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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상준 Oct 11. 2023

2화. 툭툭이를 타고 호텔로 가다

 늦게 도착한 호텔이었지만 몇 시간이라도 눈을 붙이고 샤워까지 하고 나니 정신이 맑아진다. 작은 호텔이지만 수영장까지 있어 아담하고 예쁘다. 그러고 보니 생각이 난다. 금년 봄에 딸이 있는 캄보디아 씨엠립에 간 적이 있다. 딸아이가 있는 곳이 하얏트 호텔이라 제법 특별 대우를 받고 지냈는데 별관에 있는 스위트 룸에 묵었다. 출입구 문을 열고 들어가면 작지만 아담한 수영장이 있고 수영장을 지나  방으로 들어가는 구조이다. 아침에 일어나서 방문을 열고 나가본다. 주변에 선베드가 있기에 그 위에 비스듬히 몸을 누인 채 눈을 감아본다. 눈을 감은 얼굴 위로 따사로운 아침 햇살이 내려앉는다. 눈이 부시기에 옆의 탁자 위에 놓인 선글라스를 껴본다. 순간, 나는 마치 영화 속의 주인공이 된 듯 입가에는 미소가 저절로 번져간다. 잠깐의 행복감도 행복이리라.

여기 호텔을 예약할 때 조식을 포함시킨 탓에 아침을 먹으러 식당으로 갔다. 작은 식당이지만 내부가 예쁘게 꾸며져 있다. 창 너머로 수영장을 무심한 표정으로 쳐다보며 그렇게 잠시 회상에 잠겨본다.


 잠시 머물다 갈 호텔이라 짐을 풀지 않았기에 곧바로 짐을 챙겨 방을 나온다. 캐리어나 배낭들은 카운터에 맡기고 잠깐이라도 주변 산책을 해 보기로 한다. 도심에 가까운 아리역 부근인지 아침부터 사람들이 분주하게 움직인다. 여긴 사람이 다니는 인도가 너무 좁다. 그 좁은 인도에 노점들이 진을 치고 장사 준비에 한창이다. 자신들의 삶을 지탱해 줄 버팀목이다. 그러고 보니 한국이나 태국이나 노점들은 다 비슷비슷하다. 아니, 누가 가르쳐주거나 기술과 장비를 수출하지도 않았는데, 한 평의 땅과 그 위에 지은 집과 주방시설 모두가 동일하다. 인류문명의 발상지가 황하 문명과 인더스 문영, 메소포타미아와 마야 문영의 4대 발상지가 아니던가. 동서로 나뉜 세계에서 숱한 세월을 이어져 온 인간 문명의 흐름은 그 시기와 발전이 거의 비슷하다. 인간의 두뇌로서만 이루어졌다고 말할 수 없는 그 무엇이 있는 게 아닐까.


 여기는 BTS라는 지상철이 다닌다. 그래서 육교로 올라가 사방을 둘러보며 방콕에 온 것을 실감해 본다. 사람이 사는 세상이다. 다 똑같은 생명이 살아 움직이는 그런 세상이다. 그런데 왜 인간은 서로 헐뜯고 싸우고 죽이고 할까. 그냥 최소한의 단위인 내 가족들과 편안하고 행복하게 살아가면 평화로울텐데. 내가 알 수 없는 신의 섭리, 아니 자연의 법칙이 여기에도 있는 걸까.  나이를 먹을수록 더 느끼는 감정이다. 

저 밑에 세븐 일레븐 간판이 있는 편의점이 보인다. 얼른 내려가 편의점에 들러 먼저 폰 유심을 바꿔 끼운다.

어차피 외국에선 통화할 필요가 없다고, 폰 하나면 된다고 옆에서 우기는 바람에 내 폰에만 심을 갈아 끼웠다.

가정을 지키려는 그 알뜰함에 말없이 편의점 여직원의 손놀림만 물끄러미 쳐다본다. 여자의 마음은 다 그렇겠지 하고 그냥 고개만 끄덕인다.

이제 다시 이동이다. 떠날려니 그래도 조금은 아쉬움이 남아 수영장을 배경으로 사진 몇 컷을 찍고선 씩씩하게 캐리어를 끌고 나간다. 버스 정류장이 육교 밑에 있기에 버스를 타기로 하고선 좁은 인도와 골목을 이리저리 비집고 빠져나간다.


  몇십 년 전 학창 시절의 통학할 때가 그립게도 자꾸 생각이 난다. 책과 문제집으로 무거운 책가방을 들고 꽉 찬 사람들 속에서 움직이지도 못하고 가는 대로 몸을 맡기고 있던 버스. 그 버스에 안내양은 계속 사람을 더 쑤셔 넣으며 자기는 곡예사라도 된 듯 매달려 가던 그 버스.

그런데 방콕의 버스가 그렇다. 에어컨이 있는 버스도 있지만 없는 낡은 버스가 더 많다. 적어도 우리가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지나간 버스를 훑어봤을 땐 그렇다. 버스를 타자 버스 안에 여자 안내원이 와서 돈을 받고 표를 준다. 한 사람에 8밧(약 320원), 두 사람 요금은 16밧이라고 한다. 20밧 지폐를 주니 동전까지 손에 쥐어준다. 승차표가 말려 있는 긴 통을 들고 다니며 손님 앞에서 돈을 받고 끊어준다. 

옛날, 그 옛날 안내양이 있던 낡은 버스가 생각이 나는 이유이다. 그러나 여기 안내원은 모두 나이가 많은 여자들이다. 물론 나이 든 남자도 간혹 있다.


 차창 밖으로 신나게 구경하는데 안내원이 내리라고 한다. 탈 때 내릴 곳을 말했더니 고맙게도 잊지 않고 얘기를 해준다. "코쿤캅, 코쿤카" 하고 책에서 보고 외었던 태국어 감사 인사를 하고선 짐을 들고 내린다. 이제 목적지로 캐리어를 끌고 가기만 하면 되리라. 정말 알뜰하게 잘 왔구나 하며 웃음 띤 얼굴로 우린 사방을 둘러본다. 이제부턴 나는 일이 없다. 짐만 메고 끌기만 하면 된다. 내가 건네준 폰을 들여다보며 구글맵으로 열심히 길을 찾아간다. 그런데 횡단로 앞에서 갑자기 폰을 이리저리 돌리며 고개를 들어 여기저기 쳐다본다. 

나는 사소한 부분은 신경을 쓰지 않는 성격이라 앱을 비롯한 여러 가지 기능들은 잘 모른다. 귀찮아 들여다보기도 싫다. 배낭을 멘 채 양손으론 캐리어를 끌며 몇 걸음 뒤에서 묵묵히 따라만 가면 된다. 그렇게 앞장서 잘 가던 사람이 멈추고선 한참을 들여다보며 갈팡질팡 한다. 그러더니 다시 자신 있게 길을 건넌다. 역시 나보다 낫구나. 나도 손에 힘을 주고 횡단로 길을 재빨리 건너 잠시 숨을 고른다.


 뒤에서 따라가며 보니 뭔가 좀 이상한 것 같다. 개천인지 강인지 모르겠지만 흐르고 있는 육교 밑으로 난 길을 내려가기 시작한다. 그런데 길이 자꾸 점점 좁아지더니 앞에 낡은 화장실 간판이 붙은 곳에서 끊긴다.

아뿔싸! 뭔가 일이 잘못된 것 같아 등골이 오싹해진다. 나는 우뚝 서서 쳐다만 보는데 앞에서 이리저리 없는 길을 찾더니 또 계속 걸어간다. 할 수 없이 개입을 해야겠다고 판단하고선 소리쳐 멈춰 세운다. 이때부터 또 공항의 일이 똑같이 발생하기 시작한다. 오싹한 느낌이 드는 이유이다.


사람을 붙잡고 묻기 시작하는데 서로 말이 안 통하니 보디랭귀지까지 동원한다. 그리곤 여기로 갔다 다시 돌아와 저기로 갔다 다시 원위치로 돌아오기를 여러 번. 등에는 땀이 나고 목은 마르고 양손에 힘은 빠지고 다리는 무거워진다. 화가 나지만 내 폰으로 그랩을 깔 수가 없다. 살림은 내 소관이 아니라서 은행과 카드는 내 폰에 연결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심 끼울 때 같이 끼우라고 했잖아!" 이제 와서 소리쳐 봐야 소용없는 일. 지금은 나이 먹은 머리지만 이 머리를 빨리 회전시키는 일이 더 중요하다.

그때 구글 번역이 번쩍 떠오른다. 재빨리 번역키를 작동시킨다. 다급한 몇 마디를 넣고 번역된 영어를 외우며 저 앞에 보이는 가게로 걸음을 재촉한다. 급한 마음에 주인한테 떠드니 주인은 영어를 모른다. 가만히 있다. 그러더니 내 다급한 모습을 보고 젊은 직원을 데려온다. 그 직원은 듣고 보고 하더니 갑자기 툭툭이 기사한테 전화를 한다. 그게 제일 빠른 길이라고. 여기서는 멀기에 짐을 메고 끌고 가기엔 힘들다고 손을 내젓는다.

내가 구글번역의 힘을 실감한 순간이었다. 결국 툭툭이가 도착했고 우리는 가야 할 호텔의 주소를 보여줬다. 기사는 바로 안다고 하며 짐을 실어준다. 결국 버스요금의 몇 배 값인 100밧을 주고 위기의 현장을 벗어났다. 그 가게의 주인과 젊은 직원한테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숲 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다고

  나는 사람이 적게 간 길을 택하였다고

  그리고 그것 때문에

  모든 것이 달라졌다고

                          - 프루스트, 가지 않은 길 -


툭툭이를 타고 가면서 끝 구절의 이 시를 몇 번이나 읊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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