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차부적응
아무 탈 없이 공항에 도착했다. 다인원이 모여야 출발하는 이동수단인 미니버드는 택시보단 저렴하고 버스보단 비싸지만 시간적으로 메리트가 있다고 해 예약했다.
단점은 인원이 모이지 않으면 그만큼 출발이 늦어져 메리트 또한 없어진다는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미니버드 예약이 많이 밀어져 늦게 숙소에 도착했다.
기다리는 시간동안 첫날부터 힘이 빠지고 있었다. 그러다 같이 대기하던 옆 커플에 얘기를 들었다.
이번 여행이 얼마나 재밌으려고 벌써부터 이런 힘듦을 주는 건지 오히려 좋다는 말이었다.
서로 마주 보면서 함께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그들이 너무 아름다웠다.
그들은 사랑에 대해 얘기한 생택쥐페리에 말에 반대한다는 듯했다.
1시간쯤 지났을까 미니버드가 도착했다. 나는 운전자 바로 옆좌석에 앉았다.
처음보는 헝가리의 풍경들을 구경하는 재미가 솔솔했다.
내 옆자리엔 일본여성이 계셨다. 그분은 이번이 두 번째라고 했다.
나의 빈약한 영어실력으로 말을 이어 나갈 순 없었다.
24년 한 해 목표였던 영어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은 내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그녀는 내가 어려보였던건지 그녀는 어머니의 미소를 띠며 이것저것 물어보았다.
나이가 어떻게 되는지 학생인지 어떻게 여행을 오게 되었는지
아직은 낯선 이곳에서 그녀 물음 덕분에 긴장했던 마음이 편해졌다.
나는 차 안에서 계속 주위를 둘러보았다. 국회의사당이 나오자 기사님은 나의 어깨를 치며 손짓으로 가리켰다.
사진도 찍을 수 있게 천천히 달려주셨다. 그 풍경은 너무나 아름다웠다.
부다페스트 사람들은 엄청 무심하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소문은 믿을게 못되나 싶다.
역시 수많은 소문보단 하나의 경험이 더 강력한 것 같다.
현재 시간 새벽 3시 49분 아니나 다를까 시차적응 실패다. 내 계획은 완벽했다고 생각했다.
12시간 비행동안 책을 읽고 영화도 보며 잠을 최대한 줄여가서 숙소도착해 하루를 마무리하는 계획말이다.
한국에서 나는 시차적응 따위야 어렵지 않다고 생각했다. 아무리봐도 참 오만했던 생각이다.
그래도 여기까지 왔는데 부정적으로 생각하기보단 어제 늦은 만큼 오늘을 좀 더 길게 보낼 수 있다고 생각하니 벌써부터 설렘이 더해져 잠이 더 안 온다.
어쩌면 시차부적응이라는 건 그 사람의 설렘의 정도에 따라 생기는게 아닐까라는 상상에 나래를 펼쳐보았다.
그래도 나는 이 설렘을 안고 오늘을 좀 더 길게 보낼 것이다.
첫 시작이 좋다. 아름다움과 설렘을 함께 할 수 있어서 더욱더,,
날이 밝아온다. 잠이 안 온다면 평소라면 볼 수 없는 일출을 보기위해 숙소 발코니로 나갔다.
일출을 보는 내내 한동안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냥 바라만 보다가 나는 말했다.
첫 한마디는 정말 왔구나였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행복한 표현이었다.
마치 사랑한다는 말을 대신해 보고싶다라는 말을 하는 것처럼
날이 밝았다. 나의 버킷리스트였던 여행지에서 러닝을 하였다.
낯선 도시를 러닝하면 내가 볼 수 없던 아름다운 순간들을 볼 수 있어 꼭 뛰고 싶었다.
처음엔 내가 여기에 속해있지 못한 기분이 들었지만 거리거리를 뛰어다니며 그 안의 풍경들을 바라보며 달리니
조금의 비종속감은 이미 사라진 지 오래였다.
역시 유럽은 유럽인가 이미 러닝하는 외국인들이 많았다. 그들은 나와 마주칠 때마다 손인사를 해줬다.
처음엔 당황스러웠지만 하나의 문화로 인식하고서 러너들을 마주할 때마다 손인사를 하는 나를 볼 수 있었다.
러닝을 통해 나는 그 안에 속해있는 기분을 느꼈다.
한 번도 자취경험이 없는 나는 한 달 동안 장을 어떻게 봐야할지 고민이 많았다.
아무래도 식비를 아끼기 위해서는 숙소에서 많이 만들어 먹어야 한다.
처음 내린 결정은 3일치씩 장을 보는 것이었다. 어젯밤 작성한 리스트를 들고 마트로 향했다.
나의 첫 도전이다.
난 장 보는 게 이렇게 많은 시간을 보내야 하는지 처음 알았다. 장바구니에 담다 보니 이 정도면 거진 5일치 장을 본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래 처음이잖아 다음부턴 어느 정도 사면 되는지 감은 알았잖아
라는 생각을 하며 아기가 처음 자신의 성공을 기뻐하며 당당히 엄마에게 자랑하듯 마트 문을 나섰다.
(그렇다고 내가 아기라는 얘기는 아니다. 나는 어엿한 만 26살 청년이다.)
나는 여행을 가도 관광명소보단 거리를 돌아다니는 것을 좋아한다.
그들이 어떻게 하루를 보내는지에 대한 일상에 대한 궁금증이 많은 편이다.
또한 이렇게 돌아다니다 보면 관광명소들도 자연스럽게 볼 수 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나는 공원으로 향했다. 공원에서 혼자 또는 친구, 연인, 가족, 반려동물 다 같이 편하게 앉아 이야기를 하면서 보낸다.
무엇이 그리 재밌는지 모든 사람들의 얼굴은 웃고 있었고 아름다워 보였다.
이 모습들은 비유도 필요 없고 상징도 없을 만큼 단순 명료하다. 행복이다.
-엘리자베스 광장 안에서
유명한 현지인 맛집 레스토랑을 동행분들과 함께 들어갔다.
비싼 음식을 여러가지 즐기기 위해서 식사동행은 꽤 매력적인 것 같다고 느꼈다.
식사를 마치고 다 함께 야경을 보러 넘어갔다. 처음으로 해가지면서 보는 야경이라 너무나 아름다웠다.
수많은 사람들이 야경을 보러 다뉴브강을 건넌다.
저 반대편에서 해가 지는 게 보인다. 다리에 불이 켜진다. 국회의사당도 불이 켜진다.
하늘은 어두워졌지만 왠지 모르게 밝다.
국회의사당 야경을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보면 영원히 사랑에 빠진다고 한다.
이 말이 무슨 뜻인지는 직접 눈으로 본 사람들만이 이해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