨 받고 후배를 아우를 줄 아는 능력을 가졌으며 폭넓은 사적인 관계를 가지고 있다는 뜻을 함축하고 있다.
그리고 서양의 기술적 우위와 경제적 풍요에 반강압적으로 전통의 흔적을 모두 밀어내버린 현재의 한국에서는 어느정도는 필요 이상으로 서양의 것을 우러러보고 전통을 무시하는 풍조가 자리잡은 것 같다.
조선에서 500년 넘게 성리학 논쟁을 이어온 것을 두고 시대에 뒤쳐지고 현실을 못보는 한심한 일이라고 폄하하는 말은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나는 조선의 선비들이 갈고 닦은 정신 문화는 서양의 것보다 뒤쳐지지 않으며 오히려 더 지혜롭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기술력과 경제력의 격차 때문에 퇴색되었을 뿐이다.
서양인들을 보면 감정 표현의 폭이 한국인보다 훨씬 작은 것 같다는 느낌을 받는다. 종종 입으로 웃기도 하고 얼굴이 벌개져 화를 내기도 하지만 눈에서 감정 변화가 전혀 드러나지 않는 서양인을 보면 어딘지 모르게 기계인간 같은 느낌을 받기도 한다.
그것도 그럴 것이 서양인이 외부에 드러내는 모습은 공적인 모습 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국인처럼 사적인 인간관계를 다 큰 성인이 많은 사람들 앞에서 드러내는 경우가 거의 없다. 역사적 배경을 생각해보면 서양인의 역사는 지난 수 백년 간 수많은 이민족간의 교류가 있었고 미국이나 오세아니아는 아예 생판 모르는 사람들이 모여 공동체를 형성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 그러니 수 천 년간 단일민족을 표방하며 한반도에서만 살아온 한국인들과 다르게 사적인 관계가 자연스러운 공동체 문화가 형성될 수가 없었을 것이다.
만약 모든 사람이 서로를 가족처럼 생각한다면 그것은 유토피아일 것이다. 이기적으로 행동하지도 않고 지나치게 모든 면에서 계산적으로 행동하지도 않으며 제 몸처럼 남을 챙기고 서로의 선의를 믿고 솔직한 소통을 하는 가족 같은 관계를 모든 공동체고 공유한다면 말이다.
물론 한국이 그런 유토피아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서양보다는 훨씬 그런 유토피아에 가까워보인다. 잘잘못을 가릴 때 미국인은 변호사를 찾는다. 만약 상황이 더 급박하고 격하다면 총을 찾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한국인들은 목소리 큰 놈이 이긴다고 자조적으로 말하긴 하지만 어쨌든 대화로 상황을 풀어 가려고 한다. 건달도 길거리에서 시비가 붙어 주먹질을 하기 전에 "내가 이런 형님을 알고, 이런 사람인데 너는 어떤 형님 모시는 누구냐?" 며 인간적으로 상황을 풀어가려 한다.
미국의 의료 보험이 돈 없어서 사람이 죽는다는 말이 와닿을만한 제도인 반면 한국의 의료 보험은 공적 자금을 투입해 개인의 부담을 최소화하는 것도 이런 문화의 영향이 저변에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역사가 증명하듯이 경제적이고 기술적인 면에서의 효율성은 사적인 인간관계가 사라진 서양 문화가 더 나은 경우가 많다. 상사보다 더 나은 아이디어가 있는 후배가 있고, 사적인 관계를 연기하듯이 연출하면서 노골적으로 자신의 이득을 취하려는 경우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 무작정 한국적인 사적인 관계를 표방하고 위계에 순종하기만 해서는 많은 어려움이 있을 것이다.
그 때문에 아예 사적인 관계를 아예 배제하고 싶어하는 사람들도 많아진다. 사적인 관계라는 것은 애초부터 공적인 관계보다 리스크가 있는 것이지만, 거기에 더해 요즘 시대에는 사적인 관계가 때로는 사기꾼의 표적이 되고 소위 배웠다는 사람들의 비웃음거리가 되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식의 사적인 관계, 다 큰 성인들 사이에서도 때로는 어리광을 부리고, 어리광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삐지고, 달래주는 관계. 존댓말을 듣는 사람은 존댓말을 하는 사람을 책임지고 존댓말을 하는 사람은 존댓말을 듣는 사람을 신뢰하고, 반말을 하며 격없이 지내는 관계는 한국인의 일종의 문화적 자산이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이미 한국 사회에 자리 잡은 사회적 변화에는 적응을 하되, 그렇다고 전통적 가치관을 무시하고 통째로 버릴 것이 아니라 오히려 변화한 사회에서 그러한 가치관을 이상적인 취지에 맞게 지켜가는 태도는 바람직할 것이다.
사실 그렇게 하지 못하면 살기 어려울 수 밖에 없다. 왜냐하면 아직 우리나라는 이성과 원칙, 그리고 기독교적 이상을 필두로 하는 서양식 문화가 자리 잡은 것도 아니기 때문에 전통적 가치관을 버리면 서양인도 아니고 동양인도 아닌 왕따가 되기 십상이다. 그렇다고 전통적 가치관을 고집하면 비효율적인 것을 넘어 어쩌면 사기를 당할지도 모르고, 그러한 가치관에 부담을 느끼는 사람들과 관계를 맺기도 어려울 것이다.
어쩌면 개인이 자신의 삶의 태도를 정립해야 할 부담이 큰 시대라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부담을 견뎌내다 보면 동서양의 장점을 포섭한 발전적인 태도를 가지게 될 수도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