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이 화살이 될 때
오랜만에 써보는 일기에 많은 시간이 빠르게도 흘러갔다. 새해가 되면 하겠다던 다짐들을 살펴보니, 가장 큰 고민거리인 자녀에 대한 고민은 진척이 없다. 남편의 출장을 계기로 친정집에서 머물 힘든 시기를 근근이 버티어나갈 수 있는 정도가 되었다.
요사이 회사에서 큰 스트레스를 받아 뇌에 곰팡이가 낀 것 같은 느낌과 잔잔하게 오는 두통. 처음으로 느껴보는 심장박동처럼 안구가 두근거리는 느낌이 2~3일간 지속되는 나날들이었다.
스트레스를 받은 직접적인 원인은 특정 작업물의 지속된 수정반복행위 때문이었다. 마지막에는 누락이 늘어나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당연하게 상대방은 내가 누락이 많다는 점을 지적했다. 그 사이 업무일정을 자기 편의대로 결정하고 책임지지 못할 것 같아 나를 끌어들여 일정을 당기려는 그 시도 자체가 굉장한 불쾌감으로 왔다,
털어 먼지 안나는 사람 없다고, 출판 디자이너는 특히나 그러하다. 교정지 수정반영을 누락 없이 완벽히 하는 디자이너가 있을까. 더욱이 멘털까지 흔들렸으니. 다만 이 과정에서 상대방이 나를 향한 비난을 큰 목소리로 방음이 안 되는 방에서 본인의 상사에게 말하면서 문제를 이슈화하였다.
이대리. 경력. 솔직히. 누락. 화난다.라는 목소리가 전달된다.
나에 대한 불만을 상사에게 전달할 수 있다. 하지만 모든 사람들에게 들리게끔 저렇게 분노를 표출할 이유가 있을까 싶다.
상사분이 다행히도 이번 사안에 대해 나에게 우호적인 태도를 취했고, 결과적으로 직접적으로 회사생활에는 어려움이 없을 것 같다. 하지만 흠잡기 기간으로 행동과 업무에 있어 더 신경 써야 할 것이다. 과연, 이 부분을 어떻게 해결해 나갈 것인가에 대해서는 스스로 야근을 하더라도 커버 쳐야 하지 않을까 한다. 하지만 회사에 남아 업무를 하지는 않을 것이다.
회사에서 야근을 하지 않은 이유는 남아있으면 자연스럽게 일을 줘도 되는 사람이라는 인식이 남기 때문이다. 어처구니없게도 회사 내에는 '디자이너가 야근을 안 해서 수정을 못한다'라고 한다. 이 말을 하는 상대가 디자이너를 어떤 대상으로 생각하는지 알 수 있다. 디자이너를 자신을 위해 상시대기해 주는 존재라고 생각하는 것이 은연중에 깔린 권위적인 사람인 것이다.
최근 업계 근황이 좋지 않고, 결국 우리 회사도 공문이 내려졌다. 내용의 핵심은 구조조정을 할 것이라는 이야기였다. 정확하게 이 단어가 들어간 것은 아니지만, 실적이 없는 직원에게는 앞으로 어떠한 기회도 줄 수 없었음을 알린다는 내용이었다.
입사 때쯤 많은 직원들이 물갈이가 되는 상황이었고, 이 와중에 영입된 직원들이 기대한 만큼의 실적을 내고 있지 못했다. 그러는 반면, 들어가는 비용을 줄인 것도 아니었다. 그러니 회사입장에서 말하는 많은 기회를 주고 있다는 부분에서는 맥락이 맞다. 그러니 그 실적에 대한 일부의 책임을 디자이너에게 전가하는 것이다.
여기서 일단 나의 행동 양식은
야근을 하지 않되, 집에 가서 체력이 돼 면한다.
하지만 회사 근무시간 외 업무 우선순위는 외주일이다.
라는 골조를 가져갈 것이다.
회사일이 이렇게 상황이 안 좋은 가운데, 불행 중 다행일지, 외주일은 잘 들어오고 있다. 그래서 든든한 마음으로 나의 가치에 대해서 관대한 평가를 내리며 버틸 수 있었다. 나의 실력을 운운하는 회사, 구조조정을 암시하는 회사로부터 당신들이 아니어도 나를 원하는 대상이 있음 자체가 큰 힘이 되었다.
하지만 그와는 별개로 개인적인 정신력과 체력이 들어간 것도 분명 맞다. 회사 마감일과 외주일 마감이 겹치면서 꽤나 힘든 시간을 보냈었다. 다행히도 외주 업무를 주신 분은 지난 회사분으로 오랫동안 손발을 맞춰와 봤고, 또 서로에 대한 신뢰감이 있어 회사를 다니는 면서도 나의 편의를 봐주고 있다.
장거리 출퇴근을 하면 회사일을 하는 것만으로도 남편은 삶에 최선을 다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렇기에 살림살이가 시간이 지날수록 더러워지는 것에 대해서 크게 뭐라 하지 않는다. 사실, 내가 더러움에 대한 기준이 더 높기에, 내 성에 차지 않아 스트레스를 받아할 뿐 내가 묵인하고 넘어가면 큰 사달이 날 일은 없다. 하지만 안타갑께도 사람이 둘인지라, 남편의 더러움을 참는 것도 스트레스가 된다. 남편 또한 장거리 출퇴근을 하는 사람으로서 집 안을 크게 신경 쓰기 어려워하고 긴 시간 자취를 할 때도 크게 신경 쓰지 않았던 패턴에 몸에 베인 사람이라 바뀌어 지지는 쉽지 않다.
'더러움'에 대한 기준차이로 싸움이 일어나고 소통의 문제로 싸움이 번져나갔다. 물론, 지금은 이에 대해서 소강이 된 상태지만 결혼하고 한 큰 싸움 두 번째로 이 또한 정신적으로 큰 영향을 주었다. 이러한 이유로 기록을 남겨나갈 수 없었다. 그래서 결국은 집안이 평안해야지 밖에 일도 잘 돌아간다는 말이 맞는다는 생각이 든다. 모든 삼박자가 크게 문제없이 돌아가는 것 자체가 큰 일이고 복이다.
인생은 늘 타이밍이 문제인 것 같다.
집안일을 어떻게 줄일지에 대한 고민을 해나가야겠다.
오랜만에 글을 쓰니 뭔가 엉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