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에 의존하여 쓰는 철 지난 아들과 딸의 육아 일기
2001년에 태어난 둘째 딸아이가 2020년 2월에 고등학교 졸업식을 하였다.
비록 코로나 19로 인하여 참석은 못하고 유튜브 온라인으로 졸업식을 시청하였지만 그래도 딸아이와 친구들은 웃으며 담임선생님과 사진을 찍었다.
더불어 참으로 감사하게도 졸업한 딸아이는 수시전형으로 대학에도 합격을 하였다. 비록 본인이 1,2차로 지망한 학교, 학과는 아니었지만 본인이 생각하고 선택하여 원서를 넣은 학교이므로 나는 딸아이가 잘 해내리라 믿는다. 이로써 자녀에 대한 내 숙제가 끝났다! 딸아이의 대학 합격 전화와 졸업식 사진을 보는 내내 그래서 그렇게 홀가분할 수가 없었다.
나에게는 아들과 딸 두 아이가 있다. 큰 아이는 아들이고 둘째가 딸이다.
큰 아이는 올해 23살, 서울대학교 사범대학에 다니고 있고 둘째는 한양대 에리카에 합격하였다. 누구는 남들이 알아주는 좋은 대학에 진학해서 자랑스럽고 누구는 세속적으로 말하는 정통 인서울이 아니라서 말하기 어색하고, 가 절대 아니다. 나는 나름대로 똑같이 아이를 키웠고 아이는 나름의 방식으로 학교 생활을 했고 세상과 부딪혔다. 나는 그 아이가 다니는 학교와 상관없이 아이들이 자랑스럽고 대견하다. 둘 다 바르고 건강하게 자라주었다.
나는 25년을 워킹맘으로 살았다. 워킹맘에서 방점은 워킹에 있었다. 엄마의 역할보다 일하는 직원으로서 더 잘하려고 노력을 했던 적이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가고 아이들이 자라니 방점이 맘으로 옮겨가야 한다는, 옮겨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이들이 점점 커가면서 내 나름으로는 최선을 다해서 두 아이를 양육하고 교육했다.
나는 금수저도 아니요 은수저도 아니다. TV에 나오는 멋들어진 직업여성들처럼 해외 유학파도 아니요, 집이 부유해서 상주 살림 도우미나 상주 육아 도우미를 쓴 것도 아니다. 육아휴직과 출산휴가제도가 정착되어있는 공무원, 교사도 아니었다. 민간기업에 다니면서 두 아이를 키운다는 것은 매일매일이 전쟁이었다. 보육은 친정엄마에게 기대고 살림은 엉망으로 내팽개치는 세월의 연속이었다. 연차가 쌓이고 회사에서 승진이 되어 자리가 올라갈수록 일과 가정의 양립은 더욱더 힘들어졌다. 수많은 시간, 나는 '내게도 마누라가 있었으면'하는 생각을 많이도 했었다. 그만큼 육아와 살림 두 가지 임무를 완수하는 것이 누군가의 보살핌 없이는 힘들었다는 말이다. 결론적으로 나는 썩 잘 해내지 못했다. 하지만 썩 잘 해내지 못한 것에 비하여 말하기 부끄럽지만 두 이이들이 너무도 잘 커주었다.
회사를 그만두었고 자신과 주위를 돌아본다. 동시에 주위에 아이를 키우는 많은 엄마들을 만날 기회도 많아졌다. 아이를 키운다는 것은 모두에게 두렵고 무서운 일이다. 특히, 하루 종일 아이와 씨름해야 하는 주부들에게는 더욱 그러하다. 내가 하는 행동과 언어가 고스란히 아이들에게 전달되기 때문이다. 나 또한 그것들을 경험하였다. 아이를 먼저 키운 선배로서 그들에게 절문을 많이 받는다.
이럴 때 어떻게 하셨어요? 저럴 땐 어떻게 하셨어요? 이럴게 해도 될까요? 저렇게 하면 어때요?
워킹맘이었다 보니 특히 아이들이 어릴 때는 세세한 하나하나까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하지만 재우고 먹이는 보육의 단계가 넘어가고 보여주고 놀아주고 교감하는 양육과 교육이 시작되는 시기는 기억을 더듬으면 조금씩 기억이 되살아났다. 이런 부분들을 조금만 이야기해주어도 후배 엄마들은 좋아하고 신뢰하여 안도했다. 그들이 잘못하고 있는 것이 아니기에. 내 얘기를 들으면서 특별히 잘하지 않아도 아이들은 잘 크구나, 대단히 무언가 특별한 것을 해주지 않아도 되는구나라고 안심들을 한다. 특히나, 사춘기 자녀를 둔 엄마들은 아이들이 어릴 때보다 더 두려워한다. 아무리 책을 보고 상담을 받아도 그때뿐이고 책과 상담을 해주는 사람들은 전문가라서 쉽게 이야기하는 것 같고 엄마는 평범한 사람이라 그대로 해도 될지 늘 안절부절인 것이다. 그들에게 우리 아이 사춘기 때 경험을 이야기해주는 것만으로도 그들은 위로를 받았고 참고 자료를 받았다고 했다.
그래서 정작 아이를 키울 때는 전혀 하지 않았던 육아일기를 이제야 써보려 한다. 이제는 둘 다 성인이 되어버린 아이들 육아일기를 써봐야 무얼 할 거냐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렇지만 지금이라도 기억해내지 않으면 지금 붙잡고 있는 이 기억이나마 더 빛바래 버릴 것이다. 나는 계속 나이가 들어가고 경험의 기억은 희미해져 갈 것임은 내가 인간인 이상 세월을 비켜갈 수 없는 이상 분명한 사실이다. 아이들 어릴 때 이야기와 그들이 중학교, 고등학교 시절 내가 겪었던 감정의 기복과 변화, 위기를 조금이라도 선명할 때 기록해두고 싶다. 그나마도 한정된 기억일 게다. 한정된 기억을 넓고 선명하게 하려면 굳은 머리를 열심히 굴려야 하는 다른 숙제가 있겠다. 나는 이 글을 쓰면서 여유롭게 생각을 하며 기억을 더듬으며 우리 아이들이 클 때는 회상하고 싶다. 그들이 좀 더 나이를 먹어 이 글을 본다면 지금은 서투른 엄마의 감정을 더 분명히 알게 되지 않을까 한다.
그리고 이 글은 지금 아이를 키우고 있는 후배 엄마들에게 작고 쓸데없을지 모르나 하나의 자료라도 될 수 있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