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것들이 요즘 참 이뻐 보인다고 했더니 엄마가 주신 옛날 창문 한 짝과 단지 두 개, 그리고 옛날 접시를 주셨다. 단지 하나에는 늘어짐이 이쁜 슈가바인을 담고 좀 더 큰 단지에는 덩굴과인 시서스를 담아보았다. 단지의 둘레를 타고 내리던 식물의 줄기가 가장 넓은 둘레에 이르러 여백으로 향하는 그 어디쯤의 식물의 선이 고와서 오래도록 바라본다.
슈가바인이 늘어선 가지 끝으로 잎들이 작아지고 작아지고 더 작은 잎으로 끝맺는 듯 보이지만 그 끝에서 나는 가능성을 보고 다시 시작을 본다. 지금 생기는 조그마한 새잎은 점점 커질 것이고 또다시 뻗어낼 것이며 다시 시작점을 만들어낸다. 끝이 시작이 되는 동그라미들이 끝없이 펼쳐지는 식물의 시간들이 내 마음에서 굴러간다.
큰 단지에는 시서스
옛날 창문의 나뭇결이 햇살에 도드라지고 햇살들이 창의 격자 여백 속으로 하나씩 대각선의 집을 짓고 시서스의 초록을 감상하고 있을 때 나도 초록의 시간으로 들어가 보곤 한다. 식물의 시간도 옛 접시나 옛 단지의 시간처럼 세월을 온몸으로 담고 있다.
가끔 큰 나무들을 볼 때면 잎 한 장 한 장이 책처럼 느껴지곤 한다. 수많은 책장들이 바람에 나부끼며 흔들릴 때 그 나무가 지나온 수많은 계절들을 가만히 읽어보는 것이다. 매일 다른 바람의 밀도와 비의 채도와 햇살의 깊이들이 흔들리는 책장 속에 다른 초록의 스펙트럼으로 존재하는 것이다. 초록의 나뭇잎 색깔이 다 다르다면 아마도 각자의 이야기들이 다 다르기 때문일 것이다.
창문 오른쪽으로는 잎 모양이 바라볼수록 어여쁜 히메 몬스테라와 길게 늘어지기 시작한 짙은색의 초코 싱고니움을 놓아본다. 그리고 진한 초록색 문양의 접시가 잎이 되고 꽃처럼 핑크빛 이오난사를 올려보았다. 왼쪽으로는 알로카시아 웬티의 그림 같은 수형으로 여백을 채워본다 창문 위로는 알로카시아 실버드래곤을 놓아보았다.
작아도 잎맥의 도드라진 선명함 때문에 예스러운 분위기에 현대의 세련을 살짝 걸친 듯하다.
옛날 것과 지금의 것이 혼재하는 그림이 너무 좋아 식물의 느린 시간으로 걸어 들어가 세월을 하나하나 세어가며 더 느리게 바라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