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사이코패스일까?

by 고니크

할아버지가 돌아가실 것 같다는 아빠의 전화를 받고 "나 까만 옷 없는데"라는 생각부터 들었다고 하면 모두가 나를 싸이코패스라고 생각할까? 엄마의 장례식장에서 절하는 법을 몰라 허둥지둥 대는 친구의 모습을 보고 쿠쿡 웃어버린 나를 누군가 봤다면? 친구의 어머니가 나를 껴안고 안쓰럽다는 듯이 "이제부터 내가 엄마해줄게" 했을 때 참을 수없는 비소가 터져나왔다면? 사람들은 나에게 미친년 도장을 쾅 찍어버리려나.


마시의 안락사 날짜를 정했다. 8월 15일 광복절. 마시도, 우리 가족들도 모두 고통에서 벗어나는 날이다. 오늘은 11일. 마시를 보내기까지 4일 정도의 시간이 남았다. 마시에게 아침밥을 주고 나니 사료통이 텅 비었다. 새로 사야 한다. 사료 값이 얼마였지? 제일 용량이 적은 건 몇 g짜리일까? 4일분만 파는 곳은 없겠지. 그런 생각을 실제로 했다. 실제로 하면서 내가 너무 혐오스럽게 느껴졌다.


누구보다 마시를 사랑한다고 말하면서 어떻게 마시의 죽음을 앞에 두고 손익을 계산할 수 있는 걸까. 내가 마시를 사랑하는 게 맞나? 마시의 죽음이 진정으로 슬픈 게 맞나? 나 사실은 마시를 얼른 치워버리고 싶은 걸까? 사실 제대로 된 판단이 서지 않는다. 마시 때문에 잠을 못 잔지 5일 째다. 뇌가 멈춘 느낌이고 눈이 화끈하다.


동물병원에 가서 강아지 사료 제일 용량 작은 걸 달라고 했다. 1kg. 4일 안에 다 먹을 순 없을 것 같지만 결제했다. 집으로 돌아오며 문 앞에 세워진 개모차를 봤다. 폐기물로 버려야 하나, 당근을 할까. 상태가 좋은데. 이정도면 그 누구보다 마시의 죽음을 기다리고 있는 사람은 나 아닐까. 내 자신이 사이코패스처럼 느껴진다.


마시의 안락사를 결정할 때도, 동물병원에 전화해 빨간 날이지만 제발 나와달라고 수의사에게 부탁을 할 때도, 잠 못 들고 괴로워하는 마시를 보면서도 눈물이 나지 않는다. 나는 감정이 사라진 걸까. 잠을 못 잔 부작용으로 편도체게 문제가 생긴 게 분명하다.


오늘 마시의 영정사진을 골랐다. 가장 선명한 사진 그러면서도 가장 얼굴이 잘 나온 사진을 고르기 위해 네이버박스로 추억여행을 다녀왔다. 스크롤을 내리면 내릴 수록 마시의 색이 진해지고 표정이 생긴다. 저랬는데. 분명히 저랬는데. 어떻게 이렇게 될 수 있단 말이야. 눈만 멍하니 뜨고 있는 마시에게 말을 걸었다. 너 왜 이렇게 됐니. 어떻게 너만 이렇게 됐니. 나는 그대론데. 무슨 기분이야, 어? 혼자 늙어버린 기분은 무슨 기분이야. 말해 봐. 말해. 고마시. 너 더 살고 싶어? 아니면 이제 그만 살고 싶어? 내가 어떻게 해줘야 해. 어떤 선택을 해줘야 하냐고. 말해. 말하라고.


빨간 옷을 입고 뛰고 있는 마시의 사진. 신나서 귀가 팔랑팔랑 댄다. 저때 이미 뒷다리의 마비 증상이 조금씩 시작됐을 때인데 불편한 줄도 모르는 마시. 산책에 마냥 행복해만 한다. 사진을 찍을 때 이게 마시의 영정사진이 될 거라고 전혀 예상하지 못 했는데. 이게 이렇게 되네. 인생은 정말 한 치 앞도 모르는 거다. 이제부터 아주 작은 순간마저도 의미를 부여하며 살아야겠다. 그래, 나는 또 마시의 죽음과 상관 없는 생각을 하고 있다.


마시가 조용하다. 낮잠을 자는 거다. 그럼 나도 잘 수 있는 걸까. 이따 밤엔 또 못 잘 테니까... 우웅- 우웅- 일 연락이다. 젠장. 낮에도 밤에도 나는 잘 수가 없다. 너무 졸리다. 기절하고 싶다. 도망치고 싶다. 이 공간에서, 이 시간에서. 마시가 없는 곳으로 달아나고 싶다.


산송장처럼 바닥에 널부러져 있는데, 띠띠띠띠 비밀번호 치는 소리가 들린다. 정기가 퇴근했다. 어색한 동작으로 들어오는 정기. 뒤를 휙 도니 노란 꽃다발이 들려있다. 와, 오랜만. 꽃다발 정말 오랜...만... 참아왔던 눈물이 터지는 순간 내가 참아왔다는 걸 알게 된다. 내 명치를 꽉 막고 있던 둑이 붕괴됐다. 한 번 터진 눈물은 막을 세도 없이 강이 되어 제 갈 길을 가버린다. 신기하다. 인간은 눈물을 흘리면서 눈물을 볼 수가 있다. 그걸 보면서 나는 알게 됐다.


나는 마시의 죽음에서 회피하고 싶다. 마시가 죽고 나서 집에 왔을 때 내 눈에 마시의 물건들이 보이지 않았으면 좋겠다. 마시가 먹던 사료도, 마시가 타던 개모차도, 덮던 담요도, 누웠던 쿠션도, 다. 마시가 죽으면서 내 기억과 자기의 흔적을 모두 가져가줬으면 좋겠다. 나한텐 이미 마시가 없는데, 돌이킬 수가 없는데, 물건들이 남아있다니. 그걸 보고 이 돌이킬 수 없음을 뼈저리게 느껴야 하다니. 자신이 없다. 나는 그걸 이미 엄마 때 한 번 해봤다. 해봐서 아는 거다. 무섭다. 나는 너무 무섭다.


돌이킬 수 없다는 감각은

인간이 느낄 수 있는, 인간만이 느낄 수 있는 최고의 고통이다. 고문이다. 형벌이다. 감옥이다. 정신적 파괴고 자아의 부서짐이다. 끝없는 추락이고, 빛 없는 심연이다. 질식이고, 뼈를 아리는 한기다. 희망의 장례식이고, 불구덩이 속 오그라드는 영혼이다. 절대 아물지 않는 상처고 속수무책의 균열이다. 살아 있는 채로 겪는 죽음이다. 마시가 죽고 나도 죽을 것 같다는 두려움에 갇혔다. 정말 너무 너무 무섭다.



keyword
이전 11화나의 악마가 누군가에겐 천사일 때