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자매의 현지 투어 여행기 in <로크룸 섬 >
두브로브니크 여행 3일 차, 우리는 로크룸 섬으로 떠나는 보트를 탔다.
한국에서부터 바다와 체험, 두 가지의 경험을 해보기 위해 여러 투어 상품을 검색했었다. 한국에서 여행 앱을 통해 검색을 해보니, 투어 상품의 가격이 약 50유로 정도였고, 섬 입장료 25유로는 별도인 곳이 대부분이었다. 분명히 현지에서는 더 쌀 거라고 생각하고 사전 예약을 하지 않고 갔다. 이것이 아주 주효하였다.
투어 전날 부두에 가니 투어 부스 여러 곳이 전을 펼치고 있었다. 카약이라고 적힌 곳은 여러 곳인데 로크룸섬이라고 적힌 곳은 딱 한 군데. 젊은 여인네가 서 있는 부스에 가서 상담을 하였다. 투어 가격은 섬 입장료 포함하여 현금가로 인당 55유로. 투어 앱보다 훨씬 싸다. 이 가격이면 현금을 안 할리가 없다. 우리는 다음 날 아침 9시 출발 상품으로 예약을 하였다.
보트에는 우리 세 자매를 포함하여 12명의 사람이 있었다. 우리를 제외한 모두가 유럽과 중동 사람이었다. 현지인들 속에 끼인 동양 여자 셋은 신기해하였다. 현지인들은 아무렇지도 않았는데 말이다. 자유여행 중에 현지 투어에 참여하여 현지인들과 섞여서 여행을 하는 것, 언니들에게는 최초의 경험이었다. 유치원생들이 소풍 가는 것처럼 우리는 들떠있었다.
보트 주인의 이름은 살바라고 했다. 흰 턱수염이 자욱한 인자한 할아버지였다.
로크룸섬은 섬 전체가 유네스코 문화유산이다. 보트는 먼저 로크룸섬을 한 바퀴 둘러보면서 섬의 지형과 역사에 대하여 간단한 설명을 해주었다. 섬의 선착장에 도착한 건 9:30이었다. 살바는 우리에게 두 시간의 여유를 주었다. 내가 두 시간에 섬을 다 둘러볼 수 있냐고 걱정되어 물었더니, 친절한 살바는 "No problem. Enough"라고 자신 있게 말했다.
섬 안에 '사해'라는 호수같이 생긴 바다가 있다고 했다. 날이 너무 더워서 우리는 일단 바다로 갔다. 언니들은 수영은 안 해도 물가에는 가야겠다고 했다. 여름에는 물가가 가장 시원하기 때문이다.
섬에는 공작이 자유로이 돌아다녔다. '사해'는 응달이어서 옷을 벗고 수영복차림으로 앉아 있으니 팔에 오소소 하니 소름이 돋았다. 뜨거운 태양 아래 물놀이를 생각하다 남극에서 펭귄을 만날 만큼 추웠다. 다시 짐을 챙겨 햇빛으로 나왔다.
전혀 알지 못하고 왔는데 섬 안에 베네딕트 수도원이 있었다. 여기가 영국 드라마 '왕좌의 게임'을 촬영했던 곳이라고 한다. 어쩐지 두브로브니크 관광상점에 왕조의 게임의 왕좌 기념품이 줄줄이 걸려 있더라니. 나는 '왕좌의 게임'을 안 보았기 때문에 친숙하지도 않고 소장의 열망도 없었지만, 의자를 찍으려고 줄을 서 있는 키가 큰 서양인들을 보고 군중 심리가 생겨 따라서 줄을 섰다. 우리는 영문도 모르는 의자에 앉아서 왕처럼 사진을 찍었다.
점심을 먹고 다시 보트를 탔다. 두 번째 행선지는 제이콥 해변이란다. 깎아지른 절벽 밑에 해변이 있는 곳이라 보트가 아니면 접근이 어려워 보였다. 살바에게 스노클 장비를 빌렸다. 언니에게 경험하게 해주고 싶었다. 발끝에만 물을 묻힌 작은 언니를 놔두고 큰언니에게 구명조끼와 스노클을 입혔다.
'입수!'
열심히 바다를 보는데 옆에서 파닥거리는 몸짓 소리가 들렸다. 제이콥 해변의 바닷속은 코타키나발루와 달리 바위와 흙뿐이었다. 볼 것이 없기도 해서 스노클을 관두고 몸을 일으켰다. 큰언니가 접시물에 빠져 죽기 직전이었다!
"가시나야, 살려 달라고 그렇게 바둥거렸는데 니는 모른 체 하고 물속만 보고 있대! 나는 이역만리 먼 땅에서 죽는 줄 알았다."
짠물을 두어 모금 삼켜버린 큰언니가 스노클과 구명조끼를 벗으며 울먹거렸다.
"일어나면 엉덩이까지 밖에 안 되는데. 일어나지. 물이 얕아서 나는 신경도 안 썼네."
"구명조끼 때문에 균형을 못 잡아서 못 일어나겠더라. 원래 아는 물에 사람이 빠져 죽는다. 에잇, 죽을 뻔했네."
언니는 이제 다시는 바다에 입수하지는 않을 거라고 다짐하며, '나 살려라~'하며 모래사장으로 기어 나갔다. 우습기도 했지만 미안한 마음이 앞섰다. 하지만 나는 물에서 더 놀았다. 혼자서. 언니들은 해변에 앉아서 '막내가 우리를 죽이려 한다'며 뒷담화를 했다고 전해졌다.
30분 뒤 우리는 다시 보트를 탔다. 인자한 살바는 이번에는 80년대 팝음악을 크게 틀어 주었다. 익숙한 노래가 나오자 한국에서는 얌전한 언니들이 가장 먼저 일어서서 춤을 추었다. 유럽과 중동 친구들은 동양의 작은 언니(?)들이 흥을 즐기는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다가 자기네들도 일어서서 몸을 흐느적흐느적 흔들었다.
낯선 여행지에서는 소심한 사람도 용기 있게 만든다. 무대 체질이 절대 아닌 언니 둘이 나보다 먼저 일어나 춤을 추고 먼저 소리 내어 노래를 따라 부르고 흥을 돋우었다. 유럽인과 중동인들도 언니들을 따라 노래를 허밍 하였다. 흥 있는 자여, 그대 이름은 한국 아줌마!
마지막 행선지인 '베티나 동굴'에 도착하였다. 베티나 동굴도 섬 어느 곳 절벽 밑에 있는 작은 모래사장이 있는 바다다. 여기는 선착장도 없다. 보트에서 다이빙을 하여 자유로이 바다 수영을 하며 노는 곳이다. 보트에서 뛰어내리라는 '친절한 살바' 영감의 말에 우리 세 지매는 기겁을 하였다. 160cm 수영장에서도 발이 안 닿으면 수영을 못 하는데 에메랄드빛 깊은 바다 한가운데서 뛰어내리라니!
우리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우린 그냥 앉아서 구경할게'
친절한 살바 영감은 자기를 믿으라고 인명 구조 경력이 무려 30년이라고 뛰어내리라고 부추겼다. 우리가 썩은 미소를 되돌리고 있을 때, 나머지 9명의 유럽인과 중동인들은 구명조끼를 입지도 않고 너도나도 덤벙덤벙 잘도 바다에 뛰어든다. 자기들끼리 올라왔다가 다이빙을 했다가 수영을 했다가 물장구를 쳤다가, 난리도 아니었다.
동양의 자그만 아줌마 3명만 부러운 듯 그네들이 즐기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왜 우리는 일찍이 수영을 못 배웠는가, 왜 이들은 하나같이 (70 노인부터 10대 소녀까지) 수영을 이리도 잘하는가.
그네들이 바다를 두려워하지 않고 용감하게 뛰어드는 것을 보면서 바다와 구명조끼 없는 수영과 용감함에 대한 문화 차이를 만든 건 무엇인지 잠깐 (아주 잠깐!) 생각을 해보았다.
55유로의 돈을 썼는데 보트에 가만히 앉아서 구경만 하자니 억울한 생각이 들었다. 살바 씨에게 구명조끼를 달라고 말했다. 살바가 반색을 하며 말했다.
"너, 드디어 바다에 뛰어들려는구나! 걱정 마라. 무슨 일 있으면 내가 바로 바다에 뛰어들 테니."
아저씨, 무슨 일 생기면 뛰어든다는 그 말이 더 무섭습니다요.
구명조끼를 입고 보트 난간에 서서 다이빙을 결심하다가 시퍼런 바다가 무서워서 보트에 붙어있는 작은 알루미늄 계단을 짚고 바다에 몸을 담갔다. 언니들이 "우왓~!!!" 하면서 연신 카메라 셔터누르기에 바빴다. 이 순간을 기록해야 된다면서.
마음을 보트를 한 바퀴 돌고 싶었지만 손이 덜덜 떨리고 발이 파르르 떨려서 한 자리에서만 맴을 돌았다. 50대 한국 아줌마는 실내 수영장용 수영만 할 뿐 바다에서는 한국 아줌마의 무대뽀 정신도 소용이 없다. 목숨은 하나뿐이고 소중하니까 너무도 당연한 일일테다.
한 3분 바다에 빠져 있었는데 나는 30분 정도가 흐른 것 같았다. 그래도 뭔가 해낸 것 같은 생각에 혼자 뿌듯했다.
부두로 돌아가는 길, 친절한 살바 영감이 엄지를 척, 하고 들어 올려 주었다. 주저하다가 잠깐이라도 바다에 뛰어든 내가 기특한 모양이었다.
다음에는 내가 구명조끼 없이 바다에 뛰어들어갈 수 있을까?
여행은 부족한 나를 발견하고 새로운 도전을 꿈꾸게 만든다. 내가 맞닥뜨린 새로운 도전에 내가 부딪힐지 한 번의 경험으로 만족할지 아직 나도 잘 모르겠다.
보트 위에 시퍼런 바다를 바라보며 서 있을 때의 그 살떨림이 아직도 생생히 기억이 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