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처음 그림에 눈을 뜬 계기는 어느 해 영국 배낭여행 중 런던의 내셔널 갤러리에서부터 시작된다. 나의 전공은 원래 미술사가 아니었다. 나는 사보 편집가였다. 원고를 받아 수정하고 편집하는 것이 나의 일이었다. 주말이면 충무로 근처에서 국문과를 나와 각 회사에서 사보편집을 하던 언니의 친구들과 만나 늘 일 이야기만 하다 술에 취해 집으로 들어올 때면 까치발을 하고는 몰래 방으로 향했던 나의 20대. 어릴 적부터 글쓰기를 좋아했던 나는 그것이 직업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한국을 떠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시 영화 작업으로 인해 영국 런던의 소호에 거주하고 있던 동생의 집에 예고도 없이 배낭을 맨 채로 한국을 떠났다. 그때의 나는 간단한 영어만을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바디 랭귀지가 있지 않은가? 나는 원래 모험심과 독립심이 강한 성격이라서인지 낯선 곳에 가는 것에 매우 흥미를 느낀다. 그래서 여행을 아주 좋아한다. 그러나 타지에서 만난 낯선 사람에게는 무한한 경계를 보이는 편이다. 나의 안전을 위해서, 우리 가족들의 행복을 위해. 그렇게 떠난 영국 여행은 나의 운명을 바꾸어 놓았다.
영국의 언더그라운드는 정말 최악이다. 그러나 뉴욕의 서브웨이에 비하지는 못한다. 비좁고 오래된 계단, 나무 에스컬레이터, 워털루 역이나 큰 언더그라운드는 비교적 깨끗한 시설을 갖추고 있었다. 그래도 한국의 지하철에 비교할 수 없다. Anyway , 찰링크로스역인가 - 지금은 기억이 가물하다.- 에서 내려 조금만 올라가면 바로 내셔널 갤러리가 자리하고 있다. 미술관의 주변은 각국의 대사관들이 자리하고 있어 매우 안전한 지역이다. 하지만 어느 날 나의 가방을 노리던 어떤 이가 계속 따라오던 중 다행히 아는 사람을 길에서 만나 위기에서 벗어난 적도 있었다. 내셔널 갤러리는 각 시대별로 전시장이 나뉘어 있고, 전시된 그림의 양은 셀 수 없을 정도이며 그 크기 또한 어마어마하다. 나는 먼저 가장 접하기 쉬운 인상파 전시실로 들어섰다. 왜냐면 당시 내가 유일하게 아는 화가들은 주로 인상파 화가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곳은 나와 같은 마음의 전 세계 관람객들로 가득했다. 아~~ 반 고흐를 못 보다니!!! 나는 실망한 채 일단 인상파 전시실은 미술관 문이 닫기 직전에 보기로 결정했었다. 그리고 내 발걸음이 어쩌다가 그 전시실로 향했는지는 지금도 기억이 나질 않는다. 무엇인가에 끌리듯 나도 모르게 들어 선 전시장. 그곳은 바로 피렌체를 배경으로 '베두타(Veduta) 그림-18C 유럽에서는 로마와 이태리, 피렌체, 베네치아 등지를 관광하거나 공부하고 오는 것이 상류층에서 유행하였다. 이때 지금의 그림엽서 처럼 그림을 기념으로 사 본국으로 가져가 자신의 집 거실에 걸어 놓고 자신들의 위시를 자랑하기 위해 그렸던 그림을 일컫는다.-' 을 그렸던 '18세기 베네치아 그림의 방'이었다. 나는 그곳에서 '카날레토'의 자로 잰듯한 커다란 벽을 가득 채운 크기의 사실적 그림에 압도되어 있었다. 그런데 '카날레토'의 그림 옆에 아주 작은 액자가 눈에 띄었다. 이내 나는 호기심에 발길을 옮겼다. 그 그림이 지금의 나를 있게 해 준 나의 그림 '프렌체스코 과르디(Francesco Lazzaro Guard. 1712-1793)의 <석호의 곤돌라1765>이다. 그 그림을 마주하는 순간 정신을 잃은 듯 아득해지면서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 눈물은 멈추지 않는 샘과 같았다. 그렇게 한참을 멍하니 서 있자 미술관 가드가 나에게 다가와 무슨 일이냐며 물었다. 나는 그냥 눈물이 왜 흐르는지 모르겠다고 그에게 말했고, 그는 나의 어깨를 두 번 두들겨 주고는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 앉았다. 그림을 봤는데 내가 눈물을 흘리다니 너무도 생경한 경험이었다. 그리고 나의 몸과 정신은 마치 유체이탈을 경험한 듯 했다. 그 어리둥절함을 안고 집으로 돌아와 동생에게 '과르디'의 그림에 관해 이야기를 했다. 그 날 저녁 우리는 그림 이야기로 시간이 흐르는 것을 잊을 만큼 열정적으로 토론하였다. 내가 낯선 곳에서 마음 편히 여행을 할 수 있었던 것도 당시 런던에 동생이 살고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 아니었던가? 지금도 나는 그녀에게 고마움을 느낀다. 다음 날 나는 그 생경한 경험이 주었던 근본을 찾기 위함과 '과르디'의 그림이 그리워 다시 내셔널 갤러리를 찾았다. '과르디'가 있는 전시실로 다시 두근거리는 심장을 진정시키며 발걸음을 급히 향했다. 어제 나의 어깨를 두 번 두드려 주었던 그 가드는 다음 날도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 나와 눈이 마주친 그는 나에게 손을 올리고는 눈인사를 건네며 다가왔다. "나는 네가 여기 다시 올 거라는 걸 알고 있었어. 마음 편히 그림을 보고 가도록 해"라며 친절히 말을 건네주었다. 그리고 간략한 설명까지 더불어 해 주었었다. 아마도 내가 그림에서 느꼈던 '그림의 힘'을 그도 느꼈는지 모르겠다. 그렇게 몇 시간을 그 자리에 서서 '과르디'의 그림을 바라보았다.
<석호의 곤돌라/프란체스코 과르디/32x42cm/ oil on cavas/1765년경>
이후 나는 그림이란 것이 인간에게 어떠한 심리적 작용을 하는지가 궁금해졌다. 그리고 그림의 본질에 대한 의구심이 들었다. 이러한 의구심을 품으며 여행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오는 길, 나의 가방은 미술 관련 서적으로 꽉 차있었고 마크 로스코와 인상파 작가들의 그림 몇 장을 손에 들고 있었다. 그림들은 내셔널 갤러리에서 직접 인쇄를 해준다. 햇빛에서도 100년이 간다고 그들은 자랑하듯 말하였다. 시중에 인쇄되어 소비되는 그림들은 아무리 좋은 액자에 넣어도 본래의 색을 흉내 낸 것이기에 그림이 쉽게 질릴 염려가 있다. 그러나 원본과 같이 직접 프린트 한 그림은 지금 나의 집 곳곳에 걸려 있다. 아주 비싼 가격의 액자 옷을 입은 채로 말이다. 나는 지금도 그 그림들을 보며 그 때의 감흥을 잃지 않으려 노력하고 있다. 한국으로 돌아온 후 다른 생각보다 그림에 관한 서적과 관련 자료들을 더 많이 찾아보았다. 그리고 새로운 인생을 살기로 결정했다. 이후 국내의 미술계 유수한 두 군데의 대학원 합격. 생각하지 못했던 결과였다. 이후 가장 안정되게 공부할 수 있는 학교를 선택했고, 그곳에서 서양과 동양 미술사를 공부하게 되었다. 그때의 힘들고 긴 시간의 터널을 내가 어떻게 빠져나왔을까? 지금 생각하면 마냥 아득하다. 아마도 그림이 나의 인생에 있어 그만큼의 열정과 가치가 있다고 당시에는 판단되었기 때문에 선택한 길이었을 것이다. 나는 수업시간이 늘 기다려졌고, 심지어는 시험기간까지도 기다려질 정도로 그림이 좋았다. 그리고 마지막 종합시험도 모두 한 번에 통과할 만큼 열심히 공부하였다. 이후 나만의 새로운 인생을 살게 되었다. 그날 만약 '인상파 전시실'에 사람들이 가득하지 않았다면 그리고 나의 발길이 '과르디'에게 향하지 않았다면 지금의 나는 없을 것이다.
<The Molo And The Riva Degli Schiavoni From The Bacino Di San Marco/1760-65/
122x152.5cm/oil on canvas/Metropolitan Museum of Art >
현재 런던에서 한국 현대 미술가들의 그림을 소개하고 있는 아트딜러이자 아트 디렉터인 최선희의 저서 <런던미술수업/2008/아트북스>속에는 그녀도 나와 같이 '과르디'를 만난 후 그림을 뒤늦게 공부한 내용이 나온다. 나는 지금도 '과르디'가 왜 그토록 나에게 많은 눈물을 흘리게 하였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그것이 바로 그림이 가지고 있는 힘이라는 사실만은 분명 알고 있을 뿐이다. 지금 돌아보면 불교경전의 '시절인연時節因緣'이란 말이 이런 것이 아닐까 싶다. 그림과 나는 그 시절 만나야 하는 필연이었던 것이다. 무작정 겁 없이 떠난 그곳에서 그림을 만난 후 나는 지금까지 그림과 사랑을 나누고 있다. 그리고 그 선택을 후회하지 않는다. 앞으로도 나는 그림을 공부할 것이고 더욱 사랑할 것이다. 나의 인생을 한 순간에 바꾸어 버린 그림, 그 그림과 나는 필연적 만남의 운명이 있었던 듯 싶다. 그러나 그림과의 인연이 언제까지 이어질지는 모르는 일이다. 어느 순간 또 다른 인연이 내게로 다가올지 모르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앞으로도 그림을 사랑할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변화의 계기가 되는 순간이 있다. 그 찰나의 순간이 나에게 어떤 의미인지를 어떻게 느끼고 깨달아 판단하느냐에 따라 자신의 인생이 순식간에 변하기도 한다. 우리는 늘 선택이라는 상황을 불가피하게 직면하며 살고 있다. 선택이라는 것은 자신의 신념을 믿는 일이다. 그러므로 자신을 더 공고히 만들어 나에게 다가오는 그 찰나의 순간을 현명하게 판단하는 힘을 길러야 하리라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