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 빼고 모두가 물구나무를 선다

by 고니크

요가를 시작했다.

동생이 나보고 '누나의 사인은 스트레스성 쇼크일 거야'라고 말했는데 내가 그 말에 너무나 큰 동의를 했기 때문이다. 스트레스는 평생 내 친구, 나의 소울메이트, 내운명, 나의 나침반.


...스트레스는 만병의 근원이라며? 수명을 단축시킨다며? ...나는 오래 살고 싶다.


스트레스 요소를 없애기 위해 근 3년 간 많은 인간관계를 정리했다. 나에게 상념을 불러일으키는 사람 아웃. 나를 짜증 나고 답답하게 만드는 사람 아웃. 같이 있으면 기 빨리는 사람 아웃. 내가 좋아하는데 넌 날 안 좋아해? 아웃.


정말 많은 사람들은 아웃시켜 왔는데, 난 여전히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어쩔 수 없이 절대 아웃 못 시키는 사람이 한 명 있기 때문이다. 그 사람은 나를 못살게 굴고, 나를 잠 못 들게 만든다. 그 사람 때문에 자주 주눅이 들고 울적하다. 가끔 살기 싫기까지 함. 손절 쳐버리고 싶은데 강제로 껴안고 가야 하는 그 사람, 바로 나다.


궁금하다. 내가 나를 아웃시키는 방법은 없단 말인가? 죽는 것밖에 없어? 오래 살고 싶으면 죽어야 하다니, 뭔가 철학적이고 문학적이다.... 나는 철학과 문학이 싫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나는 오래 살고 싶다. 그래서 요가를 시작했다.

남들이 말하길 요가는 심신을 안정시켜주고, 진정한 나를 만나게 해주면서, 힐링 어쩌고 평화 저쩌고란다. 후. 생각만 해도 개노잼일 것이 예상된다. 힐링과 재미는 함께 갈 수 없음을 나는 알기 때문이다. 그 어떤 평화도 도파민을 캐스팅하지 않는다. 나는 불꽃 속으로 추락하는 래퍼의 마음으로 요가복을 구매했다.


플랙스. 출근할 때보다 더 비싼 옷차림으로 요가원에 들어간 나. 이곳, 경건하다. 다들 뉴비인 나를 쳐다본다. 인사...를 해야겠지. 무슨 인사를 해야 하는 걸까. 안녕하세요라고 해? 아님 고개만 끄덕해? 설마... 합장 한 채로 나마스떼?! 난 그건 못 해. 난 한국 사람이란 말이야. 물론 이곳에 있는 모든 사람들도 한국 사람이지만... 난 결국 아무랑도 인사하지 않기를 선택했다. 저 멀리 공기의 어떤 지점을 보는 척 초첨을 흐리고 제일 구석진 자리로 갔다.


모두가 이리저리 몸을 풀고 있는 와중에 나는 두 무릎을 끌어안고 눈만 데룩데룩이다. 전... 몸 푸는 방법도 모른단 말이에요. 괜히 따라 했다가 몸에서 이상한 소리만 나고 어정쩡하느니, 가만히 있자. 이 어색한 시간만 잘 넘기면 그 끝은 힐링이리라. 난 그것만큼은 믿어 의심치 않았다.


요가 선생님은 잘 안 되는 동작을 억지로 하지 말고 잠깐 쉬었다가 다음 동작을 따라오라고 했다. 뭔가를 성취하기 위해서 억지로 나를 쥐어짜내거나 스스로를 채찍질하는 마음은 요가 정신이 아닌 것이다. 멋있어. 못하는 것을 그대로 인정할 때 그런 나를 받아들이는 마음의 공간도 넓어지는 거겠지, 암. 나는 철학과 문학이 좋아졌다.


요가 수업이 시작된 지 십 분 후.

물구나무를 서고 있는 무수한 사람들 사이에서 이마를 긁으며 어색한 미소를 짓고 있는 사람, 그 사람이 바로 나예요. 잘 안 되는 동작은 잠깐 쉬어가라고 했던가? 나는 잠깐이 아니라 지금 한 시간 내내 쉬고 있다. 못하는 나 자신을 인정할 때 마음의 공간이 넓어진다고? 지금 내 마음은 그 어느 때보다 비좁다.


이 사람들 미친 사람들 아니야. 물구나무 다음 동작으로는 발을 머리 뒤로 넘기면서 허리를 종이 접듯이 접어버리는 자세가 진행됐다. 미치지 않고 서야 도대체 저 자세가 어떻게 되는 거야. 아니, 왜 여기 사람들은 자기 돈고에 코를 박을 듯한 자세를 자발적으로 하는 거냐고. 이게 왜 힐링이야. 어떻게 평화야. 다들 자신의 뼈와 근육, 인대, 힘줄과 전쟁을 치르고 있었다. 이 공간에서 가장 평화로운 사람은 요가를 안 하고 있는 나뿐이었다.


다리를 수직으로 180도 찢어서 바닥에 딱 붙이고 정강이에 자신의 코를 갖다 대고 있는 사람들을 보며 나는 삶과 죽음, 그리고 환생 시스템에 대해 고민했다. 그리고 결론 냈다. 이 사람들의 전생은 석가모니였을 것이다. 한 명의 석가모니가 다음 생에 여러 갈래로 나눠져 여기 있는 사람들로 환생한 것이 틀림없다. 안 그러면 설명이 되지 않는다. 평범하게 태어나 남들만큼 자라서 각자의 밥벌이를 하게 된 어른들이, 그니까 나도 그런 어른인데 우리 똑같은 어른인데, 저런 비인간적인 자세를 할 수 있는 것을 설명할 다른 방법은 없다.


그렇게 깨닫게 된 것이다. 요가를 해서 평화로워지는 것이 아니고, 이미 평화롭게 태어난 석가모니들이 요가를 하게 되는 거라고. 나는 길을 잘못 들은 한 마리 양인 것이다. 이를 어쩌지. 이미 요가복에 체감상 수 억 원을 쓴 기분인데, 환불할 수 있을까. 아니 지금 중요한 건 옷 환불이 아니라 요가 수업 환불을 어떻게 하느냐다. 석가모니한테 환불 요청할 수 있을까. 공수래공수거라면서 나보고 빈 손으로 나가라고 하는 거 아니야?


누구야, 나와봐. 누가 요가 하면 스트레스 없애고 나 자신을 더 사랑할 수 있다고 그랬어. 거짓말쟁이! 나는 결국 환불의 ㅎ도 꺼내지 못한 채로 집으로 돌아왔다.


울적해하는 나에게 '하면 어떻게든 하게 된다'는 말, '하다 보면 는다'는 위로의 말들이 쏟아졌지만 나에겐 소용 없는 말들이었다. 왜냐면 난 클라이밍을 5년 했지만 늘지 않았고, 뜨개질도 꾸준히 하는 중이지만 여전히 남들 30분이면 끝날 것을 난 이틀 내내 붙잡고 있기 때문이다. 요가라고 다를까.


다음 요가 수업을 가느냐 마느냐 고민하며 운동 가방을 풀어 정리했다. 입었던 옷을 벗어 빨래통에 넣고, 갈아입을 옷을 꺼내려 옷장 문을 여는 순간 보이는 어떤 것. 지난 겨울에 내가 뜬 뜨개 모자다. 그 모자를 꺼내니 그 뒤로 내가 떴던 목도리, 허리띠, 두건이 딸려 올라온다. 어라, 나 꽤나 많이 떴잖아? 심지어 좀 귀엽잖아?


뜨는 데에 남들보다 더 많은 시간이 들지만 결국 떠낸 나의 완성품들을 보고 있자니, 어제 저녁에 30만 원어치 장을 봤던 순간이 떠오른다. 엉성한 박스 안에 물건들을 강제 테트리스 해놓곤 겨우겨우 들며 걸어가고 있었는데 순간 박스 모서리가 북 찢어졌다. 물건이 와락 쏟아질 법한 상황이지만 손 끝과 손바닥 힘으로 두 면을 확 오므려 참사를 막아냈다. 이 힘, 클라이밍에서 나온 힘이다.


오... 잠깐, 이거 이거 나 지금 어떤 중요한 깨달음을 얻을 타이밍인 것 같은데. 앞으로 내가 쓸 문장엔 내가 싫어했다가 좋아했다가 와따리 가따리하고 있는 철학과 문학이 조금 담길 것만 같은데!


이걸 읽는 분들은 내 다음 문장을 기다리겠지만 나는 고민하다가 적지 않기로 한다. 내가 뭘 깨달았는지 써봤더니 너무나 진부한 내용이 뱉어졌기 때문이다. 그것보다 더 큰 것이 내 마음을 가득 채운 참인데 말이야. 이 마음을 글자로 과소평가 시키기는 아깝다. 하지만 다들 내가 얻은 것을 같이 얻으셨으리라 믿는다.


나는 갑자기 요가가 좋아졌다.

남들이 물구나무설 때 나 혼자만 똑바르게 서 있는 요상한 공간에서 당분간은 계속 어리둥절해보려고 한다. 확신이 생겼다. 분명히 요가는 나에게 무언가를 남길 것이다. 클라이밍처럼, 뜨개질처럼 그리고 글처럼.


계속 해야지.

내 안에도 석가모니의 한 조각이 살아있길 바라며,

내가 나를 품고 달래고 사랑할 수 있길 바라며,

'해내고야 만다'보다 '하고 있다'에 집중하며,

그래서 결국은 해내고야 말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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