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기영 May 20. 2024

78. 내가 만난 100인

엄. 친. 아

대현이는 정말 엄마 친구의 아들이다. 하지만 이 시대에 통하는 엄친아와는 정반대의 캐릭터이다.

영감님 같은 목소리, 더듬거리는 말투 게다가 공부까지 못하는 그는 학교에서는 아웃사이더로 더 유명했다.

한 번은 내가 급식실 김치 배식을 담당하고 있을 때였다. 대현이가 매운 걸 잘 못 먹는 아이라는 걸 누구보다도 잘 알기에 일부러 김치를 몇 조각만 떠 주었다. 그때 나를 지켜보던 한 무리들이 말했다.


"야! 너 이대현 좋아하지? 그러니까 맛없는 김치를 조금씩 주는 거 아냐?"

"아니거든!"


다음 날  대현이의 배식차례가 되었다. 주위를 살피며 김치를 또 조금만 떴다. 이걸 놓칠 리 없는 무리들은

또 입을 모았다.

"저 거봐! 쟤 이대현 좋아하는 거 맞다니까?"

"그래! 맞네. 다른 애들에게는 김치를 푹푹 퍼 주면서 이대현한테는 조금씩 주는 것 좀 봐!"

"얼레리꼴레리~"


 그 시절 급식에는 잔반처리통 따위는 없었다. 그저 우리는 군대처럼 주는 대로 다 먹어야만 했다.

그리고 나는 어떻게든 이 위기를 모면해야만 했다.

 다음 날, 나는 무리들을 의식해 보란 듯 대현이의 식판에 김치를 듬뿍 담았다.

"이렇게 많이 주면 어떻게 해? 다 못 먹는다 말이야."

"그동안 내가 조금씩 줬잖아! 빨리 가! 뒷사람들 기다린단 말이야."

그날 대현이는 가장 늦게까지 남아 진땀을 흘리며 김치를 꾸역꾸역 먹었다.



아침 조례가 있던 날이었다. 모두 실내화를 갈아 신고 운동장으로 나가려는데 신발장 앞에서 대현이 혼자 우왕좌왕하고 있었다. 역시나 그 주변에는 한 무리의 구경꾼들이 둘러싸고 있었다. 분명 누군가가 대연이의 신발을 숨긴 것 같았다. 나는 애써 모른 척 그 옆을 지나 신발을 꺼내는데 뒤통수에 굵직한 한마디가 날아들었다.


"기영아! 너 혹시 내 신발 못 봤어?"

그 말 한마디에 순식간에 주변이 이수라장이 되어버렸다. 대현이가 나를 부를 때 성을 빼고 불렀기 때문이다. 누구나 그랬겠지만 모두가 약속이라도 한 듯 초등학생이 되면 하나같이 이성친구를 부를 때 꼭 성까지 붙여 불렀다.


"기영이래~"

"기영아!라고 불렀어."

"우와~ 이대현이 이기영에게 '기영아'라고 불렀어!"

"이대현! 너 이기영 좋아하냐?"


그때였다. 대현이는 분명 아니라고 말했어야 했다. 하지만 그는 웃기만 할 뿐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았다.

"딴~딴~다단~ 딴~딴~다~단~"

 누구라고 할 것 없이 우리를 둘러싼 무리들이 웨딩마치를 불러댔다.

그날 나는 전교찐따의 여자 친구를 등극해 버렸다.


근근이 학교생활을 해내가던 중 어느 날 아침 엄마가 말했다.

"오늘은 학교 마치고 대현이네 집으로 바로 와. 엄마 오늘 거기서 계 모임 있으니까. 알았지?"

"알았어."

대답을 한 뒤 순간 머릿속에 뭔가 지나갔다. 얼른 대현이의 입을 막아야 했다.

아니나 다를까 등교한 나를 본 대현이는 나를 반기며 먼저 말을 걸어왔다.


"기영아, 오늘 우리 집에 오는 거 알지? 우리 엄마가 학교 마치고 너랑 같이 오래."

"알았어! 알았으니까. 아무에게도 말하지 마! 제발! 알았지?"

그때였다. 바로 앞에 있던 사냥감을 놓칠 리가 없는 가장 입 싼 아이가 큰 소리로 말했다.

"오! 이대연, 이기영 너네 뭐냐? 진짜 결혼이라도 하는 거냐? 딴~따~다다~딴따~다~단."

"아니거든! 내일 얘가 당번이라서 알려주는 거거든!"


그렇게 씩씩거리며 학교를 마친 뒤 돈도 없으면서 문구점 앞을 서성거렸다. 점점 아이들이 사라지자 곧장 대현이 집으로 향했다.  마을어귀쯤 도착하니 느티나무아래에서 대현이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왜 이렇게 늦게 와!"

"몰라!"

나는 발에 걸리는 돌멩이를 툭툭차며 앞서 걸었다.

대현이네 집 문을 여는 순간 거실에는 똑같은 스타일의 머리모양을 한 아주머니들이 나란히 얼굴을 번들번들 거리며 누워있었다. 얼굴은 잘 알아볼 수 없지만 대현이 엄마의 목소리가 들렸다.


"너희들 먹고 싶은 거 챙겨서 대연이 방에 가서 놀아."


친구들은 대현이가 더럽다고 했지만 사실 대현이는 아주 깨끗한 아이였다. 대현이의 방은 정말이지 아주  깨끗했다. 대현이가 더럽다고 소문이 난 사건 하나 있었다. 급식으로 미역무침이 나온 날이었다.

그날 배식당번이었던 한 아이가 대현이에게  많은 양의 미역무침을 주는 바람에 대현이가 그걸 먹다 미역이 목에 걸려  토했기 때문이다. 그걸 본 아이들이 그때 이후 대연이가 더럽다고 놀렸고 마치 그를 전염병이라도 걸린 사람 취급했다. 그와 조금만 피부가 닿아도 소스라치듯 놀라며 손을 마구마구 닦았다. 그런 행위자체가 진짜 전염병처럼 여학생들 사이에 퍼져나갔다. 되도록이면 대현이와 닿지 않으려고 모두들 안간힘을 써 댔다.


나는 숙제부터 폈다. 양손에 먹을 걸 잔뜩 가져온 대현이가 나를 보며 말했다.

"나도 숙제부터 해야겠다!"

"너 원래 숙제 잘 안 해 오잖아?"

그는 못 들은 척 숙제를 꺼냈다. 그날 우리는 방바닥에 엎드려 같이 숙제를 했다. 그리고 대연이는 생각보다 똑똑했다. 한번 가르쳐 준 수학문제도 곧 잘 이해했고 풀 때마다 정답과 맞춰보았는데 거의 다 맞았다.

그때마다 대현이는 한 층 더 신이 나 있었다.


"우리 카드놀이 할까?"

"카드놀이?"

숙제를 끝낸 후 대현이가 책상아래에 있는 자신의 보물상자에게 이것, 저걸 꺼내 보여 주었다. 우리는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그렇게 즐겁게 놀았고 헤어지는 것조차 아쉬워할 정도였다.

"내일 봐!"


다음 날 대연이는 대형사고를 쳤다. 어제 함께 한 숙제를 가져오지 않은 것이다.

"대연이! 너 또 숙제 안 했니?"

"했어요! 선생님! 이번에 진짜 했는데...."

대연이는 가방을 뒤적뒤적 거리며 숙제를 찾았고 그 행동이 선생님의 화를 더 돋웠다.

"대연이! 그냥 앞으로 나와!"

"진짜, 이번에 숙제했어요. 선생님!"

"됐어! 빨리 앞으로 나와! 그리고 손바닥 내!"

"아~ 진짜 했는데.."

"너 거짓말하면 더 맞는다."


그때 나는 조마조마하게 이 상황을 지켜만 보았고 마침 억울함에 극치에 다다른 대현이가 절규하듯 말했다.


"저 어제 기영이랑 같이 우리 집에서 숙제했다고요. 선생님!"


갑자기 아주 큰 월척 얻은 아이들의 눈빛이 내 머리 위로 쏟아졌다.

그리고 선생님의 한마디가 나를 꾹 눌렀다.

"기영아! 대현이 말이 사실이니?"

"네?"

"너 어제 대현이랑 같이 숙제를 한 게 맞아?"

선생님의 또렷한 눈빛과 점점 더 끔찍한 상황으로 흘러가는 분위기를 도저히 혼자 감당해 낼 자신이 없었다. 이걸 나는 비겁함이라 부른다.


"아니요! 선생님, 같이 한 적 없어요."


나빴다.

그때 나는 나빴고.

그는 잊었다.



잊고 사는 자.

기억하며 사는 자.

그렇다고 해서 완전히 사라진다는 건 더 비겁한 일이 될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77. 내가 만난 100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