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악마가 누군가에겐 천사일 때

너 어떻게 선량한 어른으로 자랐니?

by 고니크

왕따 가해자가 유기견 봉사를 다닌다. 담배를 피우고 돈을 빼았던 아이가 유치원 선생님이 되었다. 나는 A의 괴롭힘으로 인한 스트레스로 원인 모를 어지럼증을 겪으며 일주일을 누워있었는데, A는 최고의 예술가 소리를 듣는다. 부드러운 카리스마라나. 뭐가 부드럽다는 거야, 뇌가? 너무 부드러워서 물러터졌을 것 같은데.


나의 악마가 누군가에게는 천사일 수가 있다니.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하지만 세상이 나보고 '말이 돼'라고 하니 나로선 고개를 끄덕 거릴 수밖에 없다. '인간은 입체적이다', '모든 사람에겐 다면적인 부분이 있다'는 말을 알고 있는 것과 그걸 실제로 목격하는 건 너무 다른 차원의 이야기 같다. 내가 그 사람때문에 흘린 눈물이 있는데, 복수를 다짐하며 이를 악문 순간들이 있는데, 그때 너무 악 물어서 여전히 잇몸이 흔들린다고!


불렀는데 대답을 안 했다는 이유로 주먹으로 내 뺨을 풀스윙 날렸던 여고 M 선생님. 내가 못 들었다고 하자. 내 목을 졸랐다. M의 근황을 찾아본다. 스승의 날에 학생들에게 꽃과 선물, 편지를 받고 감동의 눈물을 흘리고 있다. 플랜카드에는 최고의 선생님이라는 문구가 적혀있다. 최고의 선생님? 최고로 주먹 잘 날리는 선생님이겠지, 개소리야.


한번 악마면 끝까지 악마여야지 어떻게 이럴 수가 있을까. 나는 배신감을 느낀다. 이건 배신이야. 영원히 나쁜 사람으로 남아서 내가 나중에 복수하러 갔을 때 겸허히 내게 목을 내밀어야지, 이 사람들아. 어떻게 자아에 일관성이 없니. 그것도 일종의 무책임이야. 번데기가 나비가 되는 것만큼 무책임한 짓이라고. 남은 번데기 껍질은 왜 버리고 가. 그 껍질도 가져가야지. 왜 애꿎은 내가 니 껍질 붙들고 이러고 있어야 하는 거니?


나는 이제 인정하기로 한다. 내가 악마라고 생각했던 사람은 사실 악마가 아니었다. 악마가 아니라 수련회 교관이었다. 내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악마일 수도 천사일 수도 있었던 사람. (심한 욕)! 둘 다 될 수 있는 사람이 왜 하필 나한텐 악마 모습을 보여주기로 결정했단 말인가. 어? 왜! ... 잠만 이거 내 잘못이야?


나를 잘 아는 사람들은 나보고 성당에 다니라고 한다. 고재연의 퍼스널컬러는 성당. 고재연의 꽃말은 내 탓이오. 성당엔 무슨 일만 생기면 '내 탓이오~ 내 탓이오~' 가슴을 치는 문화가 있단다. (들은 거라 정확한지는 모르겠음) 난 성당에 나가서 내 탓이오 대회 1등할 자신 너무 있다. 누가 나를 때려도 결국 난 '...어라... 내가 맞을 짓을 했나?'로 생각이 넘어가고, 내가 누굴 때려도 '...무슨 일이건 누군갈 때리는 건 쓰레기 같은 짓이야. 난 쓰레기다'로 결론이 나니까.


난 오랫동안 나를 울렸던 사람, 나를 아프게 하고 화나게 만들었던 사람, 나를 잠 못들게 만든 사람을 잊지 않고 곱씹어 왔다. 나한테 왜 그랬을까. 내가 무슨 잘못을 했길래. 내가 어떻게 했으면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았을까. 나는 꿈 속에서도 그들을 때리지 못하고 도망치기 급급하다. 이런 난데. 나는 사실 복수할 생각 조차 못해요. 나는 찌질이라고요. 이런 나에게 그들이 사실은 악마가 아니라 수련회 교관이었다는 사실은 엄청난 절망을 준다. 내가 잘했으면 나한테도 천사였을 텐데 라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다.


모든 고난의 정답은 사랑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으로서 힘들 때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고, 사랑한다 말하고, 껴안으며 이 시간을 버텨왔다. 그래 너희가 있어 다행이다. 그러던 어느 날, 지인이 말했다. 아주 어려운 얼굴로 조심스럽게. "너가 사랑하는 니 친구, 과거에 나 괴롭혔었어. 나 걔 때문에 많이 힘들고 울었어."


...어?

...어...

...어?

'인간은 입체적이다', '모든 사람에겐 다면적인 부분이 있다'는 말을 알고 있는 것과 그걸 실제로 목격하는 건 너무 다른 차원의 이야기 같다. 사람은 악마이면서 동시에 천사일 수가 있는 것이었다. 너무나 그럴 수 있는 거였어. 나에게 천사이지만 다른 사람에게 악마였던 친구를 마주하고 생각이 많아지는 밤이다. 나의 천사가 지인에게 악마처럼 굴었다. 그 지인이 '내 탓이오' 가슴을 친다. 친구가 악마인 게 그 지인 탓일까? 아니다. 친구가 천사인 게 내가 친구한테 잘한 덕일까? 정말 아니다.


나의 악마가 누군가에게는 천사라는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내가 건강할 수 있을지 내내 고민해왔었는데, 이제야 정답 앞에 선 기분이다. 악마 앞에서도 천사 앞에서도 찌질이인 고재연은 여전히 인정하기 싫고 어렵지만 마음으로 알겠다. 용서다. 정답은 용서인 것 같다.


악마에게 손가락질 하며 "너 날 못살게 만들어 놓고 유기견 봉사가는 거, 거짓말! 위선!"이라고 손가락질해봤자. 상대가 진심으로 안타까워하며 유기견들을 돌보고 있다는 사실이 거짓말이 되진 않는다. 그렇다고 날 괴롭혔던 게 없어지지도 않지. 꿈에서도 마주칠까 무서워서 도망다니는 거 나만 속 썩는 일이다. 만천하에 이 사람이 악마라는 걸 까발리는 것도 결국 내 맨 얼굴도 함께 내놓는 격이다. 상대방에게 타격을 줄 그 어떤 방법에서도 나는 자유로울 수가 없다. 내가 자유로울 수 있는 방법은 하나다. 그 사람이 어떤 점에선 천사라는 점을 인정하기. 더이상 다른 사람들에게는 악마의 얼굴을 보이지 않게끔 상대의 환경이 행복하고 여유롭길 바라기. 용서하기 그래서 잊기. 잊어버린 사람이야 말로 제일 건강한 것 같다.


사과받지 않았는데 어떻게 용서하냐고? 미안하지만 사과와 용서는 각자 다른 방에 살고 있다. 모든 사과가 용서로 귀결되는 게 아니듯이 모든 용서에 꼭 사과가 필요한 건 아니다. 나는 그걸 고모 덕에 알게 됐다. (*"가해자는 진짜 기억 못하는구나"편 참고) 용서는 혼자 하는 거다. 혼자할 수 있는 거고. 혼자 해야 한다.


용서란 아무래도 굉장히 고독한 행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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