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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달려가고 싶다

책 읽기가 너무 지루해요 ㅠ.ㅠ

by 냥냥별

나는 달려가고 싶다




나는 달려가고 싶다

막힘없이 쌩쌩

가장 마지막으로


내 눈은 분명히 한자 한자 밟고 지나가는데

머릿속엔 왜 아무 자국도 남지 않는지


채 한 장을 넘기지 못하고

나는 다시 돌아오고 만다

출발점으로


그래, 하나 둘 하나 둘

마음을 다잡고 걸어가 본다

하나 둘 셋 넷!

다시 한번 달려가 본다


내 손은 분명히 한장 한장 넘기고 있었는데

눈꺼풀은 왜 자꾸 문을 닫아버리는지


나도 달려가고 싶다

엄마가 무서운 눈으로 기다리고 있는

이 책의 마지막 장으로




몇 달 전, 우리 아들은 그동안 다니던 방과후학교 수업을 이제 그만 가고 싶다고 선언했다. 꼬꼬마 1~2학년때는 돌봄 교실을 하면서 두세 개의 방과 후 수업을 재미있게 들었는데, 학년을 올라가면서 점점 줄여가더니 이젠 하나 남은 컴퓨터 수업 마저 가기 싫다는 것이다. 방과 후에 따로 학원을 가지도 않고 집에서 학습지와 숙제만 하는 아이이기 때문에, 엄마로서는 방과후학교 수업이라도 들으며 시간을 좀 뜻깊게 보냈으면 하는 마음이 있다. 시간이 남으면 친구들이랑 밖에서, 혹은 혼자 집에서 휴대폰 게임 삼매경에 빠져 있을 게 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과목이라도 바꿔보려고 앉혀놓고 상담을 시작했으나, 본인이 하고 싶은 과목이 하나도 없다는 것이다. 컴퓨터 수업도 엄마 눈치에 억지로 가고 있었다는 말에, 그래 그동안의 노력이 가상해서 나는 그냥 아이의 요청을 들어주기로 했다. 대신 시간이 많이 남으니 독서시간을 늘리고, 일주일에 한 번씩 나에게 독서기록장을 검사받은 수 있겠냐고 물었다. 그러자 썩 내키는 표정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수업 가는 게 더 싫었는지 나의 제안을 순순히 받아들였다.


일주일에 두 권으로 시작된 아들의 방과 후 독서는 처음엔 성공적인 듯했다. 일단 약속을 지킨다는 것을 보여주려고 그랬던 건 지, 도서관에 가서 책도 빌려오고 저녁엔 방에서 조용히 책을 읽는 모습도 보였다. 책의 종류는 상관없었다. 나는 일단 뭐든 꾸준히 읽기라도 했으면 했다. 요즘 아이들은 시간 날 때마다 휴대폰과 PC로 게임이나 영상을 보는데 빠져 있을 때가 많아, 글을 차분히 읽는 것조차 힘들어하는 아이들이 수두룩하기 때문이다. 언론에서 요즘 아이들은 문해력이 떨어진다는 내용을 볼 때마다, 우리 아이들도 그러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되곤 했다. 그래서 아들에게 이렇게 독서를 시키게 된 것이 오히려 잘 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끔 나와 함께 도서관에 가서 책을 빌리고 재밌었던 책 내용을 나에게 리뷰하기도 하는 둘째와는 달리, 첫째는 그간 책을 보는 모습을 좀처럼 목격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시간이 흐를수록 아들의 독서 의지는 조금씩 흐트러져 갔다. 빌린 책을 도서관에 반납하는 날을 넘겨 책을 바로 빌리지도 못했고, 일주일에 두 권씩 읽고 독서기록장을 쓰겠다는 약속도 한 권으로 줄여달라는 요청이 들어왔다. 그래서 한 권으로 줄여주었으나 그것마저 이런저런 핑계로 일요일 저녁까지 검사를 받지 못하는 날도 있었다. 그럴 때면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한숨이 올라왔지만, 그래도 마음을 다잡으며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어쨌든 아이가 꾸준히 책을 읽기로 한 약속을 지키려고는 하고 있고, 습관이 쌓이다 보면 점점 진득하게 앉아 있는 시간도 늘어갈 것이라 믿었다. 나 역시도 책을 손에 놓은 오랜 기간 뒤에 다시 독서를 시작하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내가 최근에 다시 도서관에 가서 책을 빌리고, 꾸준히 책을 읽으려고 마음을 먹은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어느 날 정말 볼 것이 없는데도 휴대폰으로 영상을 계속 넘기고 있는 이 시간이 너무 아깝게 느껴졌기 때문이었고, 다른 하나는 아이들 때문이었다. 아이들에게 이제 폰 좀 그만보고 책 좀 읽으라고 잔소리를 하면서, 정작 나는 그러지 않고 있는 현실에 양심이 심하게 찔렸다. 물론 그간 쉴 시간도 없는 바쁜 워킹맘이라는 좋은 핑계를 대고 있었지만, 사실 따지고 보면 시간이 아예 없는 건 아니기 때문에. ㅎㅎ


내가 '이번주 책 다 읽어가니?' 라고 던진 말에 오늘도 우리 아들의 한숨 소리가 들려온다. '아니오' 라고 대답하며 휴대폰을 내려놓고 책을 꺼내 읽어보지만, 채 20분도 안되어 밖으로 나와 여기저기 기웃거리다 내 곁에 앉아 이렇게 말한다.

" 엄마, 책이 너무 재미없어요 ㅠ.ㅠ "

'아들아, 엄마도 책 보다가 자꾸 눈을 감은채 고개를 떨구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한단다. 모든 책이 다 재미있진 않아. 그래도 이것저것 읽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빠져드는 책도 만나게 된단다. 그러면서 너의 머릿속에 생각도 많아지고 앞으로의 꿈도 많아질 거야. '

우리 마음에 딱 들진 않아도 어쨌든 노력하는 아이들을 보면, 그저 예쁘지 않은가? 그러니 이럴 땐 잔소리를 조금 내려놓고 쓰담쓰담 궁디 팡팡 하며 힘을 불어넣어 주자. 그러면 엄마에게 칭찬받기 위해서라도 아이는 조금 더 노력하고, 조금 더 성장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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