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니멀라이프에겐 ‘거절’ 당하지 않아

세상의 수많은 거절에 지친 그대에게

by minimal jean
사진3.jpg 팔자좋은 서울대공원 여우 ♥





“귀하는 뛰어난 역량을 갖추고 계시지만, 금번에는 모시지 못했음을…”





불합격 메일 OO번 째. 내 인생에서 이렇게 많은 곳에게 거절을 당한 적은 처음이었다. 학창 시절 나는 수업시간에 가장 일찍 도착하며, 항상 맨 앞자리에 앉고, 결석 한 번 하지 않는 성실한 학생이었다. 친구들과도 한 번도 싸운 적이 없고, 책임감 있는 성격으로 항상 리더 자리를 도맡아 했다. 그랬던 내가 세상으로부터 구체적인 이유도 모른 채 수 십 번의 거절을 당했다. 정말 상투적이지만 나의 지나온 과거가 전부 부정당하는 느낌이었다.




특히 나를 가장 힘들게 만든 것은 내가 만든 결과물에 대해 어떠한 피드백도 들을 수 없다는 점이었다. 초등학교부터 대학교 때까지 나는 잘하든 못하든 내가 만든 결과물에 대해서 성적표나 주변인의 조언 등을 통해 항상 피드백을 들어왔다. 피드백은 나의 결과물의 좋은 점, 안 좋은 점, 개선해야 할 점 등 총체적으로 알려주며, 앞으로 내가 더욱 성장할 수 있게 만들어 주었다. 그리고 나는 개선점을 찾아 나가며 성취감도 느낄 수 있었다. 그런데 취업시장은 달랐다. 그 시장은 지원자에게 별다른 설명 없이 합격/불합격만 통보하는 시장이었다.




나는 거절 메일을 받으면 받을수록 의욕을 잃어갔다. 회사의 고용 프로세스에 나를 맞추기 위해 공부했던 시간들은 합격하지 않으면 나의 경력이나 자기 계발에 특별한 도움이 안 되는 시간들이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수많은 불합격을 경험했음에도 어떠한 피드백도 들을 수 없었기에 내가 취업문턱에 어느 정도 다가섰는지도 전혀 가늠이 되지 않았다. 따라서 실패만 반복하는 취업준비에서 나는 어떠한 성취감도 느낄 수 없었고, 지금까지 인생에서 이렇게 성취감 없이 살았던 적이 있었나 싶었다.




그러던 어느 날 여느 때처럼 밤늦게까지 공부하고 방에 들어왔는데, 책상과 그 주변에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인적성 문제집과 몇 달 동안 정리 안 된 옷가지들로 어지럽혀진 방을 보니 실소가 나왔다. 남의 회사(심지어 나를 고용하지 않은 회사) 만 돌보고, 밤마다 나의 작은 안식처가 되는 나의 방은 하나도 돌보지 않았던 것이 웃겼기 때문이다. 일단 나부터 돌보며 지친 마음을 달래자는 생각이 들었고, 그때부터 나는 본격적으로 내 방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일단 언뜻 가장 쉬워 보이는(?) 책상을 정리하기로 했다. 나는 집에 있는 책상에서는 거의 공부하지 않아서 책상을 나의 모든 짐을 놓는 용도로 쓰고 있었다. 나는 책상 위에 있는 모든 것들을 정리하기로 마음먹었다. 내 허리만큼 올라오는 문제집들을 버리고, 안 쓰는 필기구도 버리니 책상이 아주 깨끗해졌다. 아무것도 올려져 있지 않은 책상을 보니 묵은 때가 가시듯 마음이 정말 상쾌하고 홀가분해졌다. 그리고 더욱 중요한 것은 내가 아주 오랜만에 성취감을 느꼈다는 점이다! 책상 정리를 하면서 내 눈 앞에 가시적인 효과가 딱 보이는 것이 정말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나는 성취감도 있고, 나의 공간을 소중하게 가꾸어주는 ‘정리’를 계속 더 해보기로 했다.




다음은 옷장정리였다. 나는 18개월 동안 정신없이 취업 준비만 하느라 옷장은 전혀 신경 쓰지 못했는데, 오랜만에 살펴보니 옷장은 완전히 사계절 옷이 뒤섞인 정신없는 구제시장이 따로 없었다. (사실, 당시 내 옷장보다 구제시장이 훨씬 더 깨끗할 것이다.) 수많은 옷들을 한 번에 다 꺼낼 엄두도 나지 않아서 일단 손에 집히는 것부터 버릴 건지 안 버릴 건지를 정했다. 버릴 옷에는 10대 때 입던 옷들도 있고, 핫핑크 호피 무늬 점퍼 같은 왜 샀는지 모를 옷들도 있고, 이제는 더 이상 입지 않는 짧은 스커트나 팬츠도 있었다. 버릴 옷은 금방 산더미같이 쌓였고, 당시에는 당근 마켓도 생각을 못해서 안타깝게도 그 옷들을 그냥 전부 의류수거함에 넣어버렸다.




이후에도 나는 책장, 가구, 가방 등 계속 내 방의 다양한 구석들을 정리해 나갔는데, 이상하게도 정리는 ‘채우는 것’이 아니라 ‘비우는 것’인데도 항상 나에게 긍정적인 에너지를 주었다. 매일매일 정리하는 만큼 매일매일의 보람이 있었고, 정리하는 만큼 내 생활이 좀 더 정돈되고 통제되는 것이 좋았다. 세상은 내가 어쩔 수 없었지만 내 공간과 물건은 내가 drive할 수 있었고 develop할 수 있었으며, 금방 금방 눈에 보이는 성과를 통해 성취감도 느낄 수 있었던 것이 너무 좋고 행복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점은 나의 물건을 정리해주고 나의 공간을 가꾸어 주는 ‘미니멀라이프’는 한 번도 나를 ‘거절’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오히려 내가 계속 성장해나갈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주었다.




그리고 나는 물건을 정리하며 나의 인생을 정리해볼 시간도 얻었다. 물건을 정리한다는 것은 결국 좋아하는 것은 남기고 그저 그런 것은 비우는 행동을 말하는데, 이 행동을 통해서 나는 내가 좋아하는 것은 무엇이고 싫어하는 것은 무엇인지 더욱 확실히 알 수 있는 시간을 가졌기 때문이다. 어떤 물건이 좋고 싫은 지를 구분하며 내가 지금까지 어떤 취향을 갖고 살아온 사람인지를 알게 되었고, 더 나아가 나는 앞으로 어떤 것을 하고 싶은 사람인지 혹은 어떤 가치를 지향하는 사람인지를 과거보다 조금 더 명확히 알게 되었다. 수많은 자기소개서를 쓰고 면접을 보며 나를 알아갔던 것보다 물건을 비우면서 나를 알아갔던 면이 더 많았고, 더 솔직했다. 그리고 나는 확실히 이전보다 내가 정신적으로 더욱 성숙했음을 느꼈다.




예전의 나처럼 세상의 찬바람을 정면으로 맞으면서 무기력증을 느끼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면, 미니멀라이프를 권해보고 싶다. 작은 영수증이나 한 번도 쓰지 않은 전자기기 설명서도 괜찮으니 뭐든 간단한 몇 개라도 비워보면서 미니멀라이프가 주는 성취감과 내면적 성장을 한 번 경험해 보았으면 좋겠다. 미니멀라이프를 하기 위해서는 어떠한 감명 깊은 자기소개서나 톡톡 튀는 1분 자기소개도 필요없다. 그냥 미니멀라이프를 해보고 싶다는 가장 간단한 마음으로 미니멀라이프의 문을 똑똑 두드리면, 어떠한 거절 없이 따스한 환대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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