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꺾마? ...에이, 꺾였으면 그냥 안 할래요.

by 고니크

글이든 운동이든, 뜨개질이든, 사회생활이든, 인간관계든, 그 어느 분야에서도 내가 특출난 재능이 없다는 것을 깨달은지는 꽤 되었다. 내가 밀고 나갈 방향은 재능이 아니라 끈기 쪽임을 확실히 인지하고 있다. 그만두지 말아야지. 한 번 시작한 것은 끝을 볼 때까지 지속해야지 스스로와 약속했다.


중요한 건 꺾여도 그냥 하는 마음이라고 누가 말했으니까.


야 근데 잠깐만 누가 말했냐? 나와 봐. 언뜻보면 기깔나는데 사람을 아주 미치고 팔짝 뛰게 하는 말이다. 엉덩이싸움에서는 절대 지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한 뒤 그 싸움에서 져버리면, 무재능을 깨달았을 때보다 더한 자괴감이 밀려온다.


클라이밍을 5년했다. 난 남들보다 팔다리도 짧고 통통하니까 남들만큼 잘할 수는 없어. 하지만 오래할 수는 있지. 스스로를 다독여가며 주 4일씩 암장을 나갔다. 성인 남성이면 처음 수업 들은 날부터 할 수 있는 난이도를 5년 내내 했다. 나에게 성장은 없었다. 바빠서 일주일만 쉬어도 잠시 깔짝 올라갔던 실력은 다시 바닥으로 내려와있었다. 팔이 짧아서, 키가 작아서, 나이가 많아서라는 말을 변명으로 쓸 수도 없었다. 클라이밍을 하는 사람들이 점차 많아지면서 이제는 나보다 더 키가 작은 사람, 나보다 더 팔이 짧은 사람도 생겼으니까. 그들은 나보다 더 높은 난이도의 문제를 풀고 하루가 다르게 실력이 일취월장한다. 중요한 건 꺾여도 그냥 하는 마음이라고? 나는 꺾였고 그냥 안 해야겠다는 마음을 먹게 됐다.


고기를 일 년동안 먹지 않았다. 동료 언니가 추천해준 다큐멘터리를 보고 그날로 고기에 대한 입맛이 싹 달아났다. 나에게 이제 고기는 먹음직스러운 음식이 아니라 고통 받고 죽은 누군가의 시체처럼 느껴졌다. 고기를 먹지 않는다는 게 하나도 어렵지 않고 불편하지도 않았다. 친구들이 삼겹살집에 가자고 하면 갔고 난 냉면을 먹으면 됐으니까. 난 그런 내가 너무 멋졌다. 고기를 먹지 않는다니 트랜디하고, 친환경적이면서, 진보적이고 뭔가 신념있어 보인다. 비건은 멋있는 사람만 하는 거잖아? 나도 조금은 멋있는 사람 축에 속할 수도? 고기를 먹지 않으면서 나는 나를 더욱 사랑하게 되었다. 내가 멋있어 보였으니까!


하지만 난 곧 알게 됐다. 내가 고기를 먹지 않는 것은 어떤 멋있는 신념 때문이 아니라 그저 도축 과정을 지켜보며 받은 시각적 충격 때문이었다는 것을. 말하자면 트라우마가 생긴 거다. 나는 내가 회복탄력성이 굉장히 좋은 타입이라는 것을 간과했다. 시간이 지날 수록 트라우마는 점점 흐려졌고 피곤하고 배가 고플 땐 저절로 고기 생각이 났다. 어느 순간부터 치킨 냄새가 맛있게 느껴진다. 간장계란밥 슥슥 비벼 먹으면 얼마나 고소할지... 너무 구체적으로 상상하는 바람에 침도 살짝 나왔다. 나는 일 년만에 다시 고기를 먹기 시작했다. 나는 이번에도 꺾였다. 고기 먹지 않는 나를 너무나 멋있게 생각했었던 만큼 다시 고기를 먹게 된 나를 보는 내 마음은 엉망이다.


드라마 교육원에 다니면서 하루에도 서너 개씩 다양하고 재밌는 아이디어들이 떠올랐다. 손이 근질근질해서 새벽 3,4시까지 대본을 썼다. 아무도 봐주지 않는 대본. 나만 읽고 나만 재밌어하는 대본. 하나도 서글프지 않았다. 너무 재밌었으니까!


우리 옛이야기 '요술 항아리'에서 아이디어를 따와 대본 하나를 썼다. 제목 <헬피엔딩>. 요술 항아리를 가지게 된 양아치 MZ 딸배가 자신을 복제하는 이야기다. '내'가 두 명이 됐으니 한 명은 알리바이를 만들고 다른 한 명은 범법을 저지르며 저급하게 살다가 어떠한 사건을 겪는다. 한 명은 이제라도 바람직하게 살고 싶어하고 다른 한 명은 여전히 시궁창처럼 살고 싶어한다. 나이자 남인 두 사람은 서로를 증오한다. 한명이 다른 한 명을 죽이면서 이런 대사를 한다. "이건 자살일까, 타살일까?" 나는 그런 대사를 생각해낸 내가 멋지다고 또 생각했다.


그러다가 영화 <미키17>이 개봉했다. 자기 자신을 끊임없이 복제하는 사람의 이야기다. 거기서도 한 명이 알리바이를 만들고 다른 한 명이 범죄를 저지르는 내용이 나온다. 남이 나보다 더 먼저 생각해내 이미 작품으로 만들고 있었구나. 나는 뒤늦게, 그것도 볼품없는 아이디어를 내곤 스스로를 멋져하고 있었군... 머쓱해진다.


굴하지 않고 다음 아이디어를 생각했다. 제목 <산타실종>. 크리스마스에 산타 할아버지를 만나러 나갔다가 실종된 오빠가 10년 만에 돌아온다는 설정이다. 성인이 되어 돌아온 오빠는 함께 했던 추억을 어제일처럼 읊고 몸의 상처, 말투, 좋아했던 반찬도 여전히 그때 그대로다. 엄마는 내 아들을 드디어 찾았구나 싶어 울고 불며 너무 좋아하는데... 주인공은 그 오빠를 보며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한다. 이 오빠, 내 오빠가 아닌 것 같은데. 진짜 아닌 것 같은데. 주인공은 돌아온 오빠를 의심한다. 오빠가 돌아오고 집에는 자꾸 이상한 일들이 벌어진다. 과연 이 오빠의 정체는!!! 캬. 나는 또 이런 생각을 해낸 내가 멋있다고 생각한다. 너무 흥미롭고 재밌잖아? 나 혹시 천재는 아닌지?


그때 드라마 <탄금>이 방영됐다. 어린 시절 실종된 남동생이 어른이 되어 다시 돌아오는 이야기다. 집안에서는 모두가 실종된 아들이 돌아왔다고 쌍수를 들고 환영하지만 주인공만 마음이 불편하다. 어째서인지 주인공은 돌아온 사람이 자신의 남동생이 아님을 너무나 확신한다. 나는 이때도 한숨을 푹 쉬었다. <탄금>의 원작은 심지어 4년 전에 출판되었단다. 왜 나는 남들이 이미 오래 전에 해낸 생각을 뒤늦게 해놓곤, 스스로를 너무 멋져하는 걸까? 나도 남들이 미처 못한 생각을 미리부터 해낼 수 있는 사람이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또 꺾였다.


중요한 건 꺾였지만 그냥 하는 마음이라고? 지금 중요한 건, 난 꺾였고 그냥 안 하고 싶어졌다는 거다. 그것이 뭐든. 다 안 하고 싶다.


일주일에 한 번씩 브런치에 글을 올려야겠다고 마음 먹은지 몇 개월이 지났다. 처음엔 꾸준히 해야지, 하루도 빼먹지 말아야지 굳은 결심을 했다. 아무도 읽어주지 않아도 계속 써내려 가야지, 설령 아무도 읽어주지 않더라도 내 기록이 쌓인다는 건 좋은 거니까. 어디에 좋을진 아직 모르겠지만... 그런 생각을 하며 꾸준히 써왔지만 사실 이제 고비다.


모니터 앞에 앉아서 오래 눈만 뜨고 있다. 뭔가를 쓰고 싶다는 생각도 안 들고, 쓰고 싶은 소재도 없다. 포기하지 말아야지 하는 마음 한 줄기만 손끝으로 간신히 붙들고 있다. 글쓰기 앞에서조차 나는 꺾이게 되는 걸까.


모든 영역에서 꺾이고 그냥 아무것도 다 안 하고 싶어지는 날이 오면 나는 어떻게 되는 걸까. 울적하다. 어째서 나는 이렇게 의욕이 없는 사람이 되었나. 이것은 번아웃인가, 매너리즘인가 아니면 그냥 이게 원래 나의 한계인 건가.


내가 지금 당장 나태지옥에 떨어져도 나는 달리지 않을 것 같다. 내 몸뚱이를 짓누르고 터트리는 회전돌막대 앞에 누워서 이것이 마사지겠거니 할 것 같아. 아유 시원하다. 어어 거기 좀 더 밟아봐. 그래, 거기. 어, 맞아 거기! 빠지직. 이럴 것 같다고. 나는 소파에 엎어져서 이 글을 마무리한다. 내 몸을 눌러 터트려줄 그 무엇도 없는데 이미 마음만은 너덜너덜 진물이 흐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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