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서울에 살고 있던 동네에는 프랜차이즈 상가가 그다지 없다. 지금도 그 유명한 별다방 그리고 분식집 정도가 전부일 듯 싶다. 동네가 거기서 거기. 그래서인지 서울임에도 불구하고 동네 단골집의 풍경은 나의 어린 시절과 많이 닮아 있었다. 국립중앙박물관이 앞에 자리한 그 동네의 카페에서 우연히 알게된 20대 후반의 여성 있었다. 그녀는 대학을 졸업 후 특별한 직업 없이 무슨 이유인지 늘 한가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렇다고 자기 계발을 한다거나 특별히 운동을 하는 것도 아니다. 그러한 그녀에게는 매우 독특한 취미?가 하나 있었다. 그것은 바로 미술 관련 서적을 장소 불문하고 늘 지니고 다닌다는 것이다. 사람이 많이 모이는 장소 즉 카페나 공공장소 등에서 미술 관련 서적을 펴 놓고, 뜨거운 커피를 홀짝이며 아주 깊이 있는 모습으로 책을 읽거나 그림을 바라보기도 하였다. 그녀는 마치 의도적으로 겉표지가 밖으로 보이도록 위치를 선정하고, 아주 두꺼운 책을 주로 들고 다니는 재미있는(?) 행동을 취하곤 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그녀가 하필이면 공공장소에서 그 두꺼운 미술 관련 서적과 작가의 작품집을 펴 놓은 이유를 알게 되었다. "미술사가 그렇게 재밌어요? 아니면 그림을 많이 좋아하나봐요?"라고 그녀에게 슬쩍 물어보았다. 그러자 그녀는 "선생님, 제가 이렇게 미술책 그러니까 그림을 보고 있으면 내가 남들에게 조금 더 지적인 사람으로 보이지 않을까요? 아니, 그러니까 좀 있어 보이지 않아요? 저는 그래서 미술사 책을 늘 펴 놓고 있어요. 의사나 변호사와 같이 좋은 직업을 가진 남자와 결혼하고 싶어서요." 이 무슨 소리인가? 그녀의 대답에 그저 할 말을 잃고 말았다. 그제야 나는 그녀가 자신이 들고 다니는 그림 관련 서적을 단 한 장도 읽지 않았다는 사실까지 알아버리고 말았다. 그녀는 그림을 보고 , 느끼고, 좋아한다는 행위는 특정 계층의 전유물이라는 관념에 사로 잡혀 있었던 것이다. 또한 그러한 행위를 함으로써 자기과시를 통해 사회에서 흔히 말하는 좋은 직업을 가진 사람을 만나 자신의 위치를 상승시키려는 신데렐라 효과를 꿈꾸는 도구로 밖에 그림을 생각하지 않았던 것이다. 과연 그림을 보고 이해하는 행위는 지적인 행위로만 볼 수 있을까? 그렇다면 그림은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며, 우리는 누구를 위해 그림을 바라보고 느끼는 걸까?
<대운하에서 펼쳐지는 레가타 /Canaletto/117x180cm//1730/ oil on canvas/런던내셔널갤러리>
베두타(Veduta)그림은 18C 베네치아나 로마 일대의 풍경을 그린 풍경화를 일컫는 말이다. 베두타란 원래 경치 또는 풍경이란 뜻의 이탈리아 말로, 도시 풍경을 상세하게 묘사하는 그림을 총칭하는 단어이다. 18C 유럽은 해양교역과 무역이 성행하기 시작하였으며, 자신들의 패권을 차지하기 위해 분주했던 시기이다. 이 당시 유럽의 왕족과 귀족들 사이에서는 로마나 이태리 등지로 유학을 떠나거나, 여행을 다녀오는 것이 하나의 관습처럼 유행하였다. 그들은 공부나 여행을 마칠 때면 베두타 그림과 같은 기념품을 사서 고국으로 돌아갔다.( 지금의 기념엽서와 같은 방식이다.) 그리고 고국의 저택 정중앙이나 벽면에 걸어놓고 자신들의 위세를 폼 내기 위해 그려진 그림이라고 이해하면 될 것이다. 베두타 그림의 대표적 화가는 '카날레토(Canaletto1697-1768)이다. 그의 본명은 Giovanni Antonio canel 이다. 지오반니의 작가 명인 '카날레토'란 '작은 운하'를 일컫는 단어이다. '카날레토'는 사실적인 그림을 주로 그렸다. 그는 자연을 그대로 모방하는 아주 단순한 작업으로 눈에 보이는 것을 그대로 캔버스에 실사하는 작업을 선호했다. '카날레토'의 작품 대부분은 화려한 축제, 건축물, 운하 등 베네치아의 모습을 사진처럼 세밀하게 묘사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건물과 건물 사이를 가로지르는 원근법은 마치 자로 잰 듯한 느낌을 심어주며, 바닷 물의 찰랑거림과 미세한 물결의 흔들림에 대한 표현 또한 계산적으로 그린 흔적들이 보인다. '카날레토'의 그림은 카메라 옵스큐라를 이용하여 제작하였기 때문에 가까운 곳과 먼 곳의 차이를 분명히 느낄 수 있다. 즉 원근법을 정확하게 사용한 것이다. 그래서인지 그의 그림은 자연스러움과는 거리가 있다. 그림 속에 등장하는 인물과 사물들은 너무도 정확히 표현되어 있어 마치 실사의 사진을 마주하는 것과 다를 바 없이 사실적으로 기록? 하였다고 표현하여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래서 그의 그림은 항상 정확성으로 유명하다. 이러한 '카날레토'는 베두타 회화를 체계적으로 정리하였으며, 그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한 화가이다. 또한 나의 그림인 <석호의 곤돌라1765>를 그렸던 '프란체스코 과르디'의 스승이기도 하다.
<석호의 곤돌라/프란체스코 과르디/32x42cm/ oil on cavas/1765년경/런던내셔널갤러리>
해가 지는 석양. 그 석양이 비추는 바다. 그 위에 곤돌라 한 척이 떠 있다. 지금 우리에겐 이것만으로 낭만적이지 않은가? 그러나 지금 뱃사공은 우리가 알 수 없는 목적지를 향해 노를 젓고 있다. 그는 지금 막 일을 마치고 안온한 집으로 돌아가는 길인지 아니면 이제 막 밤 일거리를 위해 집에서 나오는 길인지 알 수는 없다. 다만 그에게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목적지가 있다는것이다. 당시의 해상교통 수단은 곤돌라였다. 지금은 관광체험산업으로 주로 남아 있으나 당시 사람들에게 곤돌라는 매우 주요한 이동수단이었다. 이탈리아 화가인 '프란체스코 과르디'의 <석호의 곤돌라1765>는 석양에 비친 바다는 사막과 같이 넓고도 황량한 외로움과 바람 한 점 없는 호수처럼 조용한 그 잔잔함이 공존하고 있다. 마치 우리의 삶을 되돌아보아야 한다는 듯 사색이란 단어가 떠오를 할 만큼 석양의 바다는 아름답고 고요하기 그지없다. 그러나 뱃사공의 어깨에는 잔뜩 힘이 들어가 있다. 그는 고된 노동이라는 산물에 짓눌린 팔놀림을 하며 마치 바다와 하나가 된 듯 육지와는 아주 멀리 떨어져 있는 모습이다. 또한 운하와 건물 풍경 그리고 대기의 미묘한 움직임을 인상적으로 포착하여 시각을 자극하는 시적인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그림을 가만히 조심히 오랫동안 바라보면 한 없이 그림에 빠져든다. 마치 나의 옷이 저 바닷물에 촉촉이 젖은 듯 말이다. 어찌 보면 하늘의 지는 저 석양은 한낮의 찬란했던 태양이 이제 막 지려는 찰나를 통해 우리의 인생을 은유적으로 표현하지 않았나 싶다. 누구에게나 한낮의 찬란한 태양과 같이 뜨거웠던 청춘은 존재한다. 그러나 청춘이라는 시간을 보낸 후 세월이 흘러 삶을 겸허히 받아들이는 로맨스그레이의 모습을 과르디는 석양으로 표현한 것은 아닐까?지는 태양은 한낮의 태양보다 더 뜨겁고 황홀할 수밖에 없다. 그것은 분명 세월의 더께가 쌓여 겸손과 미덕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알기 때문일 것이다. 베두타 그림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 하나는, 자연을 모방하여 실제를 그대로 캔버스에 사진과 같이 옮기는 기법과 또 하나는, 풍경과 실사는 그대로 두되 작가의 관념과 상상을 화폭에 함께 표현하는 기법이 있다. 카날레토는 전자에 해당될 것이고, 과르디는 후자에 해당된다. 과르디는 저녁 안개에 싸인 하늘과 물에 비친 빛의 굴절로 베네치아의 바다를 깊이 있게 표현하였다. 이는 아마도 카날레토와 다르게 카메라 옵스큐라를 사용하지 않고 자신의 눈과 마음으로 본 것을 표현한 결과라고 볼 수 있겠다. 그래서 자신이 직접 본 것과 그 본 것을 자신만의 상상과 덧붙여 내면화하여 사고를 다지는 것에는 많은 차이가 있다는 것을 우리는 그림을 통해 느낄 수 있다.
한 점의 그림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실제 많은 사항들을 알아야 한다. 그림이 제작되던 당시의 정치, 경제, 철학, 교육, 사회상과 생활상 등을 바탕으로 화가가 왜 그러한 그림을 그렸으며, 그러한 필치를 사용했는지 그리고 그 안에 화가가 어떤 방식으로 그 의미를 담아두었는지에 대해 이해하는 행위에 아주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이다. 이는 그림 속에 당시의 철학과 생활상 등이 고스란히 녹아 있기 때문에 그 속에 숨겨진 많은 이야기를 꺼내어 풀어놓기 위해서는 필수 불가결한 사항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그림은 꼭 해석을 요구하지는 않는다. 그저 보는 대로 그저 느끼는 대로 저 마다 가슴에 담으면 된다는 것이 나의 그림론이다. 그림은 특정한 사람들을 위한 도구가 아니다. 그림은 인간이 자신이 보고 느낀 것을 그린다는 행위를 통해 표현해 놓은 표현물일 뿐이다. 이러한 타인의 표현물을 우리는 겸허히 그리고 편견 없는 시선으로 마주하며 그것을 이해하고 난 후 타인의 사상과 철학을 자신의 것으로 내면화하는 작업이 바로 그림을 바라보는 이가 갖춰야 할 자세라 말할 수 있다. 나는 서울을 완전히 떠난 지 수개월이 흘렀다. 한 달에 서너 번 서울 집에 들르곤 하지만 지금은 자주 가던 그 카페에 가지 않는다. 서울 집에 도착할 때면 미술 관련 서적을 펼쳐 놓던 그녀는 아직도 같은 행위를 반복하고 있는지 가끔 궁금하다. 그녀가 만일 지금도 미술 관련 서적을 펼쳐 놓고 있다면, 이제 그 두꺼운 책을 들고 다니는 수고를 덜 겸 책을 접은 후 주어진 인생에 적극적으로 뛰어들어 자신의 청춘을 향해 정면으로 마주치며 담금질하라고 말해 주고 싶다. 그래야 훗날 석양의 찬란함이 무엇인지 스스로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카메라 옵스큐라(Camera obscura)란?
‘어두운 방’이라는 뜻의 라틴어에 어원을 두고 있는 용어로써,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사진 촬영 기계인 ‘카메라’의 어원이기도 하다. 카메라 옵스큐라는 어두운 방이나 상자 한쪽 면에 있는 작은 구멍을 통해 빛을 통과시키면, 반대쪽 벽면에 외부의 풍경이나 형태가 거꾸로 투사되어 나타나는 현상을 기계장치로 만든 것으로서, 인류 역사에서 아주 오랫동안 관찰되고 연구되어 왔다.
<The Science Time 2019. 9.27.참조>
감기 몸살이 벌써 열흘이 다 되어간다. 어제 밤 응급실에 다녀왔더니 지금 나의 왼팔에는 시퍼런 멍자국이 주먹만하게 들어 있다. 어찌나 링거 바늘 꼽았다 뺐다를 반복하던지. 약기운과 무거운 몸으로 글을 썼다. 아픔을 잊기 위해서. 그래서인지 문장과 문맥에 이상함을 느끼며 발행하게 된다는 사실을 독자들에게 알린다. 부디 넓은 아량으로 이해해 주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