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엔 단순한 몸살이라고 생각했다. 그냥 으슬거리고 춥고 온 몸에 기운이 없었을 뿐 다른 증상은 나타나지 않아서이다. 그런데 이틀, 삼일이 지나자 목이 부어오르며 숨이 가빠오기 시작했다. 안되겠다는 생각에 오늘은 병원을 다녀왔다 내일 다시 오란다. 아무래도 나도 나이를 먹는가 보다 한 겨울 반팔 차림의 내가 감기를 이렇게 오래 끌고 있는 것을 보니.
한 동안 바깥출입을 하지 않았다. 바깥나들이를 즐기지 않는 나의 성격 탓도 있지만, 더운 여름의 그 끈끈함이 나의 숨통을 조이는듯해서였다. 인터넷으로 장을 보고, 물건을 사고 아무런 불편이 없었다 적어도 나에게는. 그런데 어느 날 문득 내가 집에만 있는 것이었다. 습관이란 것이 참으로 무섭다. 나의 바깥 나들이 중지 덕에 애지중지하던 우리 애기 감자와 쿠키가 산책을 하지 못한 사실을 어제야 깨달았다. 아~~ 너무 미안했다. 어쩐지 나의 개냥이 감자(몰티즈)가 거실 바닥에 오줌을 깔기는 것을 보고 이상하다 생각했다. 서울에서 집으로, 집에서 서울로 그것이 나의 동선 전부였었으니. 우리 아기들의 동선은 나와 같았다. 바깥나들이가 겨우 집을 나와 땅 한번 밟지 못하고 차에 올라 영문도 모른 체 그냥 서울로 향한 것이 전부였다. 나는 너무 이기적이고 나쁜 보호자였다. 내 감정을 돌보느라 정작 아기들은 돌보지도 못했으니. 우리 아기들은 서울에서는 집으로 가지 못한 체 늘 호텔 신세를 진다. 쿠키가 아들 녀석을 자꾸 깨물고 짖어대는 통에 한 공간에 있기가 매우 곤란한 상태이다. 쿠키(미니어처 슈나우져)는 훈련지도로도 고칠 수 없다는 미국으로 보낸 심리 상담지에 대한 답이 나왔다. 그래서 지금은 신경 안정제를 복용하고 있으니 곧 좋아지리라. 사람이나 동물이나 사람이 무섭고 마음이 아픈 것은 매한가지인가 보다 그저 쿠키는 말을 하지 못했을 뿐. 도대체 저 이쁜 생명에게 전 주인은 무슨 짓을 한 것인지? 그래도 쿠키의 아픔을 내가 알아차려서 참으로 다행이다.
나는 아기들을 데리고 산책을 나서기로 결심했다. 집에서부터 차로 오분 거리. 여름이 떨어지는 흔적이 있는 그곳은 지금 고개 숙인 해바라기가 가득하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쿠키는 오줌을 갈기며 자신의 흔적을 남긴다. 그리고 실외 배변까지 간만의 산책이 어지간히도 좋았나 보다. 나는 아기들에 대한 조금의 죄책감을 덜어낼 수 있었다. 아기들과 걷다 보니 누군가 나를 보며 활짝 웃고 있었다. 나는 다시 고개를 들어 자세히 앞을 보았다. 그곳에는 계절을 이기지 못한 체 꽃잎과 씨가 떨어져 나가고 있는 해바라기가 나를 향해 활짝 웃어주고 있었다. 이제 여름이 지나 세상을 떠나야 할 해바라기가 나를 보고 웃어주고 있는 모습은 마치 오즈의 마법사에 나오는 허수아비 인형과 같은 모습이었다. "저는 이제 빈껍데기가 되어 곧 떠나요. 내년 여름에 우리 다시 만날 수 있을까요?"하고 나에게 해바라기가 말을 거는 순간 이런 생각이 스쳤다. 나는 어떤 경우라도 저렇게 웃으며 삶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하는. 늘 한결같지만은 않은 것이 인간의 감정이다. 늘 출렁이지만 그것을 붙들고 산다는 것이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나의 감정을 붙들고 산다는 것은 때론 나를 드러내지 않는 것이다. 우리 사회는 자신을 드러내는 것을 매우 불편히 여기는 경향이 있다. 때론 자신을 숙이고 살아가야 할 때도 있지만,타인의 시선으로 인해 자신의 색깔 즉 인간 고유의 개성을 일반화 할 필요는 없다고 나는 생각한다. 나는 나로 살아가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기 때문이다. 여름이 떨어지고 있는 이 순간, 잠깐의 산책 속에서 또 하나의 생각을 거둔 채 환히 웃는 해바라기처럼 아름답고 처절한 자연의 그림을 뒤로하고 우리는 집으로 돌아왔다. 짧은 산책의 시간이었지만, 감자와 쿠키 그리고 나까지 행복한 시간이었다. 그래, 살아있는 생물은 시원한 공기를 마셔줘야 하는 거야. 그렇지 감자야 쿠키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